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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1일 06시 10분 등록

  지나오고 나면 지나온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길 안에 있을 때는 잘 모르던 것을 그 길을 다 벗어 난 다음에야 알게 된다. 높은 곳에 오르면 전체를 보는 힘이 강해지듯 시간적으로도 전체를 다 조망할 수 있는 시간적 포인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학창 시절 전체가 보이고 여기저기 아쉬운 일들이 생각나 듯, 회사를 떠나고 나서야 객관적으로 회사 생활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20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종종 다른 사람보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었다. 내가 퇴근할 때, 야근을 위해 저녁을 먹고 회사로 되돌아오는 사람들을 볼 때, 수고하라고 손을 흔들어 주지만 내심 '저 입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라고 느낀 적이 제법 있었다. 나는 좀 게으른 사람이다. 언제나 열심히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꿀벌 같은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다. 나는 일의 전체적 윤곽을 알아야 움직이고, 그 일을 좋아하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안달복달 하지만 다른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다. 이것은 바뀌지 않는 내 DNA 여서, 스스로 이런 방식을 존중해 준다. 그래서 나는 늘 나를 부지런히 몰아치는 상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대신 부하직원도 늘 부지런하라고 들볶지 않았다. 우리는 자기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알아서 그 일을 했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미덕이다.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필요에 따라 이 근면을 몰아 쓰는 것이 전략적으로 훨씬 더 더 유용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하자면 작은 댐 같은 개념이다. 매일 부지런히 흐르는 개울물은 자연의 상태여서 맑고 깨끗하다. 그 자체로 좋다. 그러나 그것은 수량이 작아 큰 일을 시키기 어렵다. 종종 물을 모이게 만드는 작은 댐을 쌓아두면 큰 힘으로 쓸 수 있다. 매일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일은 개울물의 부지런함으로 훌륭하게 해낼 수 있지만 새롭고 창조적이고 집중적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치수의 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똑 같은 일을 반복하기 위해 매일 아주 많은 야근을 하고 있다면 그 부지런함은 격무를 몸으로 때우고 있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끝없는 야근을 종료하려면 지금의 프로세스에 도전해야한다. 새로운 프로세스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 내가 나서서 만들어 내야하는 것이다. 시키는 일을 마치는 것, 이것이 내 직무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해야할 일을 잘해내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 역시 내 직무의 영역인 것이다. 바로 이런 인식의 고양이 주도적 리더십의 핵심이다. 이때 손발의 부지런함은 두뇌의 활동으로 확장되며, 매일 반복되는 저부가 가치의 일이 일의 방식을 바꾸는 프로세스의 혁신 프로젝트로 전환된다. 작은 댐을 쌓는다는 의미는 자신이 하는 일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자발적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풋의 증가를 통해 아웃풋을 높이려는 노력은 말하자면 매일 야근하는 고역에 해당한다. 그것은 한계가 있다. 혁신과 혁명은 기존의 input-output 고리를 단절하고 전혀 새로운 프로세스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기준에는 크게 네 가지 수준의 차원이 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초보적 부지런함의 단계다. 말하자면 성실한 초보의 단계다.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해내는 것이다. 그 일을 마감시간에 맞추어 잘 끝내는 것이다. 이 수준이 바로 성실한 일꾼의 차원이다. 이때 생산성은 투여한 노력 즉 INPUT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획기적인 기술의 진보는 없다. 과거가 답습된다.

 두 번째 차원은 시키는 일, 즉 과업을 달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차원이다. 이 경우는 대체로 성과의 목표는 주어지지만 목표에 이르는 수단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지게 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차원이다. 기존의 프로세스가 개선되고, 획기적인 효율성이 제고된다.

 세 번째 차원은 지금 까지 해오던 일을 하는 대신 새로운 개념의 할 일을 찾아 내는 차원이다. HOW를 바꾸는 것이 프로세스 혁신 수준이며 효율성의 차원이라면 세 번째 차원인 WHAT을 바꾸는 것은 일 자체를 전환하는 것으로 효과성의 차원이다. 이 차원에서는 쉬지 않고 비즈니스 자체가 재정의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가장 창의적인 집단의 구성원들이 가지는 자세다. 예를들어 구굴은 경영자조차 자신이 어떤 비즈니스로 진화할지 잘 모른다. 서너 명으로 구성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팀들에 의해 거듭된 혁신이 만들어 진다. 날마다 이루어지는 혁신에 의해서만 선두를 지킬 수 있고, 이것이 스스로 진화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도는 80% 이상 실패로 끝나고 만다. 표현이 이상할 지 모르지만 그들은 실패를 지향한다. 성공은 오히려 수많은 실패의 부산물이다. '즉각적이고 동적인 대응, 말하자면 매일매일의 광속의 적응력'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창조해 나간다.

  네 번 째 차원은 일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때 일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웰빙에 기여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나대로 이 네 개의 차원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첫 번 째 차원은 일을 땀으로 보는 노동의 차원이다. 두 번째 차원은 일을 연결과 접속의 차원으로 인식하는 실험의 차원이다. 세 번째 차원은 일이 즐거움이 되는 놀이의 차원이다. 네 번째 차원은 일이 예술이 되는 차원이고 이때 우리는 땀 대신 피를 쏟아 붓게 된다. 직업인은 적어도 두 번 째 차원에 이르러야 일의 고삐를 쥐었다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도달해야 전문가라 불릴 수 있다. 세 번째 차원에 다다르게 되면 축복받은 것이다. 평생 경제적으로 보상받으며 놀 꺼리가 있으니 행운이다. 네 번째 수준에 이르면 고통스럽고 고독하다. 운이 좋으면 영광도 크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천복을 따르는 길이니 인생 전체가 보답하게 된다.

나는 욕심이 많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한 번은 적어도 일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경험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맛을 영혼에 한 번 각인 시켜야 그 일에 관해서는 하늘로 오를 수 있다. 푸른 하늘에 하나의 심상을 띄워두자. " 나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하나를 피로 키우자"

피를 쏟아라.png

(월간 경영혁신 연재분.  작성일  7월,,2009년)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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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06:21:11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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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씨
2009.07.21 12:58:16 *.40.146.66
나에게 일이란 일종의 고리임을 요근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내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며
나와 동료, 그리고 고객을 연결해줍니다.
더 나아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미래의 내가 지향하는 또 다른 업을 연결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야 초보적 차원을 벗어나서
과업이나 성과를 달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지금 나의 모습이 그 차원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업무의 습관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 말고?', '조금 더 새로운 시야는?' 등의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이제야 구본형 소장님이 말씀하시는 두번째로의 단계에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다고
나 혼자 스스로 격려해보아도 될런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생각하는 언젠가 그곳으로의 고리를 만드려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지?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적용할 수 있는지?를 성찰하고 고민하며 나의 갈망과 욕망은 무엇인지를 조금씩 깨닫고 그 갈망과 욕망을 지금 이곳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 내는 발걸음을 옮기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만의 예술로 승화시킬 그 프로젝트는 바로 지금 여기의 고리로 부터 시작이라고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의 글 덕분에 '일'에 대한 지금의 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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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09.07.21 13:37:50 *.32.165.40
Thank you ur post!

Todays's lines are so great.

It's like my problum, so Im very tuched your p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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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재
2009.07.21 22:35:40 *.84.108.138
선생님 오랜 만에 회사를 다닐 쩍 기억이 떠 오르네요.
회사를 다니면서 스스로 잘 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회사나 상사의 보상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에 맞추어 일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럼 두번째에 속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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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09:13:04 *.160.33.149
건재야. 오랫만이구나.  그곳에서 건강하게 잘 있느냐 ? 
이곳은 덥다.  오늘 오전 일식이라는구나.    태양이 가리고 하늘이 어두워질까 ?
그리고 천둥처럼 "너의 운명은 무엇이냐 ?"' 라고 물어올까 ? 
우리가 원시의 마음일 때 우주와 연결되기 쉬울 것 같구나. 

 어느 단계에서나 자기 만족은 있다.   땀을 흘리면서도 자기 만족이 없으면 그 일을 좋아할 수 있겠느냐 ? 
다만 두 번째 단계는 지식을 지식의 발전에 다시 재투자하는 것이니 그동안 해오던 것에 방법론적인 기술 혁명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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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9.07.30 13:52:25 *.94.198.146
안녕하세요? 항상 선생님 글을 읽으면 마음이 다듬어지고 생각이 정리됩니다. 한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뜸하다가, 얼만전 동네 도서관이 밤10시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서 퇴근 후 들렸더랬습니다. 거기서 선생님의 저서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를 만났고(사실 알고 있었지만 읽지 못했었습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여유가 생겨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곳에 들렸네요.. 구구 절절이 가슴에 와닿는 얘기들...맨 마지막 부분에 '글을 마치며' 부분도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마도 가을경에 책을 내셨던가 봅니다. 가을 풍경이 그려져 있더군요.. 자기계발서나 자기경영에 관련된 책으로 배우는 것은 있어도 감동을 받기란 쉽지 않은데, 구선생님 글은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시를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그런 감수성과 따뜻한 마음이 선생님 저서에 묻어나오는 듯 합니다. 그 책은 빌려봤지만 다시 사서 선물해서 널리 알리겠습니다^^ 북한산에 오르실 때 길은 계속 가야한다는 것을 느끼셨고, 그래서 우리 인생의 길도 계속 가야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구선생님의 긍정에너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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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9.29 05:44:12 *.10.44.47
나는 일의 전체적 윤곽을 알아야 움직이고, 그 일을 좋아하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안달복달 하지만 다른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다. 

어! 사부님께도 그 '피'가?  갑자기 확~ 안심이 됩니다.
쓸데없는 걱정 내다버리고 사부님이 내신 길을 열심히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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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
2010.10.20 18:30:05 *.92.207.11
유끼의 <10월 off 수업>을 읽다가 여기가지 흘러왔습니다.
예전에도 읽은 글인데, 오늘 또 저의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나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하나, 피로 키워라>라는 화두를 마음에 담고 물러갑니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갈 수 있게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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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3 16:42:41 *.212.217.154
https://youtu.be/pEr4j8kgwOk

M O O N S H O T T H I N G K I N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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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4 18:05:18 *.212.217.154

나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그것을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스스로의 길에 의심하지 않습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걸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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