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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30일 11시 26분 등록

나는 새벽에 글을 쓴다. 아직 어두운 새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여 아침 노을이 붉게 물들고 이내 태양이 솟아오를 때 까지 나는 글을 쓴다. 새벽이 아침에게 시간을 넘겨 줄 때 책과 글을 덮고 나의 삶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책상에서 일어난다.    하루는 몸으로 살기에도 부족한 육체의 시간이니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때다.   새가 날개 짓으로 작은 미풍을 만들어내고, 붉고 흰꽃이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잔디 위를 걸어 푸른 바다로 나간다.  신발을 벗는다. 파도가 긴 백사장끝 까지 밀려갔다가 흰 포말을 남기고 물러서는 광경을 바라보며 맨발로 모래 위를 걷는다.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아침을 먹는다. 나도 아침 산책을 마치고 식당으로 와 접시 가득 야채를 담아 가지고 와 싱싱한 생명을 먹는다. 그리고 바다와 마주 바라보고 앉는다. 파도는 늘 나를 깨어 있게 한다. 아홉개의 망고를 먹고, 맥주를 한잔 마셨다. 정오다. 이때 자라투스트라는 산에서 내려온다. 정오는 그림자가 가장 짧을 때다. 그러므로 태양 아래 오류도 가장 적을 때다. 니체는 실체의 그림자가 가장 짧을 때를 철학의 최적기라 생각한다. 니체가 정오를 좋아한 이유는 그림자가 가장 짧기 때문이었다. 왜곡이 없는 시간,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에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싫어한다. 왜 뜨거운 태양 아래서 정수리에 땀을 흘리며 곤욕을 치루겠는가 ? 그때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웃고 떠드리라. 삶을 기뻐하는 철학이 아니라면 철학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낮에 나는 도시로 간다.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일한다. 거리는 사람으로 북적이고, 웃음으로 가득한 얼굴과 슬픔 어린 얼굴이 있고 비정한 냉혹으로 이미 죽어 버린 얼굴도 있다. 몇 사람들을 만나고 부두에서 작은 배를 타고 섬으로 간다. 섬은 초록빛 바다를 가지고 있고, 그 속에는 물고기들이 논다. 줄무늬 열대어들도 있고, 거무틱틱한 무어인 용사 같은 놈도 있다. 그 놈들이 내 발에 다가와 간지럽힌다. 발로 살짝 걷어차면 금새 돌아와 보복한다. 내가 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 작은 고기는 알고 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진다. 커다란 잎을 무수히 달고 있는 나무 그늘에 서서 비떨어지는 모습을 본다. 시간이 비처럼 떨어져 어느새 늦은 오후로 치달려간다. 비가 지고 다시 하늘은 밝아진다. 나는 섬을 떠나 도시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도시에서 내가 있는 바닷가 숙소로 차를 타고 돌아 온다.

  DSC02399.JPG

 

그렇게 낮이 지나면 저녁이 온다. 다시 황혼이 다가온다. 나의 육체에 긴 그림자가 드리우는 시간이다. 삶을 즐긴 육체는 피곤하고, 자고 싶어진다. 늙고 지친 육체는 신을 찾는다. 오늘 살았던 낮의 삶을 기억하며 살았던 하루를 아쉬워한다. 밤이 욕망의 시간인 이유는 낮의 미련 때문이다. 지는 노을이 감상을 던져주고 하루의 경험이 싱싱하게 남아 있으니 사유를 하기에 좋은 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황혼이 찾아와 미네르바의 새가 날아오를 때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 생각은 틀림없이 멜랑꼴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하루를 다 살은 저녁이 몸 보다 더 긴 그림자를 끌고 그 그림자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몸이 실체라면 그림자는 허상이다. 허상이 실체 보다 긴 오류의 시간에는 철학을 해서는 안된다.

 

나의 주제는 변화다. 변화란 매일 아침에 삶으로 떠나와 밤에 죽은 후, 다시 그 다음 날 아침 다른 삶으로 떠나는 것이다. 새벽은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의 시간이다. 지난 밤이 다 죽고 새로운 낮이 다가 오기 전 까지 어둠과 빛이 아름다운 노을로 존재하는 거품의 시간이다. 꿈에서 현실이 태어나듯이,  결심을 하면 그 결심을 이룰 수 있는 하루의 시간이 주어지는 때이니 미래가 탄생하는 축복받은 시간이다. 나는 이때 쓴다. 나는 글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내 글은 내 앞에 다가올 하루를 맞이하기 위한 의식이다. 그때의 내 정신, 그때의 내 각오, 그때의 내 희망을 담고 있음으로, 그 기분 그 느낌으로 내 하루를 살게된다.    그러므로 글을 써야 비로소 내 하루는 시작한다. 영감이 새처럼 찾아오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영감이 없어도 나는 하루를 살 수 밖에 없다. 잘 써지는 날도 있고 잘 써지는 않는 날도 있지만 그것 역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삶이 주어 졌으니 나는 씀으로 이 하루를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IP *.160.3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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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7 06:14:33 *.139.108.199

운명적으로 글을 쓰셨군요^^

저도, 저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것과 뒹굴고 입마추고 싸우고 또 화해하겠지요.

그렇게 사랑하듯이,

저에게 주어진 길을 

뚜벅뚜벅 걸어 가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7.11.18 15:12:22 *.32.9.56

춤추듯, 사랑하듯, 

하루를 보내자.

후회하지 말고

조급해 하지 말고

그것 그대로 받아들이자.

작은 걸음으로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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