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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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늦게 한통의 문자 메세지를 받았다.
000선배 자녀상/용인수지 삼성병원/19일 발인
나는 몇 번이고 문자를 다시 확인하고 다시 확인했다.
부친상?자녀상?부친?자녀?상?
경황이 없어 실수를 했던건가! 자녀상이라니!
.......
000선배라면 직장 같은 팀의 맏언니, 일명 코스모스 부인이 아니던가!
하늘하늘 가녀리고 여성스러운 분위기에 외모도 단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흙길가 코스모스를 떠올리게 하는.
하늘하늘한 선배 모습이 머릿속에 스치는 동시에 팀장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나였다.
팀장님! 이게 무슨 말이야! 자녀상?
어......아들이 어제 사고가 있었나봐......지금 다같이 가려는 중이니까 준비하자.
팀원을 비롯해 임원들이 먼저 몇 명의 차를 나눠 타고 용인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나와 몇몇 사람들은 업무 마무리로 그들보다 약 한 시간 늦게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차 안의 사람들은 차마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속을 태우고 있는 눈치였다.
조심스레 누군가 운을 떼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된거야? 교통사곤가? 지병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사실 경황이 너무 없어 아이의 죽음에 대해 물어볼 생각조차 나지 않았었다.
열여섯, 이제 막 여드름 꽃이 피기 시작한 하얗고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다.
언젠가 선배가 핸드폰 앨범에서 당신의 아들 사진을 보여 주며 해사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선배를 닮아 샤프하고 예쁜 콧날을 가졌다. 그리고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 동글동글 귀염성도 있었다.
그 누구도 아이의 죽음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채 우리는 용인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벌써부터 몇몇 사람들은 눈시울이 벌게져 있었다. 나또한 콧날이 시큰시큰 아파왔다.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너무 조용하고 차분했다.
바로 오늘 새벽에 일이 있었던 터라 그런건지 조문객이 많지 않았다.
쭈빗쭈빗 선배의 얼굴을 찾고 있는데 미리 와 있던 제 2 팀장이 조심스레 귓가에 대고 말을 건넸다.
아이가 새벽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혹시나 엉뚱한 얘기 하지 말라고.....그냥 알고 있어......
저멀리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핸드폰 속에서 보았던 소년의 예쁘고 동그레한 얼굴이 영정 액자에 갇혀 수척하고 생기없이 변해 버리고 말았다.
하얀 국화꽃을 한 송이 영정 앞에 놓고 기도를 한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그저 눈을 감고 있는다. 선배의 흐느끼는 울음이 가슴을 후벼파고 달팽이관을 갉아먹어 들어왔다.
단정한 교복을 입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띤 소년의 얼굴이 어쩜 그리 제 엄마와 닮았을까.
눈물이 흘렀고 아무말도 할 수 없다. 가슴이 먹먹하고 기가 막혔다.
선배가 벽에 기대 무너지고 있었다. 흙길가 소박하게 하늘거리던 코스모스가 시들어 죽고 없었다.
코스모스가 다시 피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영영 그 꽃은 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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