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고민

여러분이

2010년 2월 23일 23시 40분 등록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연애편지를 주고 받으며 시작하였습니다.
올해 벌써 서른 여섯씩 똑같이 나이를 먹었고 3월2일에는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며
4살짜리 아들도 있는.....  그런...  겉으로 봐서는 남부러울 것 없을 남자입니다.

요즘 들어 그 사람이 참 보기 싫어집니다.
이제서야 꽁깍지가 벗겨지고 사랑이 식어 가는 것일까요?

흔히 얘기하는 성격차이가 점점 제가 넘지 못할 산 처럼 느껴집니다.
'신화와 인생' 에서 캠밸은 결혼 생활은 헌신이라고 하죠.
그 헌신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요?
배우자와의 관계를 어느 수준까지 최우선으로 해야 할까요?

부모님으로부터 바람직한 부부의 삶을 보고  것도 없고,
이런 저런 글귀에서도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남자들의 이야기들 속에서도, tv에서도
제 마음을 움직여 줄 만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앞서 캠밸의 말이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가 싶지만,
정말 그것이 정답이라면 끝없는 헌신에 저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요?
헌신하면서도 나를 버리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요?
나를 버리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위안이라도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까지도 수많은 논쟁들을 해 왔지만 왜 아직도 한 꺼풀 벗기면 똑 같은 이유로 싸우고 있을까요?
날을 잡아서 밤낮없이 싸워 볼까요?
그런데, 이제는 싸울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 같아 그것도 쉽진 않네요.

애들 때문에, 사회적 체면 때문에 가면부부로 사는 것은 죽어도 못하겠는데,

아..... 그릇이 작아 그 사람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종교의 힘을 빌어야 할까요?

누군가 듣고 계시다면 깨달음을......

IP *.168.97.244

프로필 이미지
하루살이
2010.02.24 14:52:56 *.123.215.74
저와 제 아내도 올해 서른 여섯이고, 우리 아들도 이번에 초등학교 입학합니다.
저희도 비슷한 처지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제 생각을 몇 자 남깁니다.

남편이자 아빠, 직장의 한 일원으로서의 '나'도 나고, 고독한 '나'도 나입니다.
어느 한 쪽만 잘해서는 완전한 자아실현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 조화와 균형이 좀 어긋난 상태쯤이라고 생각해보심 어떨까요?

일단은 고민자님이 당면한 문제는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이 수학문제처럼 정확한 해답이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일단 악화되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좀 두시고,
고민자님만의 고독한 '나'의 세계로 파고들 소소한 일들을 좀 만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취미나 동호회 활동도 좋겠구요, 독서와 사색도 좋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민자님의 초점과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옮겨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몰두할 것들을 찾으면서 고민자님께서 언급한 참다운 존재의 의미를 찾아보세요. 

거울을 보고, 나란 놈이 그래도 아직까지 쓸만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노력해보세요.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는데,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멀리서 친구에게 친구가...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10.02.24 21:31:46 *.219.168.122
벗으로 좋게 해결되길 바라는 뜻에서 나누고자 하는 글이니  참고로나 여기셔요.

가족 구성원 간이나 가정사로 인해 뚜렷한 원인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상태에서 기인하는 문제라면 님만이 가장 정확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해답도 님 안에서 찾아 실행에 옮겨야 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지금과 같은 님의 표현만을 전제로 가정에 주로 발생하는 문제에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언급하셨듯 외관상 남부러울 것 없는 정도면 사실 살만한 가운데의 약간의 투정같은 '엄살' 이거나, 제공된 정보로 간단히 추리해 보아도 흔히 말하는 '권태기'적 요소의 하나로 별일 아닌 것이 감정상 부딪힘으로 인해 일이 공연히 확대되어 가는 양상의 경우가 아닐까 의심해 봅니다. 대게의 부부 갈등이 그러하니까요. 그러나 자칫 방치하다가 그릇된 파국의 양상으로 치달을 경우도 간혹 있으니 이 점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작은 문제일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는 의지를 갖는 것도 중요한 덕목과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솔직히 윗글에 심각성을 어느 정도의 무엇에 초첨을 두고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독자로서 이리 저리 머리 굴려 생각해 봅니다. 한 때는 유쾌하지 않은 일로 여겨져 다시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무지 답답했던 경험때문인지 마음이 동하네요.^^

요즘 들어 그 사람이 참 보기 싫어집니다. 흔히 얘기하는 성격차이가 점점 제가 넘지 못할 산 처럼 느껴집니다.
- 라고 하셨는데, 해결 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 엇갈린 주장으로 인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반목하는 양상으로 치닷고 있어 보입니다. 이럴 때는 서로간 관심을 당사자에서 다른 것들로 옮겨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방법을 사용하실 때는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언행을 취하지 마시고 이나 좀 떨어진 곳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면서 설득하며 실행에 옮겨 보시기 바랍니다. 쌍방이 합의하면 좋지만 어느 한쪽이 원하지 않을 경우 맞서 밤새 싸우며 해결해 보려 하지 말고 상황과 감정에서 벗어나서 생각하고 판단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평소 혼자만이 홀가분하게 거닐고 싶었던 산이든 강이든 다락방이든에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보기로 합니다. 하여 감정을 필요한 부분에만 써가도록 하며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 애시의 취지에 부합해서 여유부터 갖은 후에 차분히 추슬러 보자는 말씀입니다. 아닌 말로 지금 당장 헤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심사숙고 하여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노력해 보자는 데 안 될 것도 못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선 당장의 부대낌과 울화로부터 빠져나와 냉정해 보자는 말씀입니다. 쓸데없이 가족에게 불필요한 언행을 보이지 않으며, 그로써 더 화가 나고 쌓이게 하는 이중, 삼중의 문제와 고통에 볶이지 말고 해결의 의지를 갖고서 불필요한 요소를 차단시키는 가운데 한가지씩 끊어가 보자는 것이지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연애편지를 주고 받으며 시작하였습니다.
-  추억이 많은 가족 같은 부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사람을 만날 수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서로에게 딱 맞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아내와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당시는 저에 비해 어른이었던 장년층의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떨어져 살아보니 아내는 생각 나지 않는데 아이들이 생각난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말이 맞는 지 다른 지 10여 년 이상 가족과 헤어져 지내며 느껴보니 제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의 경우 상대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데에 십 년가까이 걸렸고, 그러고 나니 아이들이 더 밟히기 시작하더이다. 물론 제 경우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닐 것입니다만 님의 글로 보아 가정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 이런 말씀을 드려봅니다. 이는 누가 되었든 아이들이란 명분에 발목을 잡히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님의 글을 통한 저의 느낌으로는 님의 글에 담긴 의지 한편에는 가족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내포한 꿈이 서려있다는 느낌이 전해오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님은 고민을 피하고자 하기 보다는 해결해 보려하는 의지와 욕구가 도사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당해야 하는 부분과 양이 너무 버거워서 힘겨워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는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 배우자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입니다. 또 한가지 님께서는 현재 처한 현상황에 대한 고찰을 원하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어쩌면 님의 내면에 대한 갈망과 탐구를 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하다면 아내와 맞서서 대화를 시도하려다가 반목을 일으키기 보다 휴전을 선포하시고 서로간 자신들에 대한 필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때 준수하여야 할 사항을 미리 몇 가지 정해 두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자면 다시 안 볼 남도 아니고 가족이니까 다툴 때라 하여도 절대로 막말이나 반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무엇이든 다 들어주려는 자세로 경청의 성의를 보입시다. 그래도 자기 생각에 몰입되어 상대의 표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당장에 덕을 쌓지 못했다고 최소한의 기본적인 예의마저 내동댕이 쳐버리는 망종을 선택하지 않고 절제해 나가며 시나브로 분위기를 개선해 봅시다. 폭력적인 언행 외에 한 가지 더 주의해 삼갈 사항은 상대의 말에 일일이 꼬투리를 잡거나 물귀신처럼 물고늘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지 않아도 문제의 반은 해결이 될 것입니다.


<휴전 선포 후 각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 충분히 알차고 현명하게 갖기>
내면 탐색에 대한 간략한 예
1)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기:
    네 가지 방법으로; 남이 아는 나, 남이 모르는 나/내가 아는 나, 남도 나도 아는 나, 남도 나도 모르는 나
2) 현 상황, 무엇을, 어떻게, 왜 등에 대해 생각하는 대로 솔직한 글쓰기를 통해 정리해 볼 수 있다.
3) 목표, 지향점, 가치관, 꿈, 원하는 일상 등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한
  자신의 연령대별 라이프사이클에 대해 단계별/ 나이별로  그리고 구체적 내용 적어보기
4) 가정, 일, 운동, 학습, 기도, 사랑 등 나름의 필요와 계획에 대한 정의와 포트폴리오 짜기
5) 부모님(양가), 자녀의 장래 계획,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등에 대해 살펴보기 
6) 이런 것들이 귀찮으면 모닝페이지 방식을 채택하여 생각나는 대로 쓰며 내면 탐구해 보기

시기적으로나 연령대로 보아 서로 각자의 입장과 의욕이 가장 왕성할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의 판단으로는 아내분 쪽에서 더 그런 욕구가 일 시기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일에서든 추구하는 욕망에서든 뭐에서든지 간에 말이죠. 그래서 인생/결혼생활의 기간 중 대립을 할 수밖에는 없는 시기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우선 아내로서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다부지게 살림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낄 것입니다. 가정 경제적으로는 본격적인 지출이 늘어가는 시기에 접어드니 긴장감이 앞설 것입니다. 남편분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위에 언급된 독서부분과도 같이 자기계발 등 기타 개인적인 시간과 고민이 짙어지는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어느 때보다 휴식/창조공간과 시간/여건이 필요한데, 가족에게 더 본격적으로 묶여야만 할 뿐인 것이 일시적으로 짜증스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고단함에 있어 위로와 지원이 있기는 고사하고 이것도 저것도 여의치가 않으며, 안식처가 좁아지니 당연 편치 않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남편 분께서 아내분에게 배려하실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여성분으로 하여금 '외롭다'고 하는 생각이 들게 하거나, 행여 그와 유사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외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외로움의 이유는 사람마다 제 각각 달리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한마디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의욕이 강해진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라는 점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매사 필요를 챙기는 센스를 발휘하면 한결 부드러운 대화와 해결의 진전을  보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부분의 소통이 원할한가 점검 하시고 서로간 공동의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역지사지도 하고, 현 상황을 뒤집어서도 생각해 봅시다!
잠시 멀리 떨어져 생각해 보면 아마 서로간 같은 고민을 두고 상황이 불충분하니 합리적인 해결방안(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득하기 위한 일환)을 찾기 위해 다툼/논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사자간 익숙해져버린 임무에 얽매여 살다보니 놓친 부분에 대한 저마다의 아쉬움이 잠재되어, 답보를 당당히 거부하는 가운데 진화를 위한 개선과 발전의 욕구가 왕성히 삭틈에서 오는 일은 아닐까요? 보다 건강한 가정의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 더욱 구체적이고 적략적인 향상을 꾀하고자 하는 한편, 더 나은 가정생활의 총체적인 바른 가짐을 다지기 위함 말예요.

우연찮게 저는 이번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을 다소 편하게(?) 시청할 수 있었는데요, 다른 어느 때 보다도 정말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어요. 실시간 전개되는 리얼 다큐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 인생도 저렇듯 차곡차곡 쌓여져야 탄탄한 모습을 갖춘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올림픽은 각본 없는 드라마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철저히 계획되는 각본들 임에 전율의 감동이 이는 한편, 부족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깨달음을 직접적으로 공표해 주는 현장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가정이란 한사람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해서 고단합니다. 그렇더라도 한사람의 노력이나마도 귀하고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나 이외의 것에 대한 무한정의 빼앗김이나 헛수고의 긴여정이라 여겨질 지라도, 일단 의지하는 바대로 몰두해보고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것이 바로 헌신하는 것 아닐까요? 그게 결국에 돌고 돌아 내게로 오게 될 수밖에 없고 오는 것이 바로 덕이나 업은 아닐 까요? 쓸데 없이 긴 헛소릴 늘어놓은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선택은 님의 몫입니다.


좋은 선택을 하여 좋은 결과를 얻고 좋은 일들의 길로 들어서 오래 좋은 소식을 나누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프로필 이미지
2010.02.25 19:45:32 *.241.151.50

써니님의 글을 오늘 아침에 확인하고 저는 세번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첫째는 글을 보는 순간 그 방대한 분량에 그랬고,
둘째는 저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내공에 그랬습니다.
처음에 제가 글을 올리려고 마음 먹었을 때는 그래도 고민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인데 좀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이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기분도 안 좋은데 시시콜콜한 얘기를 써내려가는 것이 내키지도 않고 해서 혼자만의 넋두리를 실실 토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써니님께서 제가 표현 하지 못했던 구체적인 상황들을 이토록 시원하게 긁어주시고 더불어 이 짧은 글속에서 저의 성향까지 거의 정확하게 추측을 하신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조언해 주신 내용들을 곱씹으며 아내를 생각해 보니 제시해주신 해결책이 바로 아내가 원하는 것이었다는 순간적인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휴전을 선포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싸우고 나면 아내는 나중에 얘기하자하고 휴식을 취하고자 하지만 저는 당장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저의 성장과정에서의 문제입니다. 어린시절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한창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 저는 그래서라고 봅니다 - 저는 어린시절부터 지금의 아내와 사귀었고 친구와 선생님들이 나의 엄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지 않으면 너무 슬픈... 더욱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더 말씀드리자면 얘기가 길어질 것 같고, 여하튼 지금도 아내가 제안하는 휴전은 '나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널 버리고 떠나버릴꺼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집니다.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벌거벋고 명동거리 한 복판에 서 있다면 이정도 화끈 거릴까요?
남자로서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을 들켜버린다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그러나 그게 어쩔수 없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팽팽하게 맞서서 저를 힘들게 하는군요.

아.... 벌거벗었더니 머리가,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더 이상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써니님께서 써주신 내용을 되새김하며 다시 한번 내면을 탐색해 보고 싶은데,
내게 덕지덕지 붙어서 생각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오징어 껍데기 벗겨내듯 벗기고 싶은데 어떻게 벗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전보다 좀 나아진걸 보면 천천히 치유가 되고 있는것 같긴한데,
순간순간 살아 나오는 것을 보면 아주 깊히 박혀 내가 약해질때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에서는 서릇여섯 행세를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아직 성장하지 못한 유아기의 내면을 표출하고 싶은 욕구와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보여야 하는 모습과 또 다시 충돌하면서 저와 아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면 탐색...
20살 때부터 해왔지만, 예를 들어주신 것처럼 그렇게 치열하게는 해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제가 걱정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한 번 해보겠습니다.

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되새김질 하면서 행간의 담긴 뜻을 깨우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살이님과 ^^님도  답변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
2010.02.24 22:11:21 *.67.70.190
헤어지세요


라는 답변이라도 기대하시는건가요? ^^
프로필 이미지
2010.02.26 11:14:54 *.96.12.130
한 게시판에 '어느 이혼남의 글'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던 글입니다.
상황마다 딱 들어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이라 생각해서 옮깁니다.
글이 좀 길지만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결혼 10년차이다. 하지만 이혼경력 2년차이기도 하다.
나에겐 아들 한명과, 딸 한명이 있다. 그리고 아내는 없다.
그 자리를 내가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아내는 나의 곁을 떠났다.
부부는 물방울과 같은 것이다.
두 물방울이 만나서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여느 부부처럼 우리도 한때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아내는 애교도 많았고
한편으론 엄마 같은 포근함을 지닌 여자였다.
우리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부모님과 가까이 살면서 부터였을 것이다.
거리상으로 10분 정도의 거리로 우리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첫애를 놓은 후였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어느 순간 아내는 투정이 늘기 시작했다.
첨엔 다독여 주기도 해보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나 역시도 아내가 못 마땅했다.
부모님과 한집에 살면서 부터는 관계가 더욱 악화 되어갔다.
난 그 모든 잘못이 아내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기만을 아는
그런 이기적인 여자라고~~
부모님이나 형제 모두에게 항상 아내는 늘 불만 이었다.
그런 아내의 투정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아내 하나만 참아주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참아주질 못했다. 그리고 우린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좋은 부모 좋은 형제일지 모르지만
아내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걸
남편들은 명심해야 된다. 나에게 좋은 친구지만 다른 친구에게 그 녀석은 아주 안 좋은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편들은 아내를 대신해 효를 다하려 한다.
“결혼하면 남자들은 효자가 되네” 늘 아내가 나에게 하던 말이었다.
결혼을 해서 보니 늙어가는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안스러운 마음이 하나 둘씩 생기더니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더욱 간절해 졌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아내 역시도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마음만 간절했을 뿐이었다.
난 내부모를 모시는 것에 우선시 했으면서도
처가댁 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우선시 해본적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기적인 건 아닐까? 왜 우리 집이 우선시 되는 걸까?
하지만 난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아내를 통해서 효도를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아내가 나를 대신해 우리 부모님께 형제에게 잘 하는 게 좋았다.
아니 어쩜 대리만족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하는 것 보단 아내가 하는 게 사랑받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정당화 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 했다.
아내 역시도 바랬을 일들을 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래의 상황들처럼~·
* 아내는 우리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드린다.
- 나는 가끔 처가에 전화를 드린다. 그리고 아내에게 처가에
전화를 했다고 대견스럽게 이야길 한다.
(잘했지? 라고 칭찬이라고 듣고 싶은 사람처럼)
* 아내는 시댁에 못해도 한 달에 2~3번은 가려고 애쓴다.
(아내는 일을 한다.)
- 나는 아내가 처가에 가자고 하기 전에 먼저 가자고 한 적이
별로 없다.
* 제사 있는 날이면 아내는 하루 쉬더라도 아님 일찍 마쳐서라도
와서 음식을 하고 설겆이를 하고 있다.
-나는 한 번도 처가 제사에 가본 적이 없다.
우리 집 제사는 당연히 가야 되는 것처럼 옷을 차려입고 간다.
하지만 처가 제사 때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
(우리 둘 다 양가 부모님은 살아 계신다. 우리 집은 증조까지
제사를 지낸다.)
* 아내는 우리 가족의 생일이며, 제사며, 기념일등을 기억하면서
늘 신경을 쓰고 꼼꼼히 챙긴다.
- 나는 한 번도 처가 가족들의 생일이며, 제사며, 기념일등을
미리 아내처럼 신경쓰고 챙긴 적이 없다.
아내가 전화를 드리라고 하면 전화를 하는 정도였고 그 모임에 참석하는 정도였다.
* 아내는 휴가 때면 바리바리 싸들고 간 음식을 장만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휴가는 쉬기 위해 가는 것인데.....
아내는 휴가 때마저도 집안일을 해야 했다.
- 처가랑 휴가 갔을 때 밥을 해먹은적이 없다.
끼니때면 사먹고, 놀았다.
그때 아내는 정말 휴가다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 명절 때 아내는 힘들게 제사음식이며 명절음식을 준비하고
하루 종일 부엌에 서서 일을한다.
나는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청소하고, TV보다가 잠도 잠깐자고 저녁을 먹고 난 후 가족들과
놀고,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명절 당일 날 처가에 저녁 늦게 간다.
모처럼 모인 가족들 보기 힘들어서 누나들 오는 거 항상 보고
간다. 처가에 가면 난 그전날의 피곤함에 잠을 청한다.
아내는 처가에서 몰려오는 잠을 청한다. 처가 식구들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그 이튿날 오는 경우가 많았다.
* 내가 아빠가 되던 때~~우리 부모님이 아기를 보고 싶어 하셔서
친정에서 몸조리 하는 아내에게 가자고 이야기 한다.
보고 싶어 하는데 보여드려야 된다고 아내를 데리고 아기를
데리고 집에 간다. 산후 몸조리가 중요한데 그건 아직도 아내에게
미안하다.
부모님의 보고 싶음 보다 아내의 몸을 생각했어야 하는 게 당연한
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내를 데리고 갔었다.
* 같이 살면서부터 나는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서 씻고, 저녁 먹고,
아이들하고 잠깐 놀 아주고 TV시청을 하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
가끔 주말에 아이들과 부모님 모시고 근교에 놀러가고 외식하고
그렇게 하는 게 다 일거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하루 세끼를 꼬박 챙기고, 아이들 뒤치닥 거리에 집안일에
하루 종일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난 아내가 저녁때
하는 그런 투정들이 갈 수록 짜증스러워지 기 시작했다.
아내는 내가 알아주길, 이해해주길, 숨 쉴 구멍을 찾아주길
바랬을 것인데 말이다.
나는 아내를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점점 말수가 줄기 시작했다.
어느 날 부터는 아예 입을 닫아 버렸다.
투정도 하지 않고, 싸늘하게 나를 대했다.
우리 부모님을 모시는 게 그렇게 불만이냐는 식으로
너 같은 여자와 더 이상 살수 없다고 했다.
생각 만해도 무섭고 이기적인 여자라고 해버렸다.
난 내 부모 감정과 형제들 감정만 중요시 했지
정작 아내의 감정들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해주지 않는 아내가 미웠다.
아내가 화를 내는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고
아내에게 참으라고 하기 이전에 내가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인식을 시켜 주었어야 될 일들 이었다.
난 아내에게 양보하라고 만 했다.
부모님의 섭섭함도 참으라고 그런 분들이 아닌데

"왜 그러나 몰라" 식으로 달래곤 했다.
분명 그건 잘못 된 것인데두 말이다.
하루 이틀, 점점 우리부부는 멀어져갔다.
그리고 결국 헤어졌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면서 나는 자식이기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 형수가 모시기 싫어서 불쌍한 우리 부모님 나라도
모셔야지 된다는 생각에
아내의 의견도 듣지 않고 같이 살게 된 게 나의 잘못이었다.
누구에게나 부모는 소중하다.
하지만 결혼을 함과 동시에 시댁에 귀속이 되어버린
아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남편들에게 묻고 싶다.
위에 나열한 몇몇 가지 상황들에서도 남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자신이 효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내처럼 처가에 똑 같이 하고 있는지 말이다.
부모님을 모시면서 그 흔한 영화한편 보러가는 날이면 나 몰래 아내에게 타박하던 어머니
외식이라고 할라 치면 부모님이 맘에 걸러 제대로 외식하번 할 수
없었던 일등 너무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에겐 인자하고 좋고, 사랑하는 부모님이지만 아내에겐 시부모님
이란 걸 몰랐다.
아내에게 시댁은 서 있어도, 앉아있어도 결코 편하지 않은 곳인데
말이다.
늘 아내는 친정을 휴식처로 여긴다.
친정에 있을 때 아내의 얼굴과 맘은 편해 보인다.
아무리 우리 부모가 아내를 딸처럼 여긴다 해도 나 만큼은 될 수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부모님한테 아내는 며느리였던 것이었다.
남편들은 이점을 착각해선 안 된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다. 우리는 처가에 가서 손님대접을 받고 온다.
하지만 아내를 봐라.
사위처럼 처가에 하는지..
아내들은 시댁에 그 이상을 항상 하고 온다.
만약 남편들과 아내들의 자리가 바꾼다면 분명 우리 남편들도
아내들과 같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이혼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성격 탓도 있지만
시댁과의 갈등으로 인해 이혼하는 경우가 생각보단 많은 %를 차지
하고 있다.
“난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 그런 여자완 살수 없어”..
“우리 집에 이렇게 밖에 못하는 여자와 살수 없어”라고 한다.
당신과 평생 갈 사람은 아내다. 부모도 형제도 아닌 아내이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결혼을 했는가?
“착한 며느리”로써 아내를 보고 결혼을 했는가?
아님 묵묵하게 싫은 소리 안하고 일만하는 아이만 잘 키워주면 되는 이유로 결혼했는가?
나에게 시집와서 사랑스런 나의 아이들도 놓아주고, 살림도
잘했던 아내를 난 며느리에 맞추어서 보았다.
그런 감정들은 하나 둘씩 쌓여져 갔고, 급기야 터져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소중한 걸 잃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고 한다.
지금에 내가 그런 모양이다.
아내와 헤어진 후 마음의 이 빈자리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었다.
내부모도 내형제도 말이다.
부모가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형제 또한 자신들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었고,
단지 난 그들에게 가여운 존재일 뿐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삶을 혼가 견뎌가야만 했다.
좀 더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줄 껄..
내가 좀 더 참아 볼 껄.. 하는 후회가 든다.
난 지금의 남편들이 나처럼 소중한 것을 잃고 난 뒤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찌 보면 우리 남편들의 잘못이 크지 않았을까?
분명 아내들은 이야기 했을 것이다.
힘든 마음을 우리가 알아주고 보듬어 주길 말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것이 아내에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질 깨닫지
못한 채 아내를 바꾸려 했을 것이다.
앞에 10계명만 잘 지켜나간다면
나 같은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소중한 걸 깨닫기 전에 그것을 지키는 자세부터가
중요할 것이다.

♠ 나의 가정을 소중히 지켜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게 나의 가정이다.
부부는 등 돌리면 남이라 듯 이렇게 돌아서고 나니
정말 남남이 되었다.

♠ 항상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가꾸어 가야 되는 게
가정인 것 같다.

남편들이여~~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말기 바란다.
이해한다면서 말로 아내를 순간 안심시키려 하지 말고,
아내가 진실로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존중해 주어라.
그리고 가슴으로 같이 아내가 아파하는 것들을 같이 아파해줘라.
그래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인생을 존중해 주어라.
이름 석자에 달린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해줘라.
누구의 며느리도 아닌 누구의 엄마도 아닌 누구의 아내도 아닌이름 석자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해줘라.
그리고 더 이상 시댁에 아내를 맞추려 하지 마라.
나의 반려자로 아내를 보아라.
그리고 한가지 명심할것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 했지만 나에겐 좋은 부모라고 하더라도
아내에겐 불편하고 어렵고, 때론 밉고 싫은 사람일 수 있다.
아내에게 참으라 이해하라 하기전에
한 번쯤 부모님에게 나에겐 아내가 중요하다는 걸 인식시켜줘라.
팔불출이라는 소리가 나을 것이다.
효자가 되길 바란다면 지금의 아내를 떠나 보내주어라.
아내는 시댁의 며느리로써 맞추어 지기 위해 결혼한 게 아니다.
당신과 자신의 삶을 위해 결혼을 한 것임을 잊지 마라.

그런 자신은 처가를 위해 맞추어 사는지 한번 돌아 보라.
그리고 되도록 이면 시댁과 멀리 살아라.
부모는 가까이 있는 자식에게 의지를 하게 된다.
그럼 아내가 힘들어 진다. 요구하는 게 늘어가기 마련이다.
부모를 생각하기 전에 아내의 마음을 읽어라.
내가 아내에게 잘하게 되면 자연히 시댁에 잘 하기 마련이다.
아내가 믿고 따르는 사람은 시부모님도 아니고,
친정 부모님도 아니다.

오직 나뿐인 것이다.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당연히 내 주위 모든 사람에게
소홀해 지기 마련이다.
난 지금 아내와 재결합을 위해 노력중이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그렇게 다시금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지금 그것 뿐이다.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10.02.28 18:07:38 *.36.210.230

^-^*

저 역시 성질이 급해 화면만 바뀌어도 감정이 살아나지 않거나, 한글 등에 먼저 쓰고 붙여넣기 등의 방식을 취하려 하면 점검하고 글을 올리는 느낌이 들어 그만두게 되거나, 옮겨 쓰는 사이 제 코가 석자인데 공연히 남의 일에 참견이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에 지워버리게 되기도 해서 직접 대고 쓰다보면 장황하고 말이 꼬이는 등의 부족함을 보입니다. 저의 기질과 성격 그리고 부족한 면입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전하고자 하는 뜻을 잘 이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

답 글을 읽다가 오늘은 변경연의 구사부님을 통해 깨우치게 되는 방법을 하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추진하는 계획과 목표의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진행되어 가는 일의 과정들 중간에 작은 성과들이 모아져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루하지 않고 덜 힘이 들며, 탄력을 받아 지속력을 발휘해 나갈 수 있고 의지가 꺾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노력하시는 중간에 의도적으로라도 스스로에게나 상대로 하여금 포상을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안해 봅니다. 휴전 상태를 취하고서 완전무결하게 일의 마무리를 지으려고 서두르거나 완벽주의를 지향하기보다 단계적으로 부분적인 성의나 노력을 표현해 보자는 말씀입니다. 가령 싸우되 냉전기간 동안 집을 나가지는 않기로 했다면 일찍 귀가하여 조용히 책 읽을 시간을 갖거나 동네 독서실이나 까페를 이용하여 자신을 반추해 보고 당분간 다툼을 줄이는 노력 등을 서로 격려하고 보상해 주는 방식입니다. 언어로도 할 수 있고 분위기 연출이나 선물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훨씬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어떨까요? 휴전 기간 동안 그로인한 기분 상함을 술이나 담배 등을 통해 풀려하기보다 참아주는 아내나 자신의 기분 전환을 위해 매일 꽃 한 송이를 화병에 꽃아 주는 것입니다. 점차 집안이 온통 아름다운 꽃향기로 가득해 지겠네요. 상징성도 의미도 나쁘지 않겠죠?


끝없는 헌신에 저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요? 헌신하면서도 나를 버리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요?

나를 버리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위안이라도 어디에 있을까요?

그래요. 우리가 역지사지 하며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문제점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도 입장을 바꾸어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요, 일/문제에 있어 상황의 결정/판단은 단편적 현상의 직시라기보다 축적되온 경험을 통해 잠재된 의식의 지배를 받아 판단/인지하게 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구라도 좋은 환경과 습관을 끊임없이 노력하며 이끌어 나가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망령될 수가 있는 것이고요.

단편적으로 당신(우리)이라는 존재는 아들, 남편, 아버지, 사회인 등이라는 것으로 이미 존재의 가치와 의미가 너무 확실하고 충분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생활에서 느끼지 못하거나 가치 기반이 흔들리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편하게 주변에서 현존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여기고, 다만 취하지 못한 선망의 대상들만을 성급하게 추구하게 될 경우 종종 헛갈림에 헤매게 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간과하여 놓치지 말고 차근히 모색할 시간을 갖는 것과, 지금처럼 이러한 결혼생활의 시기적으로나 상황적 요소들이 사회생활의 확대적인 면과 맞물려 돌아가는 현상에 대한 이해들도 함께 심도 있게 고찰해 보면서 보다 긍정의 대안과 모색을 살펴보는 일은 한 개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 간의 융합을 위해 개개의 요소들에 대한 한 부분적 이해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필 왜 내가 대중에게 사례로나마 가십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부분을 조금 감수하고서 많은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심각한 일이기도 하고, 요즘처럼 이혼이 난무하고 책임을 외면하려드는 싱글 족들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개선이나 가치관 정립의 일환으로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결혼 등과 더불어 본격적인 사회생활(양가의 가족, 소득의 분배 및 지속적인 공급, 생활전반 및 사회적 책임 등)을 시작하며 동시에 시시각각 경쟁에 접하여 살게 되다보니 경쟁 우위나 지배를 가치로 두거나 의도하며 산 것은 아니지만, 어느덧 동화되어 사회가 조장하고 있는 경쟁적 구도의 시달림 속에서 가치의 기반을 찾게 되는 바람에 벌어지는 현상들과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무책임하게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문제를 확대해석하거나 책임회피 등으로 전가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말입니다.

비록 우직하거나 의연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갈급하게 처한 개인적인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지혜를 촉구하기 위한 시도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답답함에 대한 문제 해결의 모색 및 바른 기준과 혜안을 확고히 얻고자 의도함조차도 일상의 한 치부를 들어내는 것으로 오해되어 거론하기가 힘들고 지레 주눅이 들게 한다는 점은 시정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네 가정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본말의 의도를 왜곡하는 매우 안타까운 현상으로 지양되어야 할 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님의 남다른 솔직함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요, 작금의 현대인의 실생활에서 정말로 필요 불가결한 부분의 자연스러운 노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당사자에게는 생의 근본 이념과 정체성 확립과 맞물려, 한사람 나아가 한 가정사에 있어 중요한 기틀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가족 구성원 각자(부부뿐만이 아니라, 자녀, 양가 가족 및 친구 등)로 하여금 개인의 사회성과 실체에 중요한 모태가 아닐 수 없기도 할 뿐더러, 한 가정의 매우 절실한 부분으로 이해되어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원과 함께 사회문화적 현상의 양상으로 취급되어 개선과 대책이 시급한 부분으로 모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현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사회 양산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실제 과거에 비해 여성으로 하여금 점차 우월성이나 기득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는 그들의 가치기반을 흔드는 매우 갈급한 문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 남성들 가운데에서조차 "인생 뭐 있어?"하며 지레 자신의 역량을 한정 또는 축소하고는 더 나은 바람직하고 긍정의 진취적인 기상을 꾀하기보다 그저 당장의 현실에 쉽게 안주하며, 편하게 실속이나 차리고 말자 정도를 고수하다 고꾸라지는 현상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요령껏 잘 살면 그만"이라고 하는 얕은 가치를 선망하다 보니 임시방편적이고 그릇된 처방을 일삼기도 하며 그야말로 가면적인 성공을 거두기에 급급하기도 합니다. 표면상으로 나타나는 외형적인 것들에만 온 신경을 쏟고는 실제의 상황에서는 건강한 항상성을 잃어 고독을 느끼며 죽고 싶을 정도의 심각한 우울감에 빠지거나 양심적 번뇌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도를 넘어 뻔뻔한 경우는 아예 말 할 것도 없지만 말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볼 때 세심하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게의 불륜이나 사회적 악이 그러하듯 자신들은 자신들이 하는 허무맹랑한 짓거리를 타인이 전혀 모른다고 전제하거나, 감쪽같이 속아주기만을 기대하고 초지일관 영악하게 잔머리를 굴리며 잡아떼기 일수 이거나,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 양 추악한 폐단을 서슴없이 자행하고도 마치 하늘의 뜻 이기나 한 것처럼 권세를 남용하거나, 기득권을 남발해 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절대 잘못을 시인하지 않음은 철칙으로 물론이고 더욱 앙큼 떨며 완벽한 눈속임으로 가증스런 임기응변의 연기를 서슴없이 해대기도 합니다. 대게의 경우 이러한 현상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말거나 분노하기만 하고 개선시킬 힘이 미약함은 아무소용이 없기도 하여 울분하다 지쳐 쓰러지고 말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달리 힘이나 여유가 없으니 말이지요. 

이러한 현상들과 마주하게 되거나 유사의 문제에 부딪힐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힘을 길러 갖는 것 혹은 사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 아무 방안이 없기도 합니다. 가진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급선무요 가장 안전한 방법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내 지식과 실력은 누가 쉽사리 빼어갈 수 있는 것이 못되니 가장 든든한 자원이 될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선 내가 속한 가장 가까운 주변인 가족부터 잘 보살펴 충실하게 지켜야 하고, 나아가 더욱 박차를 가하며 좋은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가정부터 바로 세우고 가장 밀접하게는 직장, 인간관계 등 사회생활에 따른 여러 현상에 대한 자신만의 주체성과 대처를 단도리 하는 한편, 궁극의 가치관 정립을 매순간 시나브로 확고히 다져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님의 이러한 시도와 고찰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요 어쩌면 위대한 개인으로 가기 위한 사전 단계의 혁명으로 까지 생각됩니다.


희생과 헌신, 일상의 항상성과 무엇이 다를까요?

가장의 희생과 헌신이란 다름 아닌 육체적 노동과 함께 가족에게 밥벌이를 해주고 평생 가족의 끈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적 상황들을 보다 긍정화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족 구성원 서로가 서로에게 기꺼이 보람과 성취의 기반이 되고 상생의 확실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슬기로운 가정 경영을 하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가장과 가족 구성원에게 필요한 요소와 부분들을 체크하고, 균형감을 가지고 의미있게 펼치며, 깨달아 리더해 나가는 한편, 지속적으로 더 나은 향상을 공부해 나가야 하는 점이 바로 희생과 헌신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또한 삼라만상의 일상적 토대와 기반 역시 바로 나로부터 모든 현상이 연결되고 의미부여 되는 것이기에 먼저 나를 돌아보는 것은 당연함 입니다. 모든 것의 동기가 당장은 타인을 위한 희생과 헌신만이 가중되는 시기에 처해 있을 지라도 그 결과와 산물은 결국에 이름의 주인을 찾아 들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설령 아무런 증인이나 증거할 성과도 없이 시행착오적인 과정만을 실행 중에 변변한 유서 한 장 못 남기고 허무하게 죽게 되고 말지라도 말이지요. 그러기에 존재가치를 가장 안정되게 인정해 줄 수 있는 가정이라는 기반을 확고히 하여야 하고, 지금과 같은 모색을 통해 바로 우리들이 깨달아 지키고 다듬어야 할 몫의 기본적인 과제를 찾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과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가장 먼저 나라고 하는 우주의 근본 점인 자신을 만족시켜 나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내 존재의 가치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구심점의 맥락이 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남을 위한 헌신과 희생도 바로 나라는 원점을 향한 (가족과 직장, 사회생활 등 관계 맺는 모든 것들과의 경영적 역량을 통해 되돌아오게 되는) 부메랑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의 선택은 각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구도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고, 솔로로서 학문에만 전념할 수도 있고, 보통의 가정을 꾸리는 경우 등 각자 지향해 가는 길은 다르지만 결국 한 점 흙으로 돌아갈 우리 자신을 향한 걸음걸이일 수밖에는 없는 셈이지요. 우리는 어떤 일에 엮여 살게 되던 종교적으로 희생과 헌신을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농도의 삶을 살아가게 마련인데, 어떤 모양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영위해 갈 것인가는 바로 각자의 역량과 몫이 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왕에 주어진 삶이라는 일상을 어떻게 영위해 나갈 것인가를 모색하며, 바르게 알고자 탐구하는 자세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분명한 일이요, 이러한 모색들은 어느 시점의 누구이든 간에 칭찬받아 마땅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항시 깨어있는 삶을 꾸준히 지속하여 노력하지 않고서는 고요한 지혜의 샘물을 퍼 올리듯 맑은 정신을 유지하면서 진정한 일상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고, 시기적인 상황이나 발생한 문제는 저마다 다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 주는 것은 커다란 덕목일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한 삶에 따라 일상의 항상성을 유지시켜 나가기 위해 헌신과 희생을 할라치면, 기왕이면 현명하고 즐겁게 운영해 갈 수 있기를 갈망하는 것이 당연지사요 매우 옳은 처사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고민에 빠지게 마련인 것들을 부꾸럽게 여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고민은 적고 실행이 많아야 건강한 삶이 영위될 것입니다. 저도 항상 이 점이 부족해서 큰일입니다.^^


종교도 그 스스로의 한계를 뒤집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헌신만을 강조하며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며 올바른 가치라고만 강제에 가까운 강요부터 우선 일삼을 것이 아니라, 왜? 무엇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는 지를 뚜렷이 떳떳하게 밝히고, 일상의 참여자가 진솔하게 느끼며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운데, 언제라도 의문의 물음에 적극적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하여(실체를 들어 내지는 못할지라도 뜻대로 쉽게 동화되지 않으면 무조건 강제하려 들거나 사악하다는 전제를 하며 몰아붙이기 전에 말예요), 그 정체를 뒤집어 까면서 모순된 맨살의 알몸을 보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신뢰성 있게 있는 그대로를 통해 전도나 포교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 마디 말이나 측근의 일방적 지지 세력 따위가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24시간 CCTV를 돌리듯 당당한 흐름의 운영을 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보다 더한 진실 따위가 필요치도 않을 것입니다. 종교를 통한 선과 악의 결과가 있고 없고를 떠나 좋은 의도를 가지고 좋은 일에 참여하고 좋은 생각을 노력하며 살다가 가는 것이 종교적 선을 이루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보이고 싶고 내세울 것만을 무조건 강조하다가 은폐 조작하려 드는 따위가 아니라 언제든지 홀라당 까뒤집어서 그 실체가 드러나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더 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올림픽경기를 통해 열광하는 것은 제한된 그 시간에 그동안의 희노애락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죄다 몽땅 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점을 위한 결점을 찾지 않는 한 완벽한 경기를 통한 승리를 거둘 때, 우리는 가슴 뭉클한 전율과 함께 진정한 감동을 하게 되지 않던가요? 누가 보라해서 보는 것이 아니고 느끼라고 해서 느끼는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현상과 실제에 주목한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던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은 신도 섬길 수 있어야 하거나 바로 나라고 하는 절대의 신부터 바르게 섬기는 공부와 순서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종교에 의한 깨달음을 얻고자 할 때 종교가 가진 가상의 힘에 기대여 의문을 잔뜩 품은 채 짧은 시간에 당면한 해답을 쫓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기만을 기대하기보다, 개인적인 당면 문제의 갈급이 무엇이고 무엇을 희망하며 어떻게 영위해 나가고 싶은 가를 함께 모색하는 가운데 필요와 가르침 사이의 균형감을 가질 수 있을 때, 진리에 대한 말씀이나 경전의 가르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실생활과의 조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믿는다고 표방하면 당장 천당에 가고 장소에 찾아 나서기만 하면 해탈이 절로 이루어지듯 금세 뚝딱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만능이라고 전제하거나, 한편에서는 사탄이다 회계 혹은 참회를 강압하여 분리와 소외를 조장하기보다 휴식(창조; 구원도 마음 놓고 편하고 자유롭게 상상을 꿈꿀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과 안정을 통한 즐거움과 자유로운 참여 가운데 호기심이 일고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도록 능동적이며 진취적인 리더십/이끔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했는데, 가자마자 발심이 금전이나 희생 봉사로부터 나오는 양 은근 돈부터 걷거나 바라고 일을 싸놓고서 기다리며 봉사나 강요하면서 희생이 아람답다고 강조하여 가르치며, 머리 깎은 사람이나 머리 위에 수건을 뒤집어 쓴 사람이나 십자가 앞에 선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조리 침 튀기며 말로만 먼저 앞세우며 실상은 자신들의 필요를 해결하는 방안을 취하고 행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여의치 않은 가운데 그렇게라도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어찌보면 편중되고 이기적인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생전 처음가도 금품만 희사하거나 한바탕 육체를 혹사시켜 노동을 제공하면 성실한 신도로 각광받는 시대에 살고 있음이 목전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때로는 그 접근초차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사회/종교 등은 돈 아니면 노동을 강요하며 우선적으로 물직적 기부에 치중하여 강조하면서 지나치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편하지 않은 점이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필자 역시 개인적인 안목의 이기심을 전제로 하는 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우리 시대의 종교/복지 사업 등도 순종과 희생봉사만을 부각시키며 실제로는 노상 후원회 유치 등에 급급한 재원 조성만을 꾀할 것이 아니라, 즐거운 참여와 기꺼운 발심 등을 선사하며 상호간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운영 방식을 도입해 나가는 것과, 본래적 수행의 길에 집중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교횔 가거나 절엘 가도 수도승이나 헌신하는 수행자보다는 생활인으로서의 방편이거나 경영만을 염두에 둔 경영을 일삼는 높은 분들을 만나기가 예전에 비해 한결 쉽기만 해 생각해 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먼저 본래의 취지에 충실한 연후에 이어지는 감동으로 참여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의 무엇을 얻고자 하든 마음 가짐과 선택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의미를 강조하면서요.^^ 모든 사물과의 인연은 시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도 주어지고, 뿐만 아니라 순간의 선택이 영원한 경우가 될 수도 있기에 말입니다. 또한 개별적 관심이나 인연으로 사물과의 단 한 번의 시도나 접촉이라 할지라도 마주함 자체가 간단하고 단순한 현상 이상으로 이미 전체요 그것이 곧 영원성을 내포할 수도 있어서요. 오늘 님과의 글 나눔이 마지막이라 가정하면, 지금의 순간이 바로 우리 대화의 전부요, 일생의 지금 이 부분이 바로 영원함이 되고 말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한번이라 할지라도 단순히 한번이라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순간적 현상이나 사실 자체가 생활적 의미 그 이상으로 전체적 개념이거나 영원성을 지니기도 한다는 뜻을 표현하고자 하는데 어째 전하고자 하는 의미의 전달이 쉽지 않네요. ???



아..... 그릇이 작아 그 사람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새삼스레 이 부분이 오늘 저에게 무척 새롭게 다가오네요. 첫날에도 이렇게 쓰여 있었던가 하면서 말이죠. 왜냐하면 님의 이 부분에 감동 먹었거든요.

저는 댓글 가운데 위의 신종윤님에게 "그대만한 사람은 흔치 않아" 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그러면 이 사람은 펄쩍뜁니다. "누나,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마. 우리 아내가 들으면 큰 일 나고, 대게의 다른 남자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잘해, 그러니까 제발 하지 마요." 라고 애걸하듯 말합니다. 저는 사실 그가 집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단지 그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항시 마음이 가족에게 모두 가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에 그 점이 가상할 뿐입니다. 근본이 그렇지 않으면서 어떤 일시적 행위만을 내세우며 자신이 성실한 가장임을 나타내려드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에 당연 돋보이는 부분이어서 이기도 합니다. 물론 때에 따라 내동 잘하는 사람도 순간만 방치해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도통 모를 일이긴 하지만 말예요.^^ ㅋ

가족은 의당 믿음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그저 단순한 한 사람에 지나지 않기도 합니다. 아무리 오래된 부부라 하더라도 아가페적인 사랑이기보다 에로스적인 사랑을 나누는 남녀관계의 부부인데 서로를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함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하며 놓치기에 문제를 만들며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요즘은 부모나 자식 할 것 없이 쌍방의 패륜도 적지 않은 시대와 사회현상 가운데 살고 있기도 하니까 과거의 조상들보다 세심하게 더욱 성실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하물며 아직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정도의 부부라면 좀 더 노력을 하는 것이 나쁠 것 없겠죠? 님께서는 어렸을 적에는 다소 밝지 못한 환경이었을 지라도 지금은 최소한 절대 꿀릴 것 없고 남부럽지 않을 만한 보통의 가정입니다. 어쩌면 보이지 않게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항시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자체가 일종의 스트레스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당사자도 힘들지만 상대역시 항상 이해할 수만은 없는 것이 사람이고 현실이니 이 점도 생각하면서 불필요한 부분들은 과감히 거두어 끊어버리고 좋은 생각으로 임하고 실천해 가십시오. 위의 종윤처럼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는 사람의 아내는 적어도 이러한 부분에서는 확신이 가고 그래서 좀 더 편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바로 이런 환경적으로나 역량의 다름과 차이점이 있어 저마다의 고민과 의미로 남다른 삶을 영위해 나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구체적인 예를 종윤으로 비교해서 든 것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함이지 다른 뜻은 전혀 없습니다. 그가 완전무결한 사내라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보여 지는 일상을 통해 신뢰할 만한 아우라 생각해서 입니다.

대게의 변경연의 남자들은 착한 심성의 소유자들이요, 정직하여 고지식하기도 하고 주변머리는 별로 없으며, 자수성가형이기도 합니다. 오직 성실함 하나가 인생 최대의 무기이기도 합니다. 덜 남자답고 멋은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선함과 신실함이 좋아 그래서 저는 변경연의 남자들을 좋아/신뢰합니다. 변경연의 여자들은 남자보다는 욕심도 많고 의지가 강한 것 같습니다. 항시 남보다 뒤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선도해서 이끌어가는 타입이기도 합니다. 깐깐한 자존심이 최대의 덕목이기도 하지요. 물론 개별성에 차이가 있고 이는 저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만.^^


도서 하나 추천하고자 합니다!

혹 읽으셨을지 모르겠네요. 혼자 읽을 때는 너무 이해가 가다 못해 당연하기까지 해서 뭘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당시로서는 무심히 여기던 책인데, 막상 두 사람이 한집에 살게 되어서는 독서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책이 있는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란 책입니다. 저 역시 상대에 대한 기대치만 높았지 정작 믿거라 하는 상대에게는 표현과 방식에 서툴러 독서의 효과를 보지 못하긴 했습니다만 훌륭한 고전이기도 하니 읽고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기술이란 서로를 향한 진실하고 구체적인 노력 외에 무엇이 또 있는지 궁금해 지기도 합니다.

오늘도 두서없이 짧지 않은 글을 남기게 됐네요... . 그럼 행운을 빌면서 이만. ^-^*

프로필 이미지
2010.02.28 20:16:46 *.168.97.238
써니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너무도 부족하지만 저의 변변치 않은 표현력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달린 두번째 저의 글은 감상적인 저의 기질로 인해 본래 하고 싶었던 얘기는 다 떼어먹고
휴전 선포하는 것을 잘 못한다는 대목에서 다른 길로 빠져버렸네요.

휴전 선포 했습니다.
휴전협상하려 했지만 아내가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앞의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내에게 제가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하게도 이제 당신은 나를 떠나도 나는 슬프지 않아라는 의사의 표현입니다.
당연히 아내는 모를 것이라 예상합니다.

아무튼 오늘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는 저의 얘기를 잘 숨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보여줘야 상대방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요.
허물없이 지내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휴전기간인데도 오늘 좀 말다툼을 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흘렸지만, 자존심이 엄청 강한 여자라서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아내가 눈물을 흘리면 저는 너무 속상했습니다.
같이 살자고 해 놓고 왜 이렇게 울려야 하냐라는 자책감에 속상해 하며 곧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최근에는 전혀 속상하지 않습니다.
제가 독해졌습니다.  속상한 것 보다 속터질것 같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미안하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것 모든 일에서 제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뭐가 그리 못난 놈인지....
저 못난 놈 아닌데, 아내는 저를 못난 놈으로 만듭니다.
다행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끔 저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후벼파버립니다.
완전 쪼다가 되는 기분입니다.

아내의 특기입니다.
아내는 2남 3녀의 셋째딸입니다.
첫번째 글에서 쓴 것처럼 오래 사귀었습니다.
저 멀리 촌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아내와 저의 본가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가구수도 얼마 안되는 촌이라서 결혼하기 전부터 저희 할머니나, 부모님은
아내집안 사정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결혼 반대하셨습니다.
이유는 장모님이 장인 어른을 꽉 잡고 산다고..
오래전이라서 대릴사위라는 것이 있었죠.  암튼 그렇다고..

그러나 결혼은 했습니다.
웃긴 얘기지만 우리 아버지의 운이 너무 강해
제가 결혼하게 되었다고 농담 섞어 생각합니다.
제가 그 당시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선거에서 떨어질 상황이었습니다.
대충 이해해 주세요.   얘기하자면 깁니다.

어째든 중요한 것은
저는 결혼 생활이, 아내를 얻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인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아무 생각없이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것이 아버지의 강요는 아니었지만,  그 시기에 꼭 결혼하지
않아도 됐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어린 시기에 콩깍지 팍 쓰여 있는 상태에서 애로스적인 사랑만을
가지고 결혼했습니다.   그것도 사랑은 사랑이니까요.

캠벨만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죠.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그 사람의 어머니를 봐라'
정말 한이 됩니다.  (너무 격하게 썼나요?  그렇지만 저의 심정입니다.)

저는 우리 장모님께서 잘 못 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과 말씀 하시는 것이
저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저는 장모님을 아내에게서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처형들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모님에게서 보았습니다.
이번 설날에는 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인지 그 분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참 안타깝고 속이 답답했습니다.    저렇게 밖에 말씀을 못하시나,
대체 상대방의 기분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지 않는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말조심!!!!!!!
말 한마디로 저는 심각하게 죽어가는 사람입니다.
장모님의 피를 받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내는 무심코 돌을 막 던지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만으로 만들어진 자존심을 헤치는 독이 들어 있는 돌만
골라서 던집니다.

얘기했습니다.
당신은 아무 생각 없이 얘기하지만
난 정말 싫다.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싫다.
무시하는거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래도 내가 싫으니 하지 말아라..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각이 없습니다. 감정적인 바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제는 제가 생각하던 것의 자백을 받았습니다.
아내의 말이 이렇습니다.
'언제 자기가 내 말에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어.'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들으니까 더욱 화가 납니다.
나는 지 눈치 그리 살피고 사는데, 그래서 말했습니다.  거의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살려달라고 마지막 손을 흔드는 사람처럼... 
'감 좀 키워라. ......'

여태까지 살아왔는데, 내가 언제 기분이 나쁜지 모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의 문제죠. 지금까지 다 참아왔거든요.  허허 웃으며 넘겼구요.
별로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아..  이 남자도 우리 아버지(저의 장인어른이시죠) 같은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살은 것 같습니다.
이제 제가 안 참으니 최근 충돌이 잦습니다.

첫 글에서 말씀드렸죠.
콩깍지가 벗겨진 것 같다고,
사실 콩깍지야 벌써 벗겨졌겠죠.

저의 생각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질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는 저 주는게 편합니다. 내가 참는게 편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해꼬지를 해도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내 성에 차지 않아도 최선을 다했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그게 아닌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아내도 저의 이런 모습을 매우 못마땅해 합니다.
사실 아내의 요구가 저를 변화 시켰습니다..... 
사람들한테 퍼주고, 내가 좀 손해보고 하는 것을 보면 바로 바로 뭐라 했거든요.
저는 본능적으로 아내에게 인정을 받아야 맘이 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안되는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술자리에서 최근 제가 가장 많이 한 얘기가
'독하게 살아야해' 였습니다.
말로 하다 보니 변했습니다.
예전에 참던 것을 말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아내랑 싸우게 되더군요.  점점 더 많이.
싸우다 보니 점점 더 보기 싫어지고,

사랑의 기술을 언급하셨지요.
절대 써니님께 화내는 것 아니니 양해하고 들어주세요.

오늘 싸우고 나서 존 가트맨 박사라는 사람의 '부부를 위한 사랑의 기술' 이라는
책을 다시 펴 들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아 찾았고 해결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책을 집어 던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말 섞는 것도 싫은데, 부드러운 말로 접근 하라니 신체접촉을 하라니
그럼 말들이 적혀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내는 화나면 절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를 더 비참하게 만들죠.

어디 심판 있는 곳에서 대판 싸우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까발리고, 제발 좀 앞으로 정서적인 교감 좀 하고 살자고 귀에다 대고 꽥 소리치고 싶습니다.
소리치면 뇌에 장착될까 싶네요.

아.........
아내랑 얘기를 하고 싶은데, 여기에 글만 이렇게 쓴다고 해결될 것이 아닌데,
답답한 저녁이네요.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10.02.28 22:56:53 *.36.210.15

님의 글을 읽으며 속전속결의 한판 씨름 경기를 보는 듯해서 자꾸만 큰소리로 웃게 됩니다. 지나간 옛일이 되었는지 남의 일이라 그런지 말예요... .

아마도 지금 당장은 울화가 치밀어서 더 그럴 거예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하며 참고 싶지 않아 그럴 수 있어요.

사실 저도 며칠 전에 오래 참아온 일을 뻥~ 터트리고 나서 시간이 나서 이 글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만, 이제 끝났다고 하는 순간에 방심이 찾아 들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은 대목을 서로간 크게 받아드리며 상처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 역시 집중이 안 되고 분노가 느껴지기도 해 성실한 답글(?) 중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기질인지 도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아마도 둘 다 관여가 되어 일어나는 작용이겠지요. 님께서 바로 댓글을 달아주니 순간 힘이 쫘악~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공연한 참견을 하다가 좀 더 창조적이어야 할 성스러운 이 공간을 온통 도배하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주책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 가 움찔하며 방어를 하게 되나봅니다.

그렇게 함부로 가벼이 아무렇게나 감정을 흘려놓지 마세요. 그것 역시도 자존심에 충분히 타격을 가하는 일이기도 해요. 진심이라 해도 마음에 두고 올리지 말거나 으름장용으로 써먹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참아온 것 잘하신 거예요. 저도 무지하게 억울한 일 참고 있어요. 왜냐하면 살아보니 참을 일을 참지 않은 것과 가벼운 일에 흥분한 것들이 경솔한 아쉬움으로 남기도 하더라고요. 바로 님만한 나이에 나도 세상이 겁나지 않고 책임과 의무보다 원하는 요구사항이 더 많아 그랬던 것 같아요. 생각하기 나름으로 사람에 따라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기도 했는데 말예요. 물론 저라면 도저히 못 참는 일이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죠.^^ 사람이 어리석어 몸과 마음을 혹사 시키고야 똥인지 된장인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할 수 없는 미련한 짓이었다는 큰 깨달음을 얻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그리 강한 힘이 났는지 하나도 무섭지 않고 한 십 년간 잘도 살고 버티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나이 들수록 자신의 허물을 더욱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감추고 눌러왔던 미움과 서러움을 쏟아 내다보니 씻겨간 자리에 초라한 모습만 덩그만이 남게 되는데 별로 좋을 것도 없고 자랑할 일도 아니잖아요.

좋은 남잘 다시 만나든 훌륭한 여잘 다시 만나 새로 멋지게 시작하여도 속일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게 될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한때는 자존심이었던 가치들이 도리어 자괴감에 빠져들게 하는 단어로 전락하기도 하고, 아이들에 대한 부분은 씻을 수 없는 멍에로 오래 남지요. 이는 어느 일방이 키우고 안 키우고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주고 만 것으로 쌍방으로 인한 아픔이 될 수밖에는 없어요. 책임을 면할 수도 없고요.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오래도록 참은 일들이 분함을 어느 정도 걷어내고 나니 덮여있던 내 허물만 남아 오히려 더 크게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게 세월이고 연륜인지라 님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아마 대부분 다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당시에도 어렴풋이 알았던 것이 만약 내가 지금의 나이라면 나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았는데 살아보니 정말 그렇기도 하고, 젊은 혈기에 당시는 맞서다 보니 용감무쌍하게 마치 본때라도 보여주듯 간단히 처리해 버리기도 하였지요. 살아온 날 들의 세배, 싸운 기간의 10배 에서 20배 이상을 곱씹어 봐도 별다른 큰 깨우침은 없지만 한 가지 오래 싸우지 않고 일말의 감정들을 남겨둔 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차라리 잘한 것 같기도 해요. 물론 많이 억울해 했지요. 그러나 끝까지 가서 일일이 따지고 밝힌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을 거고요. 한 십삼사 년 만에 다시 그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는 직업적인 일과 함께 버티며 야릇한 감정까지 느껴져 살짝 대응해 보았는데 예상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좋지 않은 일은 부대끼며 싸우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상처와 아쉬움을 남긴 채로 멈추는 것이 옳은 일인 것 같아요. 또한 사람은 관계와 일의 형평성을 찾기보다 일방의 의견이 강하게 지배하고 선입견이나 어떤 사건의 꼬투리만을 중시하는 경향에 놓이면 해결이 안 되고 말더라고요. 어느 일방이 나 죽었다고 하고 무조건 참는 다고해서 될 일도 아니고, 또 그렇게 편중된 채로 좋은 관계로 바로 전환이 이루어지거나 일방이 죽어지내기만 하며 지속시켜 나갈 수도 없으니, 그래서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끝을 내게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하기야 일과 가정사는 그 적용과 범위가 다르기는 하지만 같은 종류의 의식을 갖은 성향의 사람이면 절대 다르지 않더라는 이야기 얘요. 사람의 성격과 기질은 잘 바뀌지 않으니까요. 다만 대상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다를 뿐인 것 같아요. 분류나 유형별로 보면 짚신도 짝이 있다고 누구든 맞는 짝이 있기는 하겠으나, 그것이 그리 쉽기만 할 것이며 무엇보다 관건은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고 만다는 것이지요. 바람직한 경험도 아니고 꼭 그래야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체험담이니 참는 김에 꾹 참아 이겨내야 장땡이지요.

님의 글을 읽다가 덜컹 심장이 내려앉는 부분이 있는데요, "불행하게도 이제 당신은 나를 떠나도 나는 슬프지 않아라는 의사의 표현입니다."라는 대목입니다. 사실 이런 부분들이 염려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가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미 어린 시절 겪었다고 하면서 서슴없이 각오하거나 표현하는 것은 상대에게는 지독한 고문에 가까운 상처일 것입니다. 그러지 마세요. 동창 가운데 형제들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보았고 경멸했는데 내가 바로 그런 상황에 접하게 되었을 때, 내가 빚은 내 현실을 받아드리기 쉽지 않아 그 충격에 한참 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기질과 성격이 다르니까 그리고 저의 경우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니까 서로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현상에 처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할 테지만 좋을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상황이거나 이미 처해졌다면 허물에 매달려 우울하게 지내지 말고 나름의 남은 인생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맥락이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코칭을 하거나 드릴 방안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휴전 선포의 의미는 어떻게 해서라도 더 이상의 분쟁을 초래하지 않고 다툼을 쉬는 것이지 이유를 만들어 명분을 강화하라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저 역시 참을성이 적어 아직 파르르하는 성격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에서 손해 보는 것이 왜 편한지 솔직히 지금에 와서야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와 맞서지 않으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 하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보는 상태에 있기도 하지만요. 억울한 사람은 억울해서 달려들게 마련이고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를 감추기 위해 포악을 떨게 되기 때문에 싸움과 대립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한 발 물러나서 보면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실상은 어리석음과 부덕의 소치들뿐인 것이지요.

너무 조급히 빨리 해결하려 들지 마세요. 삶이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때로 안 좋은 시기가 약간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려니 운이 안 좋아 더욱 대립하게 되나보다 여기고 서로 노력을 하려고 해 보셔요. 한사람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물론 나쁜 것을 따라 하기는 쉽고 좋은 일은 따라 배우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자존심을 내세워서든 공연한 욕심을 부려서든 말이지요. 그렇더라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대범한 군자가 되도록 애써 보십시오. 온전히 님의 덕이 됩니다. 악한 끝은 있어도 선한 끝은 없다 했습니다. 그러니 좀 더 견디며 스스로를 사랑하는데 몰두하고 애써 보자고요. 네?

여자는 요, 남자 하나에 자신의 전부를 모든 것을 걸어 기대하며 결혼하는 거예요. 당신이라는 인물에 일생을 맡기고 투신하는 심정으로 올인하는 거라고요. 그 처음을 기억하세요. 철없었던 당신의 선택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지키고 가꾸어 빛나게 할 수 있어요. 자신감과 용기와 덕을 가지려 가다듬어 보세요. 최소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거예요. 아닐까요?

 내일도 싸울 것 같으면 간단하게 메모나 남기고 잠시 등산이라도 다녀오던 지요. 아내가 싫어하는 일만 골라 하지 말고요. 들어올 때 아내가 좋아하는 것도 사들고 와서 말은 하지 않더라도 올려놔 두고요. 동갑은 어려움이 덜한 것이 때로 문제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만큼 쉽게 풀리고 다정다감할 수도 있을 것이니 좋지요. 님을 보니 금방 풀리실 것 같기도 한데... 공연히 고집 부리지 마세요. 저주면 고마워해요. 아내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의 가슴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넓고 포근하다고 생각해요. 그 꿈에 흠뻑 젖어 살도록 꿈을 깨지 말고 지켜주세요. 그러면 상대로 그럴 거예요.

그리고 막내들의 특성이 타인을 곧잘 배려하면서도 간혹 자기주장을 꺾지 않거나 눈치를 잘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답니다. 저도 그런 편인 것 같습니다.^^ 막내쯤 되면 살림도 어렵지 않고 위로부터 배우는 게 많다보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아 때로 우를 범하게 되는 것 같으니 참고하고 이해해 두세요. 앞으로 하나이거나 둘인 형제들은 어쩌지??? ^-^*

프로필 이미지
꾹이니다요
2010.03.01 09:41:52 *.168.97.238
어제 저녁 글을 올리고 나서 심각하게 얘기했습니다.
수많은 얘기들을 모두 뒤로하고 앞으로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1. 대화할 때 서로 바라보고 눈을 마주치며 하자.
2. 얘기할 때 딴짓하지 말자.
3. 어떻게 말 할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하자.  (상처주는 말 하지 말자)
4. 참았다가 한번에 폭발하지 말고 중간 중간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

이렇게 한달 살아보고, 안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개선하는 방법을 택하자고 했습니다.

써니님께서 도와주시려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한 달 뒤에 개선 사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10.03.04 12:13:19 *.219.168.122
잘하셨네요. 기대가 되어요. 이미 반은 해결 됐고, 나머지 소소한 부분 세심하게 잘 들여다 보고 챙겨나가시기 바랍니다. 이 기회에 건강한 가정과 아름다운 가족이 되기 위한 쇄신과 기틀 잘 다져보시길 바래요. 지금의 당신 하나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단면과 모습일 수 있습니다. 결코 단순하게 단 한사람의 개인적인 시시한 일이 아닙니다. 위대한 탄생의 전초전적인 모습일 수 있고, 바로 보통사람이 위대한 길로 들어서기 위한 굳건한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님을 기대하고 성원합니다.

한가지 구 사부님께서는 항상 저희들에게 새로운 일의 시도나 결정에 있어 너무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르시곤 하십니다. 문제의 핵심과 건강한 전략에 힘을 쏟으며, 맴돌거나 주저하지 말고 아름다운 내일을 향해 더 학고하게, 중요하고 구체적 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라는 말씀이겠지요.

*****참 잘하셨습니다. ***** 부끄러움을 뛰어넘는 것도 변경연의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합니다. ***** 님은 변경연을 사랑하는 분 맞습니다. ***** 꿈벗 봄 나들이에 님의 가족도 동참하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