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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0일 08시 40분 등록
아담의 배꼽, 마이클 심스, 이레, 2007 ( 원저 2003 ) , 이코노믹 리뷰

어쩌다 사고를 당하거나 도진 디스크 때문에 꼼짝 못하고 몇 주일을 누워 있어야 할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 고작 신세타령이나 하거나 옆에서 간호하느라 애쓰는 아내나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는 것이 고작일까 ? 훨씬 더 창조적인 일이 있다. 이 유쾌한 책은 바로 꼼짝없이 누워 있을 때 저자가 한 아주 귀여운 지적활동을 모아둔 책이다.

그는 그저 그렇게 누워 ‘귀, 발가락, 배꼽 등을 제목으로 아주 자유로운 연상을 휘갈기며’ 몇시간 씩 보내곤 했다.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저자는 자연스럽게 인체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자료를 찾고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인체 발견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인체에 대한 온갖 잡동사니와 몸에 대한 신화와 자연사를 엮어 두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인체에 대한 잡론인 셈이다. 몇 가지 즐겨볼까 ?

왜 책 제목이 아담의 배꼽일까 ? 배꼽이 뭐 어째서 ? 저자의 상상은 느닷없다. 한 여자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있다. 그러다가 배꼽을 응시하게 되었다. 배꼽은 나사처럼 생겼다. 그래서 드라이버를 배꼽틈새에 넣고 돌려 나사를 빼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엉덩이가 툭 떨어졌다. 빼꼽은 배와 엉덩이를 연결해 놓은 나사못이었던 것이다.

이런 농담같지 않은 농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아가서를 뒤져 연인의 배꼽에 대한 또 다른 묘사를 찾아낸다. “ 배꼽은 향긋한 술이 찰랑대는 둥그런 술잔‘ 이라고 말한다. 여인의 배꼽에 술을 담아 마시는 습관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구나.

그런가 하면 쇼샤나 펠만의 배꼽론을 인용하기도 한다.
“ 배꼽은 탯줄이 처음 붙어 있다 끊어지는 지점을 나타낸다. 배꼽은 어머니의 몸과 신생아간의 분리와 결합을 동시에 나타낸다” 배꼽은 우리의 육체가 어머니, 그리고 또 어머니의 부모들, 더 거슬러 올라 우리의 먼 조상과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가 과거와는 독립된 존재라는 것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될 여성들에게는 장래의 아이와 자신을 연결하는 미래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배꼽은 우리가 탄생되었다는 증명서이기도 하다. 또 이 배꼽은 종교적 논란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아담은 배꼽이 있을까 없을까 ? 아담의 배꼽이 있다면 어머니가 있을 것이니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나타내는 창세기이야기와 맞지 않는다. 또한 아담의 배꼽이 있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을 만들었다하니 하나님도 배꼽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의 어머니도 있는 것일까 ?

이런 질문들은 여러 가지 신학적 대답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신이 아담의 복부에서 갈비뼈를 뽑아낼 때 생긴 흉터가 바로 배꼽이라는 궁색한 주장도 생겨나고,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의 타락을 표시하기 위해 배꼽이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다. 배꼽 하나가 가지가지 풍자와 학설과 신학을 만들어 냈다. 자자는 이게 무척 재미있었나 보다. 그래서 아마 이 책의 제목이 ‘아담의 배꼽’이 되었을 것이다.

배꼽이 꽤 진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면 우리의 신체 중에서 가장 격렬하게 논쟁을 불러 있을 킨 것을 들어 보라면 아마 여성의 성기가 아닐까 한다. 1940년대 시몬느 보부아르는 ‘제 2의 성’에서 이렇게 썼다. “ 남성의 성기는 손가락처럼 단순하고 깔끔하지만 여성의 성기는 여성 자신에게도 신비롭고, 비밀스럽고, 끈적이고 습하다. 한 달에 한 번은 피를 흘리고 분비액으로 종종 더럽혀 지기도 한다. 여성의 성기는 자기만의 비밀과 위험한 삶을 가지고 있다” 남성은 딱딱해 지고 여성은 젖는다.

신체의 다른 부위들이 다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때 여성의 성기는 늘 침묵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무엇으로 상징되었다. 여성의 성기는 늘 은어나 속어 혹은 수치스럽고 저속한 이름들로 대신 불려졌다. 미국의 극작가 이브 엔슬러가 ‘버자이너 모놀로그’ 를 쓸 때 싸운 것도 이 침묵의 공모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 성적 학대를 받아 온 피해자였다. 그녀는 여성의 질이 ‘지속적인 폭력의 중심지’가 되어 온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인정할 수 없고 기억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밀이 되고 수치가 되고 두려움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엔슬러는 ‘버자이너’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동안 금지되어온 이 신체의 일부에게 정당한 이름을 찾아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불과 10년 쯤 전인 1996년 이 연극이 초연될 때 까지만 해도 인류의 절반 이상이 가지고 있는 이 신체부위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는 것에 대하여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신문이나 라디오 광고 책임자 등은 엔슬러의 제목을 검열하여 ‘V 모놀로그’ 혹은 그냥 ‘모놀로그’라고 순화해 불렀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버자이너라는 단어가 활보를 하게 되는 것은 저질문화와 퇴폐가 사회를 물들이는 가장 분명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인에게 ‘버자이너’ 라는 말은 이미 순화된 외래어로 이해될 뿐이다. 그러나 신문과 광고에 ‘보지’라는 말이 아무 제약 없이 떠돈다고 상상해 보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설이 난무하는 쓰레기 사회가 되었다고 우려할 것이다. 그저 신체의 한 부위를 지칭하는 단어가 이런 난리법석을 떨게 만드는 것이다. 엔슬러는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낙관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더욱 많은 여성이 이 말을 사용해야 이것을 말하는 것이 큰 사건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야 이 말이 우리 언어의 일부, 나아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안 보이는 곳을 떠나서 보이는 곳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자. 우리의 신체 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은 얼굴이다. 어떤 문화권에 있는 여성들은 얼굴조차도 보여 줄 수 없는 폐쇄성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어디서건 가장 잘 보이는 부위는 얼굴이다. 가족의 얼굴은 진화의 완벽한 표상이다.

거리를 지날 때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갈 때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이 닮아 있을까. 아버지의 얼굴에서 아이의 미래를 읽고, 아이의 얼굴에서 아비의 과거를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다.

저자는 우리가 아주 여러 곳에서 사람의 얼굴 모양을 찾아내는 데 뛰어난 눈썰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나무의 등걸에서, 하늘의 구름에서 화장실의 타일에서 어디서건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닮은 형상을 찾아내고 ‘저 봐, 사람 얼굴 같지 ? ’ 하고 떠들어 댄다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은 그 표정만큼 다양하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시간을 얼굴을 보며 지냈다.

미국의 영화감독인 샘 멘데스는 ‘사람의 얼굴이야 말로 싫증이 나지 않는 것, 어떤 영화에서든 최고의 효과는 얼굴의 클로즈업’이라고 말한다. 왜 우리는 얼굴의 표정에 그렇게 민감하게 되었을까 ? 그리고 실제로 자연 속에서 그렇게 수없이 얼굴의 모습을 찾아내는 데 익숙하게 된 것일까 ?

저자는 다른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인식하는 것이 생존에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진화의 방향이 그쪽으로 이루어 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뇌는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을 살피고 판단 한다. 이 사람은 아는 사람인가 모르는 사람인가 ? 적인가 친구인가 ? 화가 나 있나 기분이 좋은가 ? 결국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바로 관계가 이루어지는 기초인 것이다. 우리는 얼굴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얼굴을 보고 상대를 이해하고 느끼는 쪽으로 발달해 오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인체의 자연사와 문화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우리 몸에 대한 아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단히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며 해당되는 부위를 만져보고 거울에 비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말 그렇구나’ 하는 발견의 기쁨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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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10:38:50 *.212.217.154

재미있는 책이네요^^

우리의 인체는 알아갈수로 오묘한 신비가 있습니다.


육체를 떠나서 영혼이 살 수 없듯이,

우리 몸을 잘 알 때,

우리의 마음도 잘 이해할 수 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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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30 11:06:07 *.212.217.154

인간이 육체를 떠나 살수없듯이,

정신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저 평가되어있는 육체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인듯 합니다.

주문하여 보려하니 절판되어 안타깝네요,

중고알림을 신청하여 천천히 찾아 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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