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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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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4일 08시 44분 등록

이 글은 변화경영연구소 3기 연구원 박소라(모모)님의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ALLATORRE’ 입니다.”
“예약을 할려구요. 오늘 저녁 7시요.”
“몇 분 이죠?”
“한 명이요.”
“네?”

수화기 너머로 당황스런 직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나는 웃으며 다시 한 번 한명이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본다. 머리를 빗으로 가지런히 빗어 하나로 묶고 거울 속의 담대한 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바라봤다. 아주 작은 속삭임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오늘 너를 초대 할께’. 짐을 챙겨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습하고 따가운 여름날의 아우성이 나의 몸을 시끄럽게 한다.

홍대정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낮이면 페허처럼 웅크려 있던 홍대상점들이, 사람들이 북적 데는 생기 있는 표정으로 변화하고 있다. 서점에 들러 그녀가 좋아하는 시집 한권을 사들고 꽃집에 들러 국화 한 다발을 샀다. 누런 소포용지 안에 가지런히 담긴 보라색 국화가 그녀의 묘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책과 꽃 한 다발을 두 손에 꼭 쥐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입구에 나만큼이나 커다란 토마토가 매달려있는 스파게티 집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너무 비싸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오늘 만큼은 그녀와 함께 최고로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

예약자 이름을 말하자 ‘직원은 정말 혼자 오셨나요?’라며 심각하게 다시 되물었다. 씩씩하게 대답하는 내 모습에 당황한 직원은 “아, 죄송합니다.” 라며 예약석으로 안내했다. 큼직하고 푸르른 나무 아래 자리 잡은 테이블에 ‘박소라님 예약’이라는 깜찍한 표지판이 놓여져 있다. 직원이 살짝 빼준 의자에 가지런히 앉아, 가장 좋아하는 스파게티와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그렇게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흥분된, 설렘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정확히 일년 전, 나는 항상 낯설은 자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기 못했던 세월을 뒤로하고 춤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자기검열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내면의 힘과 창조성을 의심하게 했다. 또 다시 재능을 의심하고 자신을 헐뜯고, 현실로부터 도망쳐 상상의 세계에 숨어버리곤 했다. 그날도 그렇게 회색빛의 몸으로 춤을 추던 날이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수축되어 있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온 몸을 흔들며 소리를 짜냈다. 소리의 흔적이 사라질 무렵, 꼭 감긴 두 눈을 떠보니 한 소녀가 내 앞에 서있다. 그리고 소녀는 나에게 살포시 다가와 속삭였다.

“소라, 나는 움직이고 싶어, 큰 걸음으로 걷고 싶어. 뛰고 싶어, 춤추고 싶어. 날고 싶어. 내 손을 잡아줘”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는 나는 태풍의 중심에 서 있다. 주위는 온통 사람들의 움직임과 음악의 현란함, 조명의 반짝임으로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태풍의 눈에 존재하는 고요한 무엇이었다.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다. 나는 소녀를 두 손으로 안았다. 소녀의 몸이 나의 품으로 깊게 파고들어왔다. 소녀의 뜨겁게 달아오르는 몸의 열기가 전해져 온다. 몸이 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있구나. ‘사랑해, 소라야’ 긴장이 풀린 안도의 호흡이 편안하게 온 몸으로 울러 퍼지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날 밤, 소녀와 함께 집에 돌아온 나는, 작은 종이위에 ‘소라야 사랑해, 프로젝트 / 2006. 7. 30-2007. 7. 30’ 라고 써서 책상 앞에 붙였다. 그 글을 바라보는 나의 얼굴은 홍조띤 복숭아 같았고, 심장은 첫사랑의 속삭임처럼 두근거렸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소라에게’로 시작된 편지는 나에 대한 관심과 찬사, 미래를 약속하는 꿈으로 가득 채워진 한 폭의 그림이다. 전철 안에서, 사무실에서 그리고 집에서 소라에 대한 사랑과 꿈을 그려 쓰고 또 그렸다. 그리고 사랑의 프로젝트가 끝나는 날, 멋진 데이트를 하자고 굳게 약속했다. 오늘이 바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 년을 기다려온 파티의 날. 몇 일 전부터 마치 소풍을 앞둔 어린 아이처럼 설레임을 간직 해온 날. 어느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나만의 놀이 데이트다.

그렇게 일년 남짓, 나는 오늘 다시 나와 마주하고 앉아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조명 아래로 어느 때 보다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나를 바라봤다.

‘많이 성숙해 졌구나. 변덕스런 성장의 리듬을 잘 견뎌내 줬구나.’
‘너의 편지가 없었다면, 너의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너의 휴식과 같은 너그러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꺼야. 기다려 줘서 고마워.’
‘나의 도움을 받아줘서 고마워.’

우리는 1주년을 축하하며 건배를 했다. 와인 잔이 부딪히는 청아한 소리가 설레임의 흥을 더한다. 나는 준비해온 꽃과 책을 선물로 전달하고 일년 동안 꾸준히 써온 연애편지를 수줍게 펼쳐 그동안 우리가 이루어낸 꿈과 승리를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우연히 꿈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스승을 만났으며, 꿈벗 친구들을 만나 얼떨결에 연구원 과정까지 하며 작가라는 꿈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상담소에서 내가 원하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천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소중한 친구들을 얻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편지를 바라봤다. 일년동안의 모든 해프닝이 내 편지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니. 순간, 아주 미세한 깨달음이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 모든 것의 출발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구나.

7월 29일자 마지막 편지위에 ‘성공 프로젝트’라는 단문과, 별 다섯개를 그려주었다. 4B연필의 묵직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몸을 간지럽혀, 몸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고 세어 나왔다. 모든 승리는 위대하다고 잭 웰치를 그랬던가.

“소라야, 내 인생의 가장 값진 승리는 소라를 사랑하게 된 것, 내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없을 거야.”

우주를 내 품에 다 안은듯한 아름다운 밤, 이 순간을 멈추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나를 찾아온다. 행복의 그늘아래서. 바람을 안고 돌아오는 길 위에 서서, 울컥 솟는 눈물 어찌 못하여 하늘을 보았다. 반짝이는 별 하나 없이 서럽도록 푸른 하늘이 속절없이 아름답다. 가야할 길, 가야할 이유를 몰라도 좋을, 그런 길을 동행하는 너가 있기에 나는 살아 지는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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