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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14일 10시 36분 등록
:: 축복받은 성격 ::

- 이시형 -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한 학생이 멈칫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자기 성격에 대해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 겨우 들릿듯한 소리로 간청을 했다. 좀 바쁘긴 했지만 그의 표정으로 보아 절박한 사연인 듯싶어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대학원 학생인데, 성격상 발표를 못해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숙제라도 받고 오는 날이면 그는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자료준비에서 정리, 연습까지 아무리 철저히 해도 자신이 없다. 막상 차례가 오면 어찌나 떨리는지 아는 걸 반도 발표 못한다. 끝난 후에 비참한 기분이다. 그런 자신이 미워진다는 것이다.

"선생님, 제 성격을 좀 바꿀 순 없을까요? 전 이것만 해결되면 아무 고민이 없습니다."

"천만에! 자넨 아직도 갈 길이 멀어. 그 성격 변하는 날 자네 발전도 끝날걸세! 좀더 그대로 지녀야 하네."

그는 무슨 말인지 영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생각해봐. 자넨 영리해.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돼. 노력이 있어야 하네. 문제는 그 노력이야. 무엇이 자네로 하여금 그토록 노력하게 만들었나. 그건 자네의 그 성격 때문이라는 거야. 자네 여러 사람 앞에 나서질 못해. 말도 잘 못해...... 자네 말처럼 내성적이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네는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자넨 서울대학에도 합격했고 교수요원으로까지 추천을 받지 않았나 말일세. 떨리는 만큼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는 거야. 그게 자네를 오늘 이 시점까지 밀어 올린 거야. 원수가 아니라 은인일세."

그는 반신반의한 표정이었다. 내친김에 내 이야기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넨 아까 나처럼 당당하고 유창한 달변으로 연설할 수 없을까하고 부러워했지? 그래, 난 하나를 알아도 마치 열이나 아는 것처럼 그럴 듯하게 꾸며댈 수 있어. 그러기에 난 준비를 열심히 안해도 돼. 자넨 열을 알아도 하나를 표현 못한다니 그만큼 열심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돼. 그래서 자네는 고민이라지만, 생각해 보게. 이대로 십 년을 가면 자네와 나와의 실력 차이는 어떻게 되겠나?"

그제서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보물덩이 내향성을 바꾸다니! 천만의 말씀! 지금은 좀 귀찮고 불편하지만 그게 자네를 키워주는 밑거름일세. 발표 때 정 떨리거든 떨린다고 솔직히 털어놔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소심해서...... 라고 뒤통수를 긁어봐. 장내는 가벼운 웃음이 일겠지. 그런 자네를 교수는 더 애교스럽게 봐줄걸세. 교수는 알아. 공부도 안한 녀석이 입만 갖고 나불대는지, 실력은 있는데도 주변이 없어 더듬대는 건지. 어느 학생을 더 신임하고 좋아할 것 같아?"

그의 눈엔 뭔가 확신이 서는 듯했다. 내 두 손을 꼭 잡은 그의 큰 눈엔 눈물마저 고여 있었다.

"선생님 그렇군요. 이젠 됐습니다.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바쁘게 인사를 하고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자넨 훌륭한 교수가 될 거야."

내가 등뒤로 한 소리를 그가 들은 것 같지는 않다.

내향성은 자신이 없다. 어딘가 모자란 듯싶은 자기 부족감에 고민하고 있다. 적극성도 없고 매사에 용기도 없으니 해보기도 전에 패배감부터 든다. 이들이 열등감에 잘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주 그 길로 빠져버리는 사람도 없진 않다. 하지만 모두가 좌절의 늪에 가라앉진 않는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한다. 남보다 더 해야 한다. 그것밖에 이들에게 주어진 무기는 없기 때문이다. 노력, 근검형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셈이다.

외향성이야 화려하다. 갖춘 것도 많고 인기도 좋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부터 귀여움도 받고 인정도 받는다. 여기저기 불려다닌다. 있는 것만 뽐내고 팔아먹어도 된다.

사람들이 모두 예뻐해 주니 달리 자신을 가꿀 필요도 없다.

모든 게 외부로부터 채워지니 스스로 채워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미인은 속에 든 게 없는 까닭을 알 게다.

아름다운 것만으로도 뽐내고 대접을 받는데 싫은 공부는 왜 하며 귀찮은 교양서적은 왜 읽어?

그래! 외향적인 청소년은 화려하다. 확실히 그들에겐 주어진 것이 많다.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남앞에 나서서 말 한마디 변변히 못하는 내향성을 누가 거들떠나 보랴. 해서, 그들은 열심히, 그저 열심히 공부할 따름이다. 먼훗날 50, 60대 두 사람의 추수는 어느 쪽이 풍성할 건가? 정말로 축복받은 성격은 어느 쪽 일까요?

당신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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