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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8일 08시 49분 등록

 

인종지말자 (人種之末子) 라는 말이 있다. 상종할 수 없는 막간 인간이라는 뜻이다. 생각해보자. 친구와 합작으로 장사를 하다가 이문을 더 많이 챙기면 나쁜 자다. 도와준답시고 일을 더 어렵게 꼬이게 했다면 무능한자다. 있던 곳에서 세 번을 쫓겨났다면 모자란 자다. 싸움터에 나갔다가 저 혼자 살자고 세 번을 몰래 도망쳐 돌아왔다면 비겁한 자다. 모시고 있던 군주가 패망했을 때 운명을 함께하지 않고 저 혼자 살아남는다면 의리없는 자다. 누가 보더라도 인종지말자다. 그 인종지말자였던 인물이 바로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용주의 정치가였던 관중(管仲)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고난들이 그를 단련시켜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하였다.

 

관중에게는 한 사람의 친구가 있었다. 어려운 시절 그와 함께 장사를 했던 포숙아라는 사람이다. 그는 관중이 이익을 더 가져가도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관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더 어렵게 꼬일 때도 그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일을 하다보면 잘될 때도 있고 꼬일 때도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함께 하던 곳에서 쫒겨나도 모자라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받아들여질 만큼 좋은 관계가 아직 이루어질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싸움터에서 도망쳐 와도 그를 비겁한 자라고 탓하지 않았다. 관중에게는 살아서 모셔야할 노모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모시던 사람과 운명을 같이 하지 않아도 그를 의리없는 인간이라 말하지 않았다. 작은 치욕을 참고 더 큰 일을 해낼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관중을 낳은 것은 그의 부모였으나 그를 알아 준 사람은 친구인 포숙아였다.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 한 사람이 없을 때 세상이 막막해진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이 바로 '관포지교'(管鮑之交) 알려져 전해진다.

 

젊었을 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포숙아가 관중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우정이 포숙아의 관용과 포용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중은 포숙아의 그늘에 가려진 찌질한 인격의 소인배로 보였다. 공자도 관중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인격을 소인배라고 평한 바 있다. 그후 세월이 지나 관중을 다시 알아가게 되면서 이 인물이 일반적인 평가의 수준을 벗어나 다른 차원에 속하는 위대한 인물임을 알아보게 되었다. 포숙아가 관중을 보았던 그 특별한 시선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공자의 인의가 좋은 말이지만 그 현실성이 떨어지고, 중국을 통일한 법가사상이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소름끼치게 각박한 것을 감안하면, 인의와 법을 통합하고 여기에 백성의 먹거리인 경제를 더하여 가장 전형적인 정치적 성과를 이룩한 관중이야말로 중국 최고의 정치적 모범으로 자세히 연구되어야할 대상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래동안 직장인이었다. 되돌아보니 그동안 나도 젊은 관중처럼 이래저래 옹색한 찌질이였던 때가 있었다. 능력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동료에게 별로 인기도 없었고 스스로도 위축되어 나도 나를 잘 대해주지 못했던 긴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무능하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일이 잘 풀리지도 않고 인정도 받지 못하는 10여년의 세월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맡고 있었던 변화경영에 있어서만은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주어진 자리에서 스스로 비전을 가지고 일했다. 그리고 내가 알게된 나만의 직업적 깨달음에 대하여 책을 한 권 쓰게 되었다. 그 책은 대단히 유명해졌고 나도 변화경영분야의 전문가로 브랜드 파워를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한 세미나에서 동료 직원 하나가 나에 대하여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전에는 하는 말이 탐탁치 않더니 책을 쓰고 난 후에 하는 말은 모두 다 금과옥조의 명언' 이라는 것이다. 세미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사람의 일이 대개 이렇다.

 

인생에는 반전이 있다. 어두운 밤 회중전등을 들고 밖을 열심히 뒤지며 이익이 될 만한 것을 구하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전등을 자신에게 비추어 보다 밖에서 부를 찾을 것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야 됨을 깨닫게 된다. 돈을 벌려해도 투자에 구멍이 뜷리고, 승진을 하려해도 쉽게 시켜주지 않고, 일을 도모하지만 꼬이기만 할 뿐 신통치 않을 때, 자신을 들여다보면 활로가 생긴다. 밖에 투자할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투자해야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의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잘 개발하면 한 분야에서만은 관중과 같은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에 무엇이든 최선을 다할 방도가 있으며, 무슨 일이든 그 일을 가장 아름답게 처리하는 비법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 하는 일을 즐길 수 있고 잘하게 될 때 우리는 한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다. 대가라함은 한 분야에서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하는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다. 바로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는 뜻이다. 바로 이때 인생의 반전이 이루어진다.

 

(크레텍책임을 위한 2012년 12월 원고) 

IP *.16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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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15:32:51 *.30.254.29

사부님의 글은 갈수록 깊어지셔서, 

읽으면서도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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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19:27:17 *.41.190.165

공감이 가는 글 입니다.

일 과 업이 좀 다른 뉴앙스로 사용 하신다는 말~,

주어진 일만 하면서 보낸 시간을 청산하고, 업을 찾기위한

시간을 더 해가는 것이 곧  자신을 반전으로 이끄는 길인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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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9 15:07:13 *.32.109.30

감동입니다.

글이 너무 좋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홈페이지에 구본형 선생님 칼럼으로 하나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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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20:44:15 *.159.97.5

오늘 "구본형의 필살기"를 읽고, 홈페이지에 들어왔습니다.

필살기를 위한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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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4 04:45:19 *.70.57.84
오늘이 단군의후예 첫 날 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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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5 07:09:58 *.209.126.25

오늘은 선생님의 입관일입니다.

잠자고 일어나서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고 다만 황망할뿐입니다.
하늘나라로 가신 뒤 읽어보는 선생님의 글귀가 가슴에 사무칩니다.
진실에 진실의 글을 쓰시다가 가신만큼 앞으로 선생님의 글처럼 살아보겠다 다짐합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정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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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5 15:42:59 *.64.233.159
구선생님의 이처럼 좋은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습니다.ㅇ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정말 불후의 명작입니다. 선생님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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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16:12:40 *.139.108.199

한 우물에 정진한다면

언젠가는 꽃 피는날이 올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잡다한 기술이 아닌

오직 진정성으로 이루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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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11:45:01 *.241.242.156

저에게도 포숙아처럼

못나고 찌질할 때에도 저를 믿어주는 선배 한분이 계시지요.

힘들고 지칠때면 자연스럽게

그 선배를 찾게 됩니다.


삶에서 그런 사람을 하나 갖는다는것 만큼 

든든한 것이 또 있을까요?

다시한번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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