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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7일 17시 45분 등록

* 이 글은 5기 연구원 이승호님의 글입니다.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의 열대우림지역 등지에서 서식하는 나무늘보라는 동물이 있다. 항상 나무위에서 살기도 하지만 행동이 원체 느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이 쉽게 되어지는 동물은 아니다. 그런데 이 동물의 생존방법이 특이하다. 다른 동물들처럼 특별한 자기를 보호할 기능이 없는터 그는 느림을 삶의 보호본능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보자. 배가몹시 고픈 어떤 동물이 우리의 주인공 나무늘보를 발견 하였다. 일단 그 동물은 나무늘보의 행태를 관찰한다. 우선시되는 방법은 일단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관찰하여 잡아 먹을건지 아닐지를 판단한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느린 포유류답게 나무늘보는 좀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잡아 먹을려는 동물은 그렇게 나무늘보를 지켜만 보다가 끝내 제풀에 지쳐 돌아가고 만다. 그런데 그 동물은 알았을까? 나무늘보는 야생에서 3일 동안 똑같은 자세를 유지할 만큼 거의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또 교미하는 게 귀찮아서 늙어 죽도록 독신으로 사는 녀석들도 있다는 것을. 이것이 적에게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생존을 유지하는 나무늘보의 느림의 생존법이다.


최근 연구원 수업의 일환으로 8박9일의 일정으로 동유럽 국가중에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방문 하였다. 처음에는 생소해 보이는 지명으로 솔직히 무어그리 볼것이 있을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경관을 돌아보는 순간부터 왜 유럽 사람들이 이곳으로 휴양을 굳이 오고 싶어하는지 의문이 자연히 풀리게 되었다. 하지만 경관도 경관 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줄줄이 늘어선 야외 까페촌과 골목길로 대변되는 풍경 그리고 유럽인들의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까페에 남녀노소가 죽치고 앉아 차를 마시거나 식사 및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할 일이 참 없는가보다 하고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았었다. 그런데 이것이 방문지마다 이어지는 연속되는 풍경으로 나의 시선에 잡히자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관광객들이기에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의 하나의 생활로 자리잡은 까페문화를 바라볼 때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찬란한 유럽의 문화가 저 여유로움와 느림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노키아와 에릭슨등 회사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저런 한가로움의 터에서 발생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들이 말이다.


패스트푸드 시장인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1986년 이탈리아는 슬로우 푸드(slow food) 운동을 만들어 내었다. 이 운동의 참가자들은 행사를 개최하고, 음식에 대한 책을 출판하며, 좋은 식사 습관, 즉 느린 식사 습관을 찬양한다. 이 운동은 또다른 형태로 발현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시타슬로우(cittaslow)이다. 즉, 이것은 소도시에서 느리게 진행되는 삶을 지켜가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지역 특산물과 지속 가능성을 촉진하면서 ‘천천히’를 강조한다.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중)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유럽의 문화에 대해 부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점점 빨라지고 있는 세태에 반하여 최근 느림이라는 화두가 우리에게 굳이 등장을 하고있는 것은 왜일까?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에서 제시한 창조성을 깨우는 방법인 아티스트 데이트란 거창한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같은 동류인 걷기라는 열풍도 일어나고 있다. 모두들 변화와 발전을 목매여 외치는 현실에서 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반대 개념인 느림과 천천히의 미학에 빠져드는 걸까? 밀란 쿤테라는 ‘느림’이라는 책에서 느림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 거리며 총총한 별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려버렸는가? 우리 세계에서,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 되었는데, 이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빈둥거리는 자는, 낙심한 자요, 따분해 하며, 자기에게 결여된 움직임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사람이다.“ - 밀란 쿤테라 ‘느림’중


늦은시간 느림이라는 칼럼을 빨개진 눈을 비비며 작성하고 있는 지금 옆에있던 누나가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렇게 힘든 것을 왜하느냐고?’ 늦은밤 나는 이것을 왜하고 있는걸까? 요약정리만 하여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거기다 여러 과제까지 나는 왜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연구원 생활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걸음 한걸음 더디더라도 묵묵히 행보를 하는 나자신과 어울리는 연구원. 오늘밤 나무늘보의 꿈을 꾸어야겠다. 느림의 의미에 대해서 정답게 얘기를 나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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