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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8일 08시 07분 등록

이 글은 변화경영연구소 3기 한정화 연구원의 글입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무엇이 하고 싶은지 부모님과 잠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림이 좋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것은 밥 굶는 것이다라고 하셨던 것 같다. 지금 보면 그림과 관련된 직업들이 많아서 그림이 좋아서 그것을 전공하고 그쪽 방면에서 직업을 찾는다고 하면 그렇게 쉬이 밥 굶는 것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림하면 화가였고, 화가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주위에 자신이 아는 화가가 한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화가는 몹시도 가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버지와의 그 짧막한 대화로 나는 그림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진학 목표를 삼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림이 좋았고, 토요일 오후 집에 오는 길에 미술관에 들르곤 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예술회관이란 곳은 거의 매일 전시가 있었다. 봄이나 가을이면 전라북도 미술대전 전시회를 그곳에서 했기 때문에 많은 그림, 공예작품, 조소 작품, 서예작품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림 주위를 맴 돌았다.

대학교 내 인쇄물이나 노래책의 사이사이에 나오는 목판화는 힘이 넘쳤다. 오윤의 목판화가 좋았다. 도서관에서 판화집을 빌려다가 몇 개를 크게 복사 했다. 학교 내에서는 노래가 끊임없이 들렸다. 노래를 들을 때면 판화가 생각났다. 그때의 노래는 약간은 선동적인 노래였다. 노래가 사람을 끌어 모으고 감동을 주는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림도 그럴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품었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고등학교 선생님을 찾아갔다. 담임선생님이 아닌 미술선생님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다른 직업을 갖고 취미로 그림을 시작하라고 하셨다. 나중에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그때는 그리고 싶은 만큼 그릴 수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을 통해서 한 분을 소개를 받았다. 35세의 나이에 늦게 그림을 시작한 분이셨다. 동양화를 그리시는 분이셨다. 한국화의 화려한 색채를 이용해서 꽃과 우주를 그려 전시회를 열고 계셨다. 그분의 그림은 굉장히 아름다운데, 선생님은 약간 시든 꽃처럼 보였다. 외로워 보였다. 화가는 힘든 거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 살짝 스쳤던 것 같다.

그분을 통해 동양화를 배울 수 있는 화실을 소개 받았다. 찾아간 그날 나는 그림의 기본인 선긋기를 했다. 전지크기의 종이에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차분히 굵기가 일정한 가는 선을 긋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같은 방법으로 선을 빼곡히 그었다. 결국은 붓으로 모눈종이를 만든 셈이었다. 그렇게 2장 정도 선을 그었던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겨우 2장에 선을 채워 넣은 것이다. 어깨가 아팠다. 그날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집을 나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화실은 전주에 있었고 집은 익산이었다. 그날 밤에 친구와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그 화실을 찾지 않았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좋아하는 그림에 다가가는 것은 두려운 것이었다. 집을 떠나와야 한다는 것. 경제적인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취직을 했다. 그림 그릴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 칼 퇴근이라고 소문난 직업을 택했다. 어느 정도는 칼 퇴근이 가능했다. 그러나 몸이 몹시 힘들었다. 나는 금새 내가 그 직업을 택한 이유를 잊었다. 일하다가 일에 몰두해 버린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 그림과 멀어지고 싶지 않아, YMCA 문화센터의 미술반에 등록했다. 기간으로는 한두달 했던 것 같다. 근무와 겹치지 않을 때 몇 번 나가서 4B연필로 가로선 긋기와 세로선 긋기, 사선 긋기를 했다. 그리고 사과를 수채화로 몇 개 그리는 연습하고는 그만 두었다. 내 안에서는 여전히 그림을 좋다고 하지만 나는 그리는 것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림을 배우거나 그리는 것을 지속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림이 좋았다. 문구점에서 갖가지 색연필을 앞에 서면 나는 흥분했다. 색색의 노트가 쌓인 앞에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크레파스 냄새, 종이 냄새가 좋았다. 갖가지 고운 색지를 보았다. 색에 환호를 했다. 그것을 사들고 집에 왔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림과 멀리 떨어져 있었을까.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기에 나는 인터넷으로 그림을 찾았다. 이상하게도 그림보다는 사진이 더 많이 찾아졌다. 멋진 사진들을 많이 만났다. 사진 속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행복했다. 웃으면서 사진을 찍으니까, 일부러라도 웃는다면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궁금해 하다가 왜 그렇게 행복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궁금한 것을 직접 풀어보고 싶었다. 카메라를 구입했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찍을 뭔가를 일부러 찾아다니다 보니 세상은 더 잘 보였다. 이전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것들, 엉킨 전깃줄, 위로 솟은 전신주, 자동차 위로 부서지는 햇볕, 해를 등지고 선 친구의 실루엣, 잔물진 곳에서 반짝이는 물비늘, 줄을 지어 기어가는 개미, 꽃들의 하늘거림…….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여전히 그림 생각을 했다. ‘이것은 이렇게 해야 전체 모양이 다 나오는 구나.’ ‘인물화는 이렇게 표현하면 좋겠구나.’ ‘풍경화는 이렇게 구성하는 거구나’ 하면서 사진을 그림 보듯 했다. ‘인물사진 잘 찍는 법’, ‘풍경화 잘 찍는 법’은 여전히 사진 잘 찍는 법보다는 그림과 관련해서 보게 되었다. 그림과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주 크게 맴을 돌아가며 나는 그림 주위를 서성거렸다.

‘아티스트는 다른 아티스트를 사랑한다. 그림자 아티스트는 같은 동족인 아티스트에게 끌리지만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느냐 혹은 그늘에 숨어 꿈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그림자 아티스트가 되느냐는, 재능이 아니라 용기에 달려있다’(『아티스트 웨이』71p.) 맴을 돌다가 다가 섰을 때, 이때다 싶을 때 손을 뻗어서 잡아야 한다. 줄리아 카메론은 이런 아티스트를 위해 변호를 한다. ‘“저는 아티스트가 될 만한 자질이 너무 많아요.”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아의 힘이 필요하다. …… 우리는 다윈의 결정론을 잘못 해석하고는, 진정한 아티스트라면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기이다.’라고.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기이다. 두려워 하는 것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하는 부담을 뚫고 살아야 하는게 아트스트라고 생각하다니 정말 바보 같다.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기이다. 나는 그 말 한마디로 멀리 맴을 돌아서 여기에 와 서 있는 아티스트를 위로한다. 아티스트는 재능이 아니라 용기로 시작한다. 모든 아티스트의 시작은 미숙하다. 아티스트는 보호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자신이 실수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얼마라도 졸작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보호해 주어야 한다. 주위를 서성이는 아티스트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자신안의 부정적 시각과 싸울 수 있는 용기를 내야한다.

주위를 서성이던 아티스트의 손을 잡아 등을 토닥인다.
“그래, 그랬구나. 그래, 일단 해봐. 어떻게 되는지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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