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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6일 10시 49분 등록

우주는 우연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2009년 2월 2일 동아비즈 ( 두 번째 이야기)

간디는 언제 비범함으로 도약했을까 ? 생의 어느 순간에 그는 다시는 평범함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점을 지나가게 되었을까 ? 여러 전기 작가들은 남아프리카의 마리츠버그에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국에서 유학한 후 변호사가 된 간디는 인도에서 변호사로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는 대영제국에 속한 다른 지역인 남아프리카로 직업적인 성공을 찾아 떠났다. 젊고 미숙한 변호사였던 그는 사람들에게 유능함을 인정받아 세속적 성공을 거둔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기만을 원했다. 나탈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난 다음 그는 트란스발주의 프리토리아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게 되었다. 여기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기차는 나탈의 마리츠버그 역에 정차했다. 한 백인이 간디가 타고 있는 객실로 들어 왔다. 그리고 승무원에게 유색인종과는 한 객실에 타고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승무원은 간디에게 3등차칸으로 가라고 말했다. 간디는 항의했다. 간디는 기차 밖으로 쫒겨났다. 그리고 추운 대합실에서 밤새 떨어야했다. 프리토리아까지 가는 남은 여정동안 간디는 1등 칸으로 여행하겠다고 계속 요구했지만 그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점점 화가 났다. 그리고 인도인이 3등 시민으로 대접 받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 밤을 지새게 되었다. 프리토리아에 도착한 그는 인도인들을 모았다. 그리고 인도인에 대한 부당한 처지에 대처하기 위해 그들을 규합했다. 이 날의 회합이 바로 변호사 간디가 정치적 지도자로 전환하는 첫 순간이었다. 간디는 후에 자신이 걷게 된 정치운동의 사명이 바로 마리츠버그의 기차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술회했다.

"나는 인도인 정착자들의 힘든 상황을 글로 읽고 귀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함으로 세세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남아프리카는 자존심이 있는 인도인들이 살 곳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런 사태를 개선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는것에 점점 더 사로 잡혀갔다"

마리츠버그에서의 일화는 우연의 선물이었다. 누구도 그런 일이 일어날 지 알지 못했지만 그 일은 결국 간디의 인생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이 일 이후 그는 다시는 세속적 성공에 연연한 젊고 미숙한 변호사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마리츠버그 열차역의 사건은 그를 도약시켰다.

비슷한 경우가 우리 사회에도 있다. 아름다운 재단의 상임이사이며 인권변호사이기도 했던 박원순이 특별한 길을 걷게 된 경우도 다르지 않다. 대학 신입생 때 그는 여느 대학생처럼 '뉴스위크'를 끼고 멋을 부리고 일주일에 두어 번 여학생과 미팅을 하며, 사회학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학생에 불과했다. 어느 화려한 봄날이었다. 저녁에 있을 여학생과의 미팅을 생각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던 그는 밖이 소란하여 내다 보았다. 데모가 벌어졌고 경찰들은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학생들이 잡혀갔다. 그저 젊은 혈기에 그는 이 대열에 가담하게 되었고, 체포되었다. 주동자들은 다 도망가고 단순 가담자에 불과했던 그는 곧 나오리라 생각했지만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된 직후여서 쉽지 않았다. 결국그는 학교에서 제적되었고 4개월 동안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 그 4개월이 그를 바꾸어 놓았다. 거기서 그는 처음에는 험악하고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오히려 착하고 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출옥한 후 그는 고시에 합격하여 검사생활도 하고 변호사 생활도 했다. 그러나 그는 법조계의 인물로 남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교도소의 경험이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하기 어렵다.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고시에 합격한 후 검사가 되었을 것이고 지금쯤 검사장이 되어있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교도소를 경험하여 갇힌 자가 되었으며 약자와 함께 보낸 추억이 있었기에 늘 인생에서 늘 약자의 편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역사의 중심에서 세상의 변화를 꿈꾸고 실천하게 되었다" 그 역시 운명적 사건 이후 과거의 그로 되돌아 가지 않았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혁명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체 게라바는 원래 의사였다. 하지만 20대 초반 의학도 신분으로 떠난 7개월간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체 게바라가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국인 아르헨티나 너머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의 열정에 이끌려 알베르토 그라나도(Alberto Granado)와 함께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여행을 하고 난 후에는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이 여행에 대해 기록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아르헨티나 땅에 다시 발을 딛는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글을 다시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 이상의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많이 변했다. 그 깊이는 내가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체 게바라가 여행을 통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 무엇이 과거의 그를 사라지게 했을까 ? 게바라는 우연히 칠레의 한 노동자 부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면서 이곳 사람들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추운 밤 담요 한 장 없이 부등켜안고 자는 노동자 부부에게 하나뿐인 이불을 건네 주었다. 그는 당시 경험에 대해 “그것은 내가 겪은 가장 추웠던 경험 가운데 하나였지만 내게는 낯선 이 인류에게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을 갖게 해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여행에서 이런 장면들과 무수히 마주치면서 의사도 성직자도 아닌 혁명가로서 자신의 길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연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결정적인 순간들,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 온 이 순간들을 우리는 운명적 사건이라고 부른다. 마치 누더기 옷을 걸친 신의 화신과의 조우처럼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제대로 내게 주어진 삶을 삶게 될 것인지를 일깨우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사건은 이렇게 우연의 모습으로 다가 온다.

누구의 길이 옳은 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어떤 계기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들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알고 싶은 것이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람마다 그 사람만의 다르마 즉 과거로 부터 연기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서도 안되는 것이다. 우리의 다르마는 무엇일까 ?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에게 주어진 어떤 우연한 순간을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지식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순간 우리는 체험하게 되고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막연한 지식이 내 안에서 구체적 체험으로 전환될 때, 우리는 각성하게 된다. 우연은 신의 영역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우연에서 무엇을 느끼고 깨달게 되는가는 인간의 영역이다.

마리츠버그의 간디가 그 날의 사건을 개인적 모욕으로 갈무리하고 말았다면 간디는 없었을 것이다. 4개월의 감방 생활을 재수없었던 한 때의 실수로 기억했다면 오늘의 박원순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7개월 간의 여행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비참한 현장을 제몸으로 체험하지 못했다면 혁명가 체 게바라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은 막연한 피상적 지식을 내가 연루된 직접적인 사건에 적용해 봄으로써 위대한 지적 도약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깨달음의 실험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큰 길은 하늘이 정하고 작은 일은 인간이 계획한다.  나는 이제 그렇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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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놈
2009.02.26 15:45:56 *.229.148.168
스승님, 힘 있는 선동입니다.
스승님이야말로 이제 가장 힘 있는 선동가의 길에 들어서신 듯 느껴집니다.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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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9.02.26 16:28:56 *.160.33.149
에구, 용규야. 내가 구라쟁이라는 뜻이냐 ?
이곳의 봄이 땅을 뜷고 나오는구나. 부드럽구나.
올 봄은 유난히 부드럽구나.

'큰일은 하늘이 정하고 작은 일은 사람이 계획한다'고 말해 놓고 나니,
주역이 생각나는구나. 초아 선생님은 봄이 빨리오는 부산에서 봄처럼 부드러워 지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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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6 23:39:46 *.180.129.160
꽃피는 봄이 요란하여, 소란스러운 여름 또한 마땅치 않았는데, 이번 봄은 벌써부터 설레여요. 사부님글을 읽으니 더 그런 느낌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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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7 09:37:31 *.212.21.111
늘깨어있는 자신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나에게 운명을 바꾸게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주시네요.
서양에서는 직관 동양에서는 혜안 또다른 이름 깨달음 이런것은 그들이 평소에 적어도 저 일에 대해서 생각을 했기에 저런 의미있는 결정을 내릴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사부님 글에서 제 인생에 우연은 어떤일이었는지 곰곰히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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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놈
2009.02.27 17:53:10 *.229.160.252
하하 스승님!
스승님 같은 구라쟁이가 많아야 세상이 좀 더 좋아질텐데...^^
이곳의 봄도 땅을 뚫고 있습니다.

3월에는 스승님과 초아선생님 모시고 이 봄숲을 거닐고 싶습니다.
막바지 헤매고 있는 원고를 다 넘기는대로 냉큼 연락드리겠습니다.

구라쟁이 스승님이 보고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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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2009.02.28 09:02:43 *.109.116.18
정말 멋진 이야기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읽다가 소설가 공지영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한다고 있던 그녀가 농성장에서 잡혀 경찰서 유치장에 있다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지요. 12월의 차가운 유치장에서 혼자 남게 된 그는
"내가 나가면 또 들어올 것 같다. 그때는 구류가 아니라 무기징역이 될 수도 있고, 고문 받다가 죽을 수도 있고, 최소 몇년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이번에 나가면 하고 싶은 것 딱 한가지만 하고 들어오자." 그랬다네요. 그 딱 한가지가 뭔가 생각했더니 자신도 놀랐는데, 소설 한 편만 딱 쓰고 들어오면 여한이 없을 것 같더래요. 평생 하고 싶은 것 딱 하나가 소설이었다는 걸 왜 그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을까 했답니다. 소설가 공지영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겠지요.

메말랐던 겨울 끝에 잦은 봄비가 내립니다.
매화꽃이 환하게 피어 나구요.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봄에는 늘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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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이리`
2009.03.02 15:10:38 *.48.246.10
가슴떨리는 전율과 마주쳤을 때, 지금까지의 생각이 한순간에 주저앉을 때, 말씀하신 '우연'이라는 모습으로 신이 내게 손을 내민 것은 아닌지요? 알(세상)을 깨고 나온 새(헤르만헤세)는 신(아프락사스)의 음성을 들었겠지요? 오늘하루 나에게 다가온 우주의 우연을 생각해봅니다. 좋은 글, 삶을 반추해보는 글 감사합니다. (새 책의 한꼭지를 미리 읽은 기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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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이빨
2009.03.02 18:23:27 *.207.129.124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돌아보게 되네요.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올 때마다 좋은 에너지 받고 갑니다.
오래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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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5 11:21:51 *.212.217.154

불행도, 행운도, 모두 각각의 의미가 있겠지요,

늘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 보는 진실함이 있다면,

위기가 기회가 되고,

스스로 변화하는 변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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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10:00:32 *.212.217.154

위대한 떨림,

그 떨림을 따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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