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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일 21시 41분 등록

사람이 준비되면 위대한 우연이 소명으로 이끌어 준다
(동아비즈 4번째 이야기 -  복구자료   )

모든 우연이 다 필연이 되지는 못한다. 우연은 우연으로 흘러 잊혀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오직 특별한 우연만이 우리로 하여금 우주와 공명하고 있다는 일대 각성에 이르게 한다. 그 우연은 이내 우리의 소명이 된다. 우연이 운명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연을 해석할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그 우연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 다시 말해서 그렇게 흘러 갈 수 밖에 없는 일이었을까? 나는 이 대목에서 멈춰선다. 마리츠버그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 날 수 있는 개연성이 강한 일개 사건이었다. 그런 일이 간디에게만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그곳에서는 누구든 유색인종이 1등 칸에 타고 있을 때 겪어야 했던 수모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간디만 그 일을 결코 잊지 못했던 것일까 ? 남아메리카 대륙의 가난과 착취는 만연해 있었고 누구나 그 아픔의 현장을 수없이 보아 왔을 것이다. 왜 유독 체 게바라에게만 그 것이 잊혀지지 않는 사건으로 각인되었을까 ?

우연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 아니다. 우연은 말 그대로 뜻밖에 찾아 온 것이지만 그 일을 맞이하는 순간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관계 속으로 제 발로 끌려 들어간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 끌림은 실수로 생긴 것이 아니다. 인간의 원형 이미지에 대한 해법으로 프로이트의 꿈 대신 신화에 천착해온 조셉 켐벨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부지불식 간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그 주름의 골은 깊다. 영혼 그 자체 만큼이나 깊다 "

간디는 마리츠버그 사건 앞에서 홀연 각성한다. 그 우연한 사건은 영혼의 각성을 촉구하는 '전령관'이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그는 모험에의 소명을 깨닫게 된다. 마리츠버그의 우연은 그에게 역사적 사명의 수행을 촉구하고 있었고, 간디는 정신적 통과 의례를 거쳐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너무 좁아 더 이상 그의 영혼의 크기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바야흐로 또 하나의 삶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에 이른 것이다.

캠벨은 일반적으로 이런 역사적 소명을 받는 장소나 사건은 대개 깊은 숲속, 큰 나무아래, 심연으로 상징되는 어둡고 험하고 추한 곳일 때도 많다고 말한다. 간디에게 있어 마리츠버그에서 떨며 지낸 하룻밤, 체 게베라가 가난한 노동자 부부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떨었던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하룻 밤, 박원순이 감방에서 지낸 시기등은 숨이 막히고 피가 응어리지는 특별한 고통의 사건들이었다. 프로이트는 이런 '불안한 순간은 어머니와 분리될 때의 고통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하면 분리와 탄생의 순간이 불안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 길을 따르는 순간 길은 별이 보석처럼 빛나는 밤으로 열린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전에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던 사물이 이제는 무가치해져버린 성숙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각성이다. 이제 빛나는 별밤은 끊임없는 꿈으로 은하수처럼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알게 된다. 어떤 우연한 사건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이미 어쩔 수 없이 얽혀져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간디가 마리츠버그의 모욕을 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사건이 그의 존재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건 이전에 이미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미 그 존재의 깊은 심연 속에 '중재력을 가진 도덕적 정치가' 간디가 도사리고 있었고 영혼 속에 '그것이 그의 운명이'라는 각인이 깊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마리츠버그의 사건은 다만 미래를 암시하는전령관이었고 도화선이었다.

간디는 소년 시절에 쉐이크 메타브라는 회교도 청년과 친하게 지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설득에 넘어가 힌두율법을 깨고 육식을 하거나 담배를 사기위해 돈을 훔치거나 매춘굴을 찾아가기도 했다. 간디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돈을 훔친 다음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고, 창녀 앞에서 몸이 굳어 아무 짓도 못하고 돌아와 심한 모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옳고 그름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년이었다. 그를 규정하는 가장 큰 기질적 특성은 도덕성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중재력이었다.

사실 악기를 다루는 능력이나 수학적 천재성 혹은 남다른 운동신경은 어려서도 쉽게 눈에 띄지만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간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중재자로서의 자질은 어려서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럽게 '도덕적 중재력' 이라는 간디의 선천적 특성은 어린 시절을 거쳐오는 동안 잘 훈련될 기회를 가졌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중재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부모들도 그의 남다른 재능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아들이 도덕적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기꺼이 허용해 주었다. 그에게 친구들이나 가족 간에 발생하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대답을 마련해 갈 수 있는 재량권을 시험할 기회가 주어지면서 그는 자신의 특성을 계발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마리츠버그의 사건은 이렇게 성장한 간디가 마주친 가장 결정적인 우연이었다. 그의 도덕심은 이 사건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중재자로서의 능력은 발휘되었다. 그는 마리츠버그 사건이 있던 다음 프리토리아에서 첫 번째 모임을 결성했다. 정치적 활동이 시작되었고, 그는 그곳에 작은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인도인은 이제 옷차림만 적절하다면 1등이나 2등칸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한 사건이 갈무리된 그의 재능과 특별함을 건드렸고, 그는 대각성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도덕적 정치가로서의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평범함을 넘어 위대한 종교 정치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 조건인 '엄격한 자기검열'에 특별히 민감했다., 프로이트식으로 표현한다면 초자아super-ego가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에이브러엄 링컨, 마틴 루터 킹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은 어린 시절에 저지른 사소한 잘못까지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고 수 십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잘못을 보상하기위해서 애쓴다. 다른 사람들은 사소하게 여기고 쉽게 용인하는 도적적 옳고 그름의 문제가 이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간디 역시 위대한 지도자로서 반드시 갖추어야할 도덕적 자기 검열이라는 특성을 어려서 부터 계발해 왔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는다.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융합시키는 정치적 중재력은 도덕적 가치를 희생해서 까지 서로의 타협을 이끌어 내는 야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사람들을 설득하여 마음에서 도덕심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올바른 정치적 결집력을 이끌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덕심이 약하고 자신의 잘못에 관대한 초자아가 허물어진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한 조직구성원이나 국민은 불행하다.

사건이 사람을 이끌고 우연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우연도 위대한 각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제자가 준비되면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듯, 사람이 준비되면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자체로 위대한 스승이나 사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운명이 바꾸기 때문에 그 만남이 위대해지는 것이다. 우연의 얼굴을 가진 필연, 이미 그 사람인 그것을 홀연 깨닫게 해주는 위대한 떨림은 이렇게 맺어 진다. 그리고 그 이후 그들은 평범함으로 되돌아 가지 않는다. 이미 하나의 세계를 지나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각성을 거쳤기 때문이다. 한 번 고양된 정신은 낮아지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지 않을 때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사는 평범을 넘어 서기 시작한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위대함이 평범함 속에서 발아한 것이다. 소명이 그때부터 그들을 이끌기 시작한다. 그들은 크던 작던 하나의 영웅이 되어간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아름다운 별이 된다.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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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1:00:00 *.140.11.98
항상 눈길만 주고 가다가
오늘은 손길을 주고 갑니다.

영감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실 어디에서도 이런 영감을 얻을 순 없네요.

멋져부러.
프로필 이미지
2016.08.16 09:08:37 *.126.113.216

내면의 가능성에 대한 각성과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

모두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필연이겠지요.

다시한번,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내 온 몸이 원하는 그 무었을 찾아.

프로필 이미지
2017.02.27 15:09:10 *.212.217.154

내 안의 소명이 이끄는 데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갑니다.

마치, 그래야 할 일이 그러하듯이,

제가 갈 길이 저를 이끌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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