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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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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일 22시 55분 등록

갑자기 새우튀김 튀기는 소리가 났다. 방바닥을 짊어지고 책을 읽던 나는 얼른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소나기였다. 수도꼭지를 사 오겠다며 마트에 간 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부엌에 있는 수도꼭지가 말썽이었다. 찬물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려 놓은 채 물을 잠그면 물이 제대로 잠기지 않아 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반드시 뜨거운 물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려 놓고 물을 완전히 잠근 후 다시 찬물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려놔야 했다. 번거롭고 불편했지만 쓸 만 했다. 그러던 수도꼭지가 아침에는 아예 손잡이와 배수관이 분리돼 버렸다. 수도꼭지를 통째로 교체해야 했다.

 

나는 수리공을 부르자고 했다. 언니는 출장비가 얼마냐며 마트에서 수도꼭지를 사다가 직접 바꿔 끼울 수 있다고 했다. 그 돈이면 장비까지 다 사고도 돈이 남을 거라며 굳이 수도꼭지를 사오겠노라고 길을 나섰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벌이는 것이 짜증났다. 나는 모르는 일이니 언니가 다 알아서 하라며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려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이렇게 비가 내리니 우산도 없이 나간 언니가 걱정됐다.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혼자 씨름했다. 곧 그치겠지 라며 창 밖을 백 번쯤 쳐다봤다. 언니가 돌아올 시간이 되어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핸드폰 밧데리가 떨어졌는지 전원이 꺼져있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결국 우산을 쓰고, 또 다른 삼단 우산을 손에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오니 갑자기 내린 비 날씨에 생각보다 쌀쌀했다. 슬리퍼를 꿰차고 나온 발이 시렸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언니는 오지 않았다. 버스가 설 때마다 혹시 언니일까? 싶어서 플라스틱 의자에서 일어나 버스 안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까치발을 하고 살폈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점퍼를 머리 위까지 덮어 쓰거나 가방으로 머리 위를 가리고 급하게 버스 정류장을 빠져나갔다.

 

십 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내리던 비는 갑자기 그쳤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싶었지만 이왕 지금까지 기다린 거 언니 오면 같이 가야겠다 싶어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언니를 계속 기다렸다. 젖은 땅에 젖은 나뭇잎이 붙어 있는 곳에 우산 끝으로 콕콕 찍어 박으며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구경거리도 없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만 얼굴을 들었다.

비 내리던 거리에 혼자 앉아 있자니 내 마음도 촉촉해졌다. 누군가를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경험,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라도 우산이 흔하고 사기 쉬운 물건이 됐으니 집에 있던 누군가에게 데리러 나오라고 이야기 하는 일도 없어졌다. 반대로 내가 데리러 나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예전에는 핸드폰이 없을 때는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막연히 기다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설렘도 애틋함도 맛 본지 너무 오래됐다.
 

언니와 나라는 주제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언니는 무슨 노래를 좋아했을까? 언니에게 무슨 색깔 옷이 가장 많을까? 언니는 나의 어떤 모습을 가장 맘에 들어 할까? 언니가 기억하는 가장 기쁜 기억은 뭘까? 이런 물음들을 받고 보니 내가 언니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사이가 나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자매를 사이가 좋은 자매와 사이가 나쁜 자매로 나눈다면 오히려 사이가 좋은 자매 쪽으로 분류 될만한 관계였다. 그런데도 언니에 대한 물음에는 자신이 없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는 생각만으로, 한집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지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나 어떤 취향의 커피를 마시는지, 요즘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는 내 옆자리 동료가 더 많이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일곱 대의 버스가 지나갔다. 버스에서 내리는 언니의 얼굴은 광채를 내며 다가왔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일이 이뤄진 것처럼 기뻤다. 언니와 걸어 오는 길, 몇 년을 같이 살면서 이 길을 언니와 이렇게 나란히 걸어본 것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자 귀싸대기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각자의 생활이 있다 보니 같이 외출하거나 나란히 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드문 일이다. 그렇다고 시간을 내어 나란히 동네 산책을 하는 일도 없었다. 수십 번도 더 드나들었던 길인데 언니와 나란히 걷고 보니 다른 길이 되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과 우리는 정말 가까이 지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일까? 같이 사는 사람들과 충분히 친한 것일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니와 나란히 동네 골목길을 걷는 따뜻함에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누군가 나를 데리러 와 줬으면 좋겠고, 아무 말 없이 누군가 같이 걸어줬으면 좋겠다 싶은 날이 있다. 친구와 같이 하기에는 말이 길어질 것 같고, 내 사정을 다 설명하자니 그게 더 피곤해 그만두게 되는 일들이 있다. 누군가와 버거운 술자리를 하기에는 내 몸이 너무 힘들고, 말짱한 정신으로 버티자니 마음이 심난한 날들이 있다. 그런 날이면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내리면 누군가가 나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긴 말 필요 없이 짧은 길을 나와 같은 방향을 걷는 누군가가 있다면 참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그만큼이면 외로움도 허탈함도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 날 누군가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와 준다면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줄줄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가 길지 않은 길을 지나 집에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현실로 돌아와 분주하게 저녁을 차리고 평소처럼 지내고 싶었다. 그 새삼스러운 느낌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할 것 같았다. 그런 길을 같이 걷는다면 아주 잠깐 까마득한 어딘가를 다녀온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 설레기도 했다.
 

가끔은 그렇게 같은 방향을 향해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같이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이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도 아니다. 그리고 함께 걷는 그 순간만큼은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 둘은 가장 친한 사람이 된다.
 

매일일 수는 없겠지만, 가족들이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미리 현관문만 열어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 열쇠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달려나오며 문을 철커덕 열고 현관에서 기다려 주면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반대로 기어이 내 손으로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tv에 시선을 둔 채 어. 왔어? 소리만 내는 모습을 보면 섭섭할 때가 있다. 오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는 가족들에게 인사도 없이 방에 들어가 옷 갈아입고 나와서 내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놓기 전에,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땐 조금 슬퍼진다.
 

결혼한 내 친구가 처음 부부싸움을 한 것은 수세미 때문이었다. 오빠 올 때 수세미 하나만 사다줘. 라는 문자를 보내자, 응 이제 나 거의 다 왔어 내려와 같이 가게. 라는 답이 왔단다. 그냥 수세미 하나 사다 주면 될 것을 꼭 기어이 자기를 아래까지 불러내어 사러 간다며 친구는 거품을 물고 분노했다. 자상한 줄 알고 결혼했더니 속았어. 속았어. 속았어. 속았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친구는 강조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그 친구의 남편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수세미를 살 줄 몰라서가 아니라, 남자가 퇴근 시간에 수세미를 사 들고 가는 것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집으로 가는 그 길을 아내와 함께 걸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버스 정거장까지 데리러 가는 게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그걸 참 오랫동안 못하고 지냈다. 베란다에 나가서 주차장을 내려다 보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면 미리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어 주는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닌데. 집에 들어선 가족에게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는 게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참 무심하게 지냈다.
 

가끔은 같이 사는 누군가가 집에 올 시간이 되면 정거장에 가서 기다리기도 해 봐야겠다. 꼭 난데없는 비 때문에 우산을 챙기는 상황이 아니어도 된다. 오랜만에 차를 두고 나간 남편일 수도 있고, 늦게 들어온다는 언니를 예고 없이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갈 수도 있다. 퇴근하는 가족을 산책하는 마음으로 마중 가고 싶다. 그냥 같이 걷고 싶어서, 조금 더 빨리 만나고 싶어서, 손을 잡아 보고 싶어서, 그래서 기다렸노라고 말하면 된다. 그렇게 버스 정류장에서, 지하철 역에서 집으로 오는 짧은 길에서는 한 집에 사느라 너무 가까워서 못 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란히 걷고 있으면 끝까지 내 편인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는 믿음이 생긴다.
같이 걷는 길의 따뜻함을 자주 느끼며 살고 싶다. 잘 아는 사람과 잘 아는 길을 나란히 걸어 보는 것. 새로운 시간을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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