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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0일 00시 31분 등록
청년의 고민이야 옛부터 유명한 이야기지. 청년은 고뇌하는 것이니까. 방황이 젊음의 본질이므로. 법학과를 다니는 청년은 사시를 떠나지 못해 안달이고, 다른 과에 다니는 청년은 잡다한 고민의 해결을 '에라, 사시나 보자'로 풀기도 하지.

난 역사학과였는데, 의외로 진로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어. 물론 다른 고민은 무지많았지. 고뇌 자체가 멋진 일이었으니까. 고뇌없는 젊음은 속된 삶처럼 보였거든. 난 재수하다가 갑자기 문과로 돈 사람이고, 그것도 돈 안되는 역사학과를 선택하여 주위를 한숨 쉬게 만들기도 했지.

그러나 그게 재수할 때 고민 후의 선택이라 일단 선택을 하고 난 다음에는 별 고민이 없었어. 내 멋대로 계획을 막 짰지.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가고, 유학갈 돈은 없으니꺼 2년 직장 다녀 1년 학비를 마련하고, 거기서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학금도 받고, 그리고 돌아와 대학의 강단에 서면 되는 것이니까 진로는 확실했어. 적어도 내게는 그랬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어. 내가 좋아하는 은사님도 있었고... 인생이 맘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원하면 난 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믿었거든... 돈 한푼없고 대준다는 사람하나 없어도 난 태평이었지. 왜냐하면 세상이 별로 두렵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어그러져- 예를들면 내 은사가 갑자기 강압에 의해 학교를 떠나야 했고, 졸지에 나도 떠나야했던 것이 발단이었지- 결국 난 직장인으로 20년간을 눌러 앉게 되었지. 20년의 결핍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란 없었을 것이야. 만일 내가 원래 내 꿈대로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면, 역시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야. 그건 아주 섭섭한 일이지. 왜냐하면 나는 지금의 나를 좋아하니까.

그냥 한번 코피 터지게 해봐. 지금 그만두는 것 보다는 합격하고 그만두는게 훨씬 괜찮은 일이지. 효율성으로 보자면 웃기는 일이지만 인생 전체로 본다면 훨씬 그럴 듯한 일이야. 왠지 알어 ? 자신을 믿게 되거든. 지금 법관의 길을 의심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법관이 되어 법관의 길을 의심하면 대단히 현실적이 고뇌지. 지금의 고뇌는 지금의 문제여야 한단 말이야.

쫒기는 인생도 숨어야하는 인생도 좋은 게 아니거든. 갈 곳이 없으면 지금 잇는 곳에서 땀을 흘리는 것이 좋아. 갈 곳이 있으면 그때 짐을 챙겨 떠나도 괜찮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떠남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생기면 그때는 다 버리고 떠날 수도 있지. 그때가 언제냐고 ? 분명한 것은 지금은 아니야. 다버리고 떠나려면 가진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버릴 것 조차 없잖아 ? 이룬 것이 없으니까. 이때 해야할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쌍코피 터지게 하는 것이지. 고민은 이 일을 할까 말까가 아니라, 어떻하면 이 일을 아주 잘 힐 수 있을까하는 것이지. 그냥 하루하루 하루 이 일을 위해 사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버릴 게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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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같이 젊은 놈들' 안의 표현법을 좀 빌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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