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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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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2일 23시 50분 등록
아름다운 이야기에 보니 자아분열적 30대 여자라는 글이 있네요. 눈물 나도록 공감합니다.
그런데 멋진 40대가 되기 위해 30대의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라는 말은 당사자인 저에게는 너무 지키기 어려운 이상일뿐이네요.

31살 여자입니다.
회사에 다니고 있죠.
남들이 말하는 좋은 회사.. 그런데 결코 저에게는 좋은 회사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입사초부터 승진이 제한되어 있답니다.
전임자의 결혼으로 불거진 불똥이 저에게 튀어, 가뜩이나 여자에 대한 보수적인 회사에서 저의 자리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그자리를 덥석 제가 선택했죠..
빨리 치고 빠지자는 심정으로 부단히 준비하고 노력했는데, 중간에 회사에서 희망을 주더니 단물 쪽 빨아먹고 이내 내치더군요.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회사의 상황이 변하지 않았더라면 미련 없이 3년을 다니고 떠났을 겁니다.
최소 3년이란 경력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적절한 시기도 놓치고 이제는 떠나려하니 사회에서 나이많은 여자를 원치 않네요.
혹자는 승진이 대수냐, 회사 다니게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않느냐며 평생 다니라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저는 가끔 모멸감을 느낍니다.
저와 함께 입사한 남자동기들 이제 서서히 승진입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여직원들, 나이가 아직 어려 저와 같은 불합리한 대우는 유보되어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우습죠.
단순히 제가 결혼 적령기에 입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대접이라니..
이미 결혼한 여자 선배의 경우는 싸우다싸우다 계약직으로 전환되었고, 저는 그런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승진제한이라는 이상한 행정시스템에 묶여있고...그러려면 처음부터 행정적인 시스템대로 운영했어야하는데, 중간에 남자직원이 비니 그 일을 똑같이 저한테 시키고 이제 와서 남자사원을 다시 뽑아 옥이야금이야하네요... 다 좋다구요. 그런데 제가 자기네 맘대로 이용해도 되는 그런 하찮은 존재인가요?
이런 일들이 한국의 대기업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절망...

내가 평생 이렇게 살겠냐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모멸감과 억울함은 어쩔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승진이란 억울함때문에 본질을 제대로 못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 설사 회사에서 승진하고 잘 나간들 행복할까란 생각. 지금은 다만 이 불합리함에 분노하고 있지만, 더 깊이 파고 들면 더 큰 문제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인생의 그림이 바뀝니다.
유학을 갈까?
갔다와선?
돈은?
그냥 확 결혼이라도 할까?
답이 없답니다.

가만히 자문해 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업무는? 매력이 있습니다. 여자로서 전문분야를 살리기에 좋습니다.
회사는? 대기업이라 포기하기 싫은 부분도 있지만 제조업이라 장기적으로는 제 업무분야를 살리기에는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 개인의 능력은? 글쎄요. 현재 회사, 현재의 업무에서는 그런대로 잘하는 축에는 끼겠지만 이 회사가 아닌 곳에서 경쟁력을 증명할 만한 객관적인 수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옮겨야하지 않는가?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헤드헌팅사의 의견인즉, 대기업이라면 대리까지 승진한다음에 옮겨야한다는 것. 더군다나 31살 여자라는 조건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회사에서는 승진이 제한되어 있고... 차라리 결혼이라도 해서 이 회사에서 이 설움 받는다면 덜 억울하다는 생각에 선도 봤답니다.
저도 선배 언니처럼 꼬박꼬박 월급이나 받고 애나 낳고 키우면서 회사가 이기나 내가 이기냐는 심정으로 천년만년 다닐까도 생각해봤답니다. 오죽 답답하면...

결론은 아닙니다.
저는 죽었다깨도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기에는 아직 열정이 넘칩니다.

중국에서 2년쯤 공부하다 올까 생각중입니다.
다들 미쳤다고 합니다.
그 나이에, 시집도 못갈거다, 갔다오면 누가 받아주냐 등등...
사회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긴 하지만,외국어와 국제감각은 필요합니다. 하다 안되면 학원강사라도 하며 개인적으로 독립하는 게 차라리 낫지않을까..
다른 한편에서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하며 그냥 편안히 이대로 중간의 삶을 살까...

스물여섯살에도 이런 절박했던 적이 있었죠.
그때 택했던 것은 45일의 나홀로 배낭여행이었고,
그덕에 4년을 버텼는데,
또다시 다 허물고 뭔가 길이 있겠지란 가느다란 희망을 동아줄 삼기에는 내 나이가, 사회에서 바라보는 여자 31살이라는 나이가 참 버겁네요.

하루에도 몇번씩 그림을 그렸다지웠다 합니다.
친구들은 서서히 결혼에, 승진에 뭔가 그림을 그려가는데
저는 아직도 밑그림도 못그리고 있으니...

팽팽하다 못해 폭발할 지경입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나의 젊음을 유기한 죄 처절히 반성합니다.
IP *.155.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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