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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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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8일 13시 23분 등록

이 글은 변화경영연구소 3기 연구원 박승오님의 글입니다.

 

* 열흘 간의 단식을 마쳤습니다. 많은 양의 물과 세 시간마다 먹는 포도 다섯 알이 그간 먹은 전부입니다. 매일 레몬즙과 원두 커피로 하는 관장은 고통이 있었지만 나중엔 야릇한 쾌감마저 들었습니다. 한의원에 방문하여 장 해독과 간 해독을 병행하여 지난 30년간 쌓아온 독소들을 씻어 내렸습니다.

 

단식(斷食)은 철저한 육식이라는 말을 절감했습니다. 힘이 없고 지칠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기운이 넘치고 몸이 가뿐했습니다. 그간 곱창의 기름기처럼 쌓인 지방들이 타며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나 봅니다. 극심한 고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3일쯤 지나자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머지 일주일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피부는 몰라보게 매끈해졌고, 바지는 점점 헐렁해졌으며, 저울의 눈금은 조금씩 줄어들어 매일 쾌재를 불렀습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는 시간이 없으니 생활은 여유로웠고, 속을 비워내니 이상하게 집중력이 좋아져 쓰고 있는 책의 진도가 많이 나갔습니다.

 

* 음식과 동시에 지식의 유입도 끊어버렸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글을 쓰면 많은 책들을 수북이 쌓아놓고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많은 지식들이 꼬이고 꼬여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책을 쓸 때에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선배의 충고 때문에 최근에는 더 많이 읽었고, 읽는 것을 핑계로 쓰지 않으니 책 진도가 좀체 나가질 않았습니다.

 

단식(斷識)은 철저한 내면 탐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읽는 것을 끊고 나니 제 안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지식을 끊으니 내면에서 끊임없이 창조의 비가 쏟아져 내렸고, 그간 경험했던 것들이 책에 그대로 옮겨지며 글이 제법 술술 풀려나갔습니다. 비로소 생각과 이성과 논리를 접고 우주의 기운이 저를 통해 글을 쓰는 듯한 느낌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쓰려고 계획만 했던 책 초고의 절반을 쓸 수 있었고, 꿈으로 간직했던 나침반 프로그램을 상세하게 매뉴얼화 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와 아랫배. 위 아래가 모두 뻥 뚫리고 나니 삶이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뿐합니다. 밥을 끊으니 육체가 살아났고, 지식을 끊으니 정신이 새로워졌습니다. 이 희한한 역설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열흘간의 단식이 제게 남긴 교훈은 이렇습니다.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정보를 탐닉하지 마라. 먼저 쓰고 쏟아내어 비워라. 유입이 많다 하여 절로 유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나가는 만큼 들어와야 하겠지만, 그 전에 먼저 들어온 만큼을 반드시 써야 한다. 섭취한 만큼을 반드시 써서 비워내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서고 비로소 움이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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