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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5일 09시 05분 등록

이 글은 변화경영연구소 3기 연구원 송창용(여해)님의 글입니다.

 

11월 19일 월요일 아침 8시

감기 몸살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견학을 가기 위해 부랴부랴 학교로 향했다. 웬만하면 사정을 이야기하고 빠지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가지 않을 수 없어 약을 먹어가며 부실한 몸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오늘 날씨는 왜 이리 추운지. 몸이 불편하니까 마음까지 자꾸 움츠려들었다.

학교에 도착할 즈음 학과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교에 도착하면 출발하기 전에 먼저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직접 만나서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여러 가지 사정상 본인 대신에 학생을 인솔하여 견학을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미 다른 교수님 한 분도 개인 사정상 빠진 상황에서 내가 인솔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도 지금 몸 상태로는 무리인데 … ’
‘미리 이야기해서 양해를 먼저 얻을 걸’
어쩔 수 없이 내가 인솔하기로 결정하였지만 마음속에서는 심한 갈등과 후회가 일었다.

‘누구나 사정은 있고 책임도 있는데 …’
‘이왕 이렇게 된 것 학생들과 더 친해지는 기회로 삼자.’
‘그러자면 오늘 학생들과 술을 먹어야 하는데 술도 못하면서 지금 몸 상태로는 꽤 힘들겠지.’
‘그리고 목요일까지 올려야 될 리뷰와 칼럼이 있지만 책은 아직 정리도 다 못했잖아.’
오늘 방문할 회사가 있는 강릉으로 향하는 시간 내내 나 자신과 싸움을 벌였다.

평소 지론인 ‘간단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정리한다(以簡御繁)’하는 마음으로 복잡한 심경을 되도록 빨리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당구공 같은 만남이 일색인 요즈음 ‘정’을 강조하는 사람으로서, 마침 군입영하는 1학년 학생들도 있으니 환송회도 해줄 겸 1박 2일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기로 피로한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무겁고 뻐근했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편해졌다. 마침 방문한 회사들에서도 따뜻하고 융숭한 환영을 해주어 학생들도 즐겁게 견학을 하였다.

학생들과 저녁을 먹고 1차 술자리를 ‘정’겨운 시간으로 채운 다음 살며시 빠져 나오는데 학생대표가 죄송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이야기를 하였다.
‘교수님 죄송한데요, 자금 사정상 버스 기사님과 한 방에서 주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순간 ‘일찍 방에 가서 아직 다 못 읽은 <관자> 책을 밤새보고 다음날은 차안에서 자야겠다.’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그래, 괜찮아. 돈도 빠듯한데 잘했어.’라고 말은 애써 웃으면서 하였지만, 마음은 왜 이리 불편하였는지.

그때 집에서 전화가 왔다. 둘째 녀석이 이웃집 친구와 축구하러 나가더니 어두워졌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저녁 늦게까지 찾았다고 한다. 애간장은 녹았지만 다친데 없이 찾게 되어 무척 다행이라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첫 눈 오는 날 같이 있지도 못하면서 오늘 하루는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며 원망 섞인 아내의 목소리에 온 몸의 힘이 쑥 빠져 나갔다. 최근 내가 집에 없는 사이에 힘든 일이 자주 발생한다.

밤새 책을 읽겠다는 계획은 포기한 채 잠이나 일찍 자려고 하려는데, 룸메이트인 버스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늦게 잠들게 되었다.

이튿날, 느지막이 일어나 육개장으로 술에 찌든 속을 달래고 난 후, 동해안에 온 김에 관광도 하고 속세에 주름진 마음도 달랠 겸 속초 바다로 향하였다. 모래사장 너머 탁 트인 바다를 보는 순간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막혔던 기가 뚫리는 듯 시원했다. 계절마다 뿜어내는 바다의 이미지는 다르지만 그 중에서도 겨울바다의 느낌은 으뜸이 아닐까 한다. 한적한 바다 위를 바람을 타며 유영하는 갈매기의 나는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다. 바닷바람이 차고 센데, 파도는 그렇게 높게 일지 않아 출렁이는 물결에 반사되는 햇빛이 오히려 따사롭게 느껴졌다.

余海

초아선생님께서 바다를 닮으라고 나에게 지어주신 호이다. 항상 바다를 생각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잊어버리던 ‘바다’를 지금 눈앞에서 바라보며 한껏 눈과 마음속에 담았다. 중요한 순간에 꼭 다시 나타나기를 바라며 꽉꽉 채워 담았다. 얼마나 채웠을까? 가슴이 몹시 서늘해짐을 느꼈다.

‘도는 멀리 있지 않지만 도달하기 어렵고, 사람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터득하기 어렵다.
그 욕심을 비우면 신이 들어와 자리하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말끔히 씻으면 신이 머문다.’ (p 507)

마음속에 담겨있던 욕심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한없이 넓은 바다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

물은 결코 다투는 법이 없다. 산이 앞을 가로막으면 멀리 돌아서 지나가고, 가파른 절벽이 눈앞에 나타나면 용감하게 뛰어내린다. 물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으로 흘러간다.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으로만 임한다. 그 중에서도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다. 낮기 때문에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인다. 결코 거부하는 법이 없다. 물의 철학은 노자의 철학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이다. 물이 가장 잘 노자의 사상을 대변한다고 한다. 자연 속의 작은 모순에서 큰 깨달음을 전해준다.

동양 철학은 이런 점에서 서양의 철학보다 가슴을 울리는 파동이 깊고 강하다. 모순은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진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혼란을 불러온다. 지금은 모순의 시대라고 한다.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 공존하는 다양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선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모순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만이 진정한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다. 모순과 상생하는 사람만이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이르자, 바다를 보러온 것이 오히려 잘 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사소하게만 느껴졌다.

몸도 마음도 바다기운으로 채웠으니 입도 즐겁게 하기 위해 점심으로 물회를 먹었다. 마침 학생들 점심이라고 하며 양을 푸짐하게 주시는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로 배불리 먹었을 뿐 아니라 주문진 항의 따뜻한 정도 듬뿍 받았다.

마음도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편한 잠을 청하려는 찰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아내의 전화였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일찍 퇴근할 수 있어요?’
‘지금 학교로 가는 중인데 도착하는 대로 퇴근할게. 그런데 왜? 무슨 일이 있어?’

기운이 없는 목소리로 평소에 않던 시간에 전화한 걸로 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별 일은 아닌데, 태훈이가 친구하고 싸운 모양이에요.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태훈이는 옷이 찢어졌고, 친구는 얼굴에 상처가 났다고 하네요.’
‘알았어. 도착하는 대로 서둘러 갈게. 이따 봐.’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하니 괜찮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서두르기 위해 버스 기사님을 재촉하였다. 학교에 도착한 후, 학과장님께 결과를 보고하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자동차의 오른쪽 뒷바퀴가 바람이 빠져 있었다. 펑크가 난 것이었다.

‘날은 춥고 어두워지고 길은 눈이 내려 미끄러운데 하필 이럴 때 펑크가 났게 뭐람’

이 광경을 보는 순간, ‘바다’도 ‘모순 속의 깨달음’도 일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마음속에는 온통 짜증만이 불같이 일었다.

모순 속에 길이 있다지만 그 길은 금세 사라져버린다. 그 모순을 받아들이기에 나의 그릇은 너무나 작은 모양이다. 매번 일어나는 변화가 매일 자라는 나의 욕심을 좇아가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바다를 닮고자 하는 것이 나에게는 지나친 욕심일까? 오늘도 산 정상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던 바위가 다시 굴러 내려가는 것을 보며 그것이 바로 나의 뒷모습임을 다시금 확인하여 본다.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은 아름다워졌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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