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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님께서 200811161541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무엇 때문에 왜 무슨 목적을 위하여 읽느냐에 따라 그리고 처한 상황과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요. 저는 여러 해 전에 무척 책이 읽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요. 형편상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을 때였고 그래서 갈증은 더욱 심했을 지 몰라요. 그 때에 심적인 고통도 제법 상당했고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싶은 생각과 또 "내 선택과 일상이 틀리지 않아" 라고 하는 어떤 확증 같은 것으로 삼거나 밝히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한 상황에서 책을 얼마간 읽었지만, 돌이켜보니 그러나 그 때 내가 책을 통해 배운 것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아요. 우선 내 입맛과 눈요기를 충족시켜 주려는 것을 찾아 읽게 되어 그러하기도 하려니와 정작 책이 내 인생의 의문과 해답을 시원하게 말해 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좀 더 솔직히는 한가하게 음미하고 사색하며 읽을 상황도 처지도 못 되기도 하였던 것이고요. 그러다 보니 좋은 책을 선정하여 내용을 잘 파악하고 심사숙고해서 읽기보다 내 편향성 위주의 허영스런 책 읽기가 되지는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그래서 더욱 큰 도움을 얻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책을 통한 일상의 생산성을 따지자면 단기간에 성과를 나타내기란 그래서 쉽지 않을 수가 있을 거예요. 저는 이곳을 통해 지난 한 해 동안에 연구원 생활을 하였고 지금은 책을 써야할 처지에 놓여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무엇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에 있습니다. 그래서 님과 같은 의문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기도 해요. 때때로 님과 같은 의문이 들기도 했거니와 글쓰기를 하는 동안 다른 이들에 대한 환상과 신뢰감 역시 얼마간 깨진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책 읽기나 글쓰기를 멈추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이는 저의 미망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글쓰기와 책읽기는 우선 (첫 책이라면 더욱 더)자신과의 문제가 먼저이어야 하고 우선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인 형편상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일을 하면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고 그래서 앞으로도 이 길을 놓아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마음이 들고는 해요. 남들보다 더 나은 책을 발간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각한다면 저 같은 처지와 상황과 성격하에서는 아마 힘든 일이 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나의 일상의 하루하루를 엮어나가며 시나브로 조금씩 나아지고 싶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에는 (물론 매사가 온전히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이 길을 멈추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되고는 하더군요.

책과의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아마도 자신과의 열애를 어떻게 이어가느냐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을 지 모르겠어요. '끝이 없는 길'이고 '끝없는 사랑'으로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생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성과적 성취와 물질적 보상 그리고 정신의 성숙과 내면의 풍요로움 등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독서라는 것이 시간을 들인 것 만큼 단박에 본전 이상을 뽑을 수 있는 복권 같은 것이라면 책 읽기도 투기가 될지 모르겠군요. 모르긴 해도 지적 성숙과 자아의 발전은 투기적 양상으로는 진정한 성취를 이루기 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더군다나 이곳 변화경영연구소의 글쓰기나 책 읽기는 저가 알기로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곳의 연구원들이 읽는 책의 질적이고 양적인 측면을 따라해 보면 아마도 금세 이해할 수 있으실 겁니다. 때로 같은 나무에서도 저마다 꽃과 열매를 맺고 피우는 시기가 다르듯이, 하물며 여러 제각각의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처해 함께 또는 따로 또 같이 나누고 돕는 독서나 글쓰기라고 할지라도 재능이나 기질 등 각자의 형편과 역량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이고 자연이 의미하는 생존의 조화로운(?) 질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독서가 자신의 발전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연인에 대한 또는 자신에 대한 연애처럼 평가와 이익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따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갈구 했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따져보아야 하는 문제는 아닐까 반추해볼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위한 지극한 열애의 길도 간단하지 만은 않은 것 같아요. 보다 많은 사랑과 정성 즉 희생과 헌신 없이는 나를 위한 발전조차도 신뢰와 성과가 함부로 주어지는 것 같지 않아요.

또한 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생각보다는 움직여야 할 때에 책과 사상과 논리에 빠지고 얽매여 나아감을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말거나, 그저 생각 속에서만 다람쥐쳇바퀴돌 듯 이루려고 하는 뜻만 세우다가 정작 현실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놓이거나 도리어 뒤쳐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의문이 드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 역시 우리가 끝까지 가지 않고서 내리는 속단과 결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를 동시에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딸 수 없을 것에 대해 먼저 속단하고 "저 포도는 보나마나 실거야" 라고 말하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처럼, 가보기도 전에 "인생 뭐 별거 있어?"라고 뇌까리는 넋두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삶에서 때로 어느 이는 전혀 책을 읽지 않고도 뛰어난 기질을 발휘 할 수 있고, 또 전혀 어떤 정체성과 철학을 세우지 않고서도 대단한 실물적 성과를 얻어내기도 합니다. 그런 것과 비교하자면 아마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차라리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속이 편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매일 하는 운동이 독감이나 암에 전혀 노츌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고 혹여 어떠한 질환이 닥쳐도 면역력과 기운(일상의 항상성)을 잃지 않음인 것처럼, 우리의 책 읽기나 글쓰기의 역량도 일상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 생활 곳곳에 새겨지고 배어날 것을 다져가는 것이고, 각자가 노력하고 공들인 만큼의 결실이 되어 줄 겁니다. 오래 좋은 책을 많이 접하고 글도 쓰며 일상의 곳곳에 아름답게 배어나게 하는 것이 이곳 모두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 끝없는 길을 자초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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