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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4일 20시 26분 등록


자연스러운 마음이 사라지니 예의가 생기고 예의가 사라지니 합리적 사고가 생겼다

- 노자의 무위경영 두 번 째 이야기

사마천의 '사기열전'에는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대하여 묻는 장면이 나온다. 예란 공자에게 있어 모든 관계의 지배 질서이며 한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원리였다. 그러나 노자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그리고 위선적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라'고 조언했다한다.  그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 대담 후 공자는 노자를 평하여 '바람과 구름을 타고 놀아 붙잡을 수 없는 용'이라 묘사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2500년이 지난 지금 어찌 알겠는가 ?  그러나 나는 추측해 본다.  노자는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 대도가 사라지게 되니 인의가 생겨나고, 지혜를 짜내다 보니 인위적 위계가 생기게 된다.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니 효자의 윤리를 내세우게 되었고 국가가 어둡다 보니 충신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  그러니 인위적인 인의와 화목과 효를 주장하며 쓸데없이 애쓰지 말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닦고 잠이나 자라고 말했음직하다.

  나에게는 스승이 한 분 계셨다. 모자라지만 정성을 다해 그 곁에 서 있고 싶었다. 스승 앞에 서면 늘 칼라에 빳빳하게 풀물을 먹인 셔츠를 입고 있는 듯 했다. 두렵고 무서웠던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하고 정성을 다하는 자세였던 것 같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우리에게 늘 지극한 정성을 기우려 주셨다.  엄격한 분이었으나 우리에게는  부드러운 분이었고 편하게 해주시는 분이었다.   우리 역시 그 지극한 마음에 닿아 있는 듯 했다. 아주 늦은 밤 술을 마시다 집 앞에서 전화를 드리고 찾아뵙기도 하도 어려운 맞담배질도 권하셔서 술김에 하기도 했으니 예의에 어긋나기도 했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어려운 스승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진득한 방식이라 여겼다. 늘 선생님께 마음이 끌렸고, 어려운 일 앞에 서면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 를 생각했었다. 노자식으로 말하면 자연스러운 감정이 나를 선생께로 이끌었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런 지극한 정성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 여기에 공자의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노자는 '놔둬라. 마음이 없는데, 허식을 차려 무엇하랴 ?" 하고 잊어버리고 자연의 무심을 따르라한다.  그러나 공자는 탄식한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   진심이 생겨나지 않으면  예의라도 갖추어 공손함을 연습하면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 " 하고 매달린다.   형식이 내용을 되찾아 주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바로 공자의 가르침이다.   '스승에 대하여 진정성이 없다면 예의라도 지켜라'. 그러면 그 적절한 거리가 두 사람을 적절한 거리만큼 유지해 주고 지탱해 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진정성이 없다면 그 관계는 가까워 깊어지지 못한다. 그나마 서로 예의를 지키면 형식이 내용을 이끌어 그 관계를 적절한 거리로 유지하게 만들어 준다.  만일 예의마저 사라지면, 그 하위 레벨에서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이 무엇일까 ?  내 생각에 그것이 바로 규칙과 법이다.  법은 합리성에 기초하며 누구에게나 강제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는 기준의 역할을 한다. 

  합리성은 대중을 위한 질서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것은 냉정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되기 때문에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두 연인 사이에 합리성이 끼어들면 그 관계는 이미 특별한 관계가 아니다. 가족들의 성원 사이에 법이 끼어들면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합리성이 끼어들면 스승은 그저 보상을 받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합리성은 대중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지만 특별한 관계를 위해서는 독약과 같다.   특별한 관계, 그것은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이며 서로 끌리는 감정에 의해 유지되고 깊어진다. 머리가 가르치는 대로 하지마라. 그저 자연이 네 마음에 심어 둔 것을 따르라. 이것이 노자의 가르침이다.

누군가 정성을 다하여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할 때, 그 진정성에 호응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그들은 가까워진다. 서로 다가와 무릎을 맞대고 앉을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아마 이심전심의 경지일 것이니 서로 구태어 의도하지 않아도 가까워지는 것이니 이것을  '무위의 사이' 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 다음의 관계는 아마 '예의의 관계'일 것이다.   상상하건데 그들은 같은 방에 앉아 있되 옷차림을 젊잖게하고 서로 머리를 조아리며  덕담을 나누는 사이 쯤 되지 않을까 한다.   합리적 관계, 그들은 그저 마주 오다 길에서 만나 약간의 목례를 나누고, 서로 적이 아니니 안심하고 옷깃을 스치고 그 곁을 지나가는 관계 쯤 될 것이다.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만 그것이 관계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좋아 마음이 이끌리면 지극히 정성을 다해라. 그 사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정성을 다할 수 없다면 마음을 낮추어 예의를 지켜라.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정성을 다 하지도 못하고 예의를 지키지도 않으려면 그 사람을 만나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 관계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대중의 관계'일 수 밖에 없다.   가족의 관계도 연인의 관계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우정의 관계도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간 길거리의 관계, 관계없는 관계일 뿐이다.   

   스승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배움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연인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사랑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이다.   친구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신의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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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10.24 21:36:07 *.220.176.3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라는 구절이 참 가슴에 와닿습니다.

저도 올해에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아마도 마음으로 존경할 만한 어떤 분을 만났기 때문이겠지요.

길을 걷다가 눈에 잡히는 풍경에 생각이 빠져들 때
문득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마음에 와 사무칠 때
그렇게 마음의 스승님과 대화를 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음 속에서 스승님은 언제나 웃고만 계실 뿐
한 번도 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

내일이면 뵐 수 있겠군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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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란
2008.10.25 14:24:12 *.143.170.4
!
!
!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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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8.10.26 09:47:26 *.105.212.65
햇빛처럼이 내 마음을 어찌도 그리 잘 표현했는지 댓글을 달지 않을 수가 없구나.. 언제나 웃고 계실 뿐 보이지 않는 답을 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난 참 좋구나.. 진정성이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핵심경쟁력이 될 것임을 설파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한번 가슴으로 들어온다. 만약 공자가 선생님의 오늘 글을 보고 있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자신의 생각을 짚어낸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호감을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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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10.27 08:54:58 *.220.176.3
자연스러움이 사라지니 예의가 생긴다라는 말씀을

가을 소풍에서 몸소 가르쳐주셨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제 스스로 그러함"을 깨달아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12기 13기 선배님들의 모임이어서 그런지 그 "제 스스로 그러함"과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기"를 모임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아이들을 이쁘게 봐주시고 가족을 이쁘게 봐주신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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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도끼
2008.10.28 19:56:37 *.142.20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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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3 16:09:10 *.212.217.154

자연스러운 마음이 항상 앞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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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8 13:27:24 *.212.217.154

제 마음속에도 다행히 선생님이라고 부를만한 한 분이 계십니다.

작년봄에 은사님을 모시고 봄소품도 다녀왔더랬죠.


그런 큰 어른이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봄날에도

다시 선생님을 모실수 있게

미리 연락한번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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