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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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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7일 23시 15분 등록

이 컬럼은 6기 연구원 김연주님의 글입니다.

5월 6일 샌드위치데이로 많은 학교가 재량휴업일을 하던 날이었다. 우리 학교는 어김없이 대세를 거스르고 등교를 했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휴일이라 전 날 금요일에 꼭 학교에 나오라며 종례시간에 신신 당부를 했었다. 아침에 출석을 체크를 하는데 딱 한 자리, 쌩뚱맞게 이환이 자리가 비었다. 심지어 우리반 단골 무단 지각, 결석 대장인 순종이도 학교에 와있는데 말이다. 아이들에게 이환이가 왜 안 나왔을까 이상하다며 집에 연락해봐야겠다는 말을 하니, 승호가 앞으로 달려와 이환이가 어젯밤에 내일 학교가야 하냐고 전화가 왔길래 쉬는 날이라고 농담을 했는데 진짜로 안 나왔다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환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환이가 진짜 휴업일인줄 알고 집에서 있다가 이제야 친구전화를 받고 집을 나섰다고 전해주셨다.

 

5월 21일 중학교 3학년인 아이들이 봉사활동 겸 졸업앨범 사진촬영으로 오전에 공원 나들이 계획이 있었다. 지난주부터 토요일에 졸업앨범에 들어갈 사복 입은 단체사진을 찍을 것이라며 몇 번을 이야기했다. 심지어 어제도 사복이라고 말해주었다. 출근을 하는데 이환이에게서 ‘샘, 오늘 교복입어요, 사복입어요’라고 묻는 전화가 왔다. ‘당연히 사복이지’라고 했더니 당황한 이환이 말이 가관이다. ‘교복입고 나왔는데 그냥 교복입고 사진 찍으면 안 되요?’라고 질문이라고 한다. 왜 교복을 입고 나왔냐고 물으니 친구가 교복이라고 말해서 벌써 입고 나와버렸다는 것이다. 이환이 말을 듣고 있으니 얼마전 친구 말만 믿고 학교에 안 나온 날이 떠오르며 이 녀석이 왜 내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매번 이렇게 봉창인가 싶어서 전화기에 대고 ‘넌 왜 선생님 말은 안 믿고 그렇게 당하고도 친구 말을 믿니’라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 버럭 하는 소리에 이환이는 ‘죄송해요. 선생님’이라며 집에 가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오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1시간 뒤에 사진 찍는 장소인 공원에서 이환이를 만나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 매번 속으며 친구 말만 믿냐고 그렇게 거짓말 하는 친구랑 놀지 말라고 했다. 이환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환하게 웃으며 ‘그래도 어떻게 친구랑 안 놀아요, 친구니까 속아도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세속에 찌든 담임은 이 순수하고 어리버리 착한 녀석의 말에 이 놈 평생 속고만 살면 어쩔까 걱정이 앞선다.

 

졸업앨범 사진을 찍고 한 1주일쯤 흘렀을 즈음 점심시간에 호승이의 손에 이끌려 이환이가 교무실로 들어선다. 이환이는 예의 그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호승이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 나가려고 하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니 마지 못해 호승이에게 떠밀려 내 옆으로 왔다. 이환이는 우두커니 서있고 호승이는 ‘이환이가 선생님께 말할 것이 있데요’라며 운을 뗀다. 이환이는 작은 목소리로 ‘그런 거 없는데’라며 웅얼웅얼 거린다. 이환이가 선뜻 말을 못하자 호승이가 이환이를 애들이 요즘 너무 심하게 괴롭힌다고 말해준다. 이환이는 여전히 ‘그냥 논거야, 그냥 논거에요. 선생님’이라며 그 상황에 빨리 벗어나려 한다. 진술서를 주면서 애들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모두 적으라고 말했더니 이환이는 마지 못 해 테이블에 앉으면서 적어내려가기 시작한다. 호승이가 옆에 앉아 ‘이번 기회에 다 말씀드려. 그건 내가 보기에 장난을 넘어서. 도가 지나치단 말이야. 그건 폭력이라구.’라며 이환이가 진술서를 쓰는 데 훈수를 둔다. 호승이의 말을 들은 나는 이환이에게 하나도 빠짐 없이 적어야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를 했다.

 

이환이가 진술서를 다 쓰고 건네는 데 어이가 없다. 진술서에 등장한 아이들이 참으로 장난끼 많아서 가끔 자신을 귀찮게 하나 착한 친구들로 그려져 있다. 이런 진술서로는 아이들을 불러서 타이를 수가 없다. 옆에 호승이가 진술서 내용을 보며 ‘넌 왜 애들을 감싸는 거야’라며 답답해한다. 여전히 이환이는 몇 가지만 빼면 자신을 아주 만족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며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한다. 이환이를 올려 보내고 호승이에게 상황을 물으니 애들이 쉬는 시간 마다 이환이를 때리고 핸드폰을 빼앗아 사용하기도 한다며 너무 심하게 당하는 것이 안쓰럽다고 말한다. 호승이 성격으로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아이들을 무고하게 모함할 성격이 아니니 믿을 만한 정보라고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고민을 시작했다.

 

그날 방과후에 청소를 마치고 상담을 하자며 이환이를 남게 했는데 엉뚱하게 학생사안 담당인 포스~권샘에게서 이환이 문제로 상의할 것이 있다며 인터폰이 왔다. 한달음에 4층으로 올라가보니 이환이가 울상이 되어 서있고 권샘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이환이에게 자세하게 안 적으면 네가 더 혼날 줄 알라고 엄포를 놓으신다. 권샘은 이환이 핸드폰을 좀 심하게 노는 애들 몇 명이서 돌려쓴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고 말해주신다. 이번 학기가 시작되고 2달 사이 이환이가 등교하면 제출해야하는 핸드폰을 수업시간에 사용하다가 적발되어 며칠씩 압수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대체로 노는 아이들이 이환이에게 빌려서 자기들이 빼앗겨놓고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권샘이 진술서를 다 쓴 이환이를 데리고 나에게로 와서 당분간 이환이 핸드폰을 선생님이 보관하시는 게 좋겠다며 이환이에게 그냥 주면 노는 애들이 또 빌려 쓴다며 가져갈 것이라고 말하신다. 권샘이 돌아가고 이환이는 그 애들은 잘못이 없고 아침에 핸드폰을 내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라며 애들에게 자기가 빌려준 것이라고 두둔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애들한테 당한다는 사실을 선생님들에게 말해준 호승이를 원망하며 ‘호승이는 너무 과장이 심해요’라며 울상이다.

 

권샘이 전해준 진술서를 보니 이환이가 핸드폰을 빌려줬다는 아이들 이름이 쓰여 있다. 녀석들 이름을 보니 이환이가 두려움에 떨만한 아이들이다. 아까는 왜 이런 것을 적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려고 하냐고 물었다. 이환이는 겁에 질린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부모님이 알게 되면 두분이 싸우니까요.’라고 말한다. ‘네가 계속 숨기다가 아이들에게 당하고 맞는 것을 알게 되면 부모님이 더 슬퍼하시지 않을까’라고 하니 이환이는 말이 없다. 이환이를 돌려보내며 이환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다 전하며 이환이를 다그치지 말고 학교생활에서 힘든 점을 물어보는 시간을 갖고 많이 도닥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환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동안 이환이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웠다고 하시며 너무 화가 난다며 알게 된 사실을 들려주신다. 아직 사실 확인이 필요한 일이지만 이환이는 2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에게 매일같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이유없이 때리고 물건을 빼앗고 해서 힘들어서 선생님께 말해봤는데도 그 친구의 행동은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고 학년이 바뀌어서 다른 반이 되었는데도 쉬는 시간에 우리반 교실에 들어와 이환이를 때리고 괴롭혔다고 한다. 이환이는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부모님께 말해도 걱정만 끼칠 뿐 부모님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더욱 말하기가 싫었다고 한다. 이환이 엄마는 가해자 아이와 사실관계를 확인 후에 그 아이가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면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하셨다. 난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 아이가 반성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서는 학교 차원에서라도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이환이 어머니는 선생님이 자기 입장을 이해해 주어서 감사하다며 곧 학교를 방문하겠다고 하신다.

이환이가 남들이 모두 인정하는 피해를 당하면서도 한사코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을 감싸줄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알아주기 전까지는 망설이다가도 누군가가 자신이 힘든 것을 알아준다는 생각이 들면 힘든 점을 모두 말하며 하소연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환이는 선생님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며 도리어 자신을 도와주려고 한 친구를 원망하고 그냥 좀 심하게 장난을 치며 논 것이라며 자기를 괴롭힌 친구를 두둔했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만성화되어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가하고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결국 문제는 이환이가 마음 놓고 기댈 곳이 아무 곳에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도 부모도 친구들도 이환이에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믿지 못할 무능력한 존재들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환이가 자신에게도 든든한 지원자가 존재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어리버리 이환이의 든든한 빽이 되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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