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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3일 10시 02분 등록
다시 시작하고 싶구나 2008년 3월, 현대해상

얼마 전 나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를 다녀왔다. 그 섬의 남쪽 끝에 있는 작은 산에 올라 그곳에서 제주도를 보길 바랐다. 봄볕은 따뜻하고 날은 맑았으나 수평선 위에서 아름다운 제주도의 실루엣을 찾을 수는 없었다. 봄의 아지랑이가 시야를 좁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좋은 봄날 바다를 실컷 본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바다는 내게 늘 알 수 없는 흥분을 주었다. 모든 것을 담고도 푸를 수 있다는 자기 절제가 좋았고, 그러다가 못 참겠으면 가끔 비바람 속에 거침없이 포효하고 흥분하는 그 자유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두 딸 들의 이름에 모두 바다를 담아 두었다. 성을 빼고 겨우 두 자 남은 선택 중에서 망설이지 않고 바다 ‘해’ 자를 가운데에 덥썩 넣어 두었다. 그리고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왜 차거운 푸른 색 출렁임이 그렇게 그리운지 나는 아직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추측컨대 내가 마음 속에 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어느 날 우연히 나를 본 스님 하나가 내 속에 불 화(火)가 3개나 들었다 했다. 아마 그래서 나는 변화 경영 전문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싸질음으로 써 새로워지는 불의 특성이 내 기질의 근저를 이루기 때문에 늘 변화와 개혁과 혁명에 도취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변화의 피곤함 속에서 그 반대에 서 있는 물의 고요함이 그리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너무 빨리 간다 싶으면 삶의 여유가 그리워지고, 너무 현실적이어서 먹고 사는 것에만 전전긍긍하다 보면 문득 오래 잊고 있었던 꿈과 이상이 그리워진다.

삶은 늘 불안정한 것이다. 어쩌다 이쪽으로 경도되어 균형을 잃고 살다 보면 다시 그 반대의 것이 그립고 그리하여 그쪽으로 몸을 움직여 균형을 잡으려는 이 불안정한 움직임이 바로 삶이 아닌가 한다. 시몬느 보부아르는 그래서 ‘매순간 형평을 잃고 다시 정상을 회복해 가려는 불안정한 체계, 이것이 바로 삶’이라고 명명했다.

변화 경영을 시작하면서 나 역시 물처럼 흘러 바다를 향하는 작은 강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번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 그러나 하류로 흐르면서 더 많은 물을 품고 더 낮아지고 유장해져 바다에서 다른 강물들과 만나는 삶, 나는 그것이 변화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내 명함에는 ‘변화 경영 전문가 ’ 구본형‘ 이라고 적혀있다. 마흔 여섯 살에 직장을 나와 내 스스로의 정체성이 필요할 때 나를 지탱하게 해준 스스로 명명한 내 직업의 이름이다.

그러나 쉰 살의 중반을 맞아 나는 ’변화경영사상가‘ 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싶다. 말 그대로 어떤 기술적 전문인에서부터 변화에 대한 철학과 생각을 일상과 녹여내는 사상가로 진화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능할 지 모르지만 나는 ’변화경영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다. 나이가 들어 시를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는 젊음의 그 반짝임과 도약이 필요한 것이므로 평화를 지향하는 노년은 아마도 그 빛나는 활공과 창조성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처럼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시처럼 아름답게 살 수는 있지 않겠는가. 자연과 더 많이 어울리고, 젊은이들과 더 많이 웃고 떠들고, 소유하되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 왜 시인이 되고 싶은 지는 잘 모른다. 그저 시적인 삶, 묶인 곳 없이 봄날의 미풍처럼 이리저리 흩날려도 사람들을 조금 들뜨게 하고 새로운 인생의 기쁨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는 그런 삶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리라.

계절이 바뀌었다. 자연의 절제와 죽음이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은 맨발을 한 여신처럼 산들거리면 온다. 얼었던 땅이 녹아 푸근히 들뜨고, 몸을 움추려 겨울을 난 잡풀이 어느새 조금씩 녹색 빛을 띈다. 죽음 속에서 삶이 나고 새롭게 다시 시작된다. 봄이다. 내 안에서도 그대의 마음속에서도 다시 살아야겠다는 초록빛 목소리가 낭랑하다.

다시 살자. 내게 시간이 아직 남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인생은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다. 아침마다 세수를 하는 이유도 이 날이 어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매일 세 끼의 밥을 먹는 이유도 밥을 먹을 때 마다 ‘내가 다른 것들을 죽여 그것들을 먹고 내 삶이 살아지는 것이구나’라는 각성을 주기 위해서다. 죽음을 먹고 삶이 자라는 것이니 어찌 치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날마다 새로운 인생, 이 봄에 물오른 나무처럼 다시 살고 싶구나.

IP *.128.2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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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2008.03.14 14:31:40 *.46.81.114
아주 가끔씩 보는 성경책을 펼치듯 들려보는 사이트입니다.
"바다" 이글을 읽고나니 바다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립니다.
불교용어같기두 하고....
거친 풍랑속에서도 잔잔함을 유지하는 수심같이
선생님은 바다같은 분인것 같습니다.
식지않는 열정과 깊은 통찰력 계속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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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정명윤
2008.03.19 09:26:19 *.199.250.121
캬~~~~^^ 다시 태어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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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盈科不行
2008.03.21 09:17:42 *.227.167.41
죽음을 먹고 삶이 자란다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같은 하루를 몇십년 동안 되풀이하라고 사람의 수명이 이리 길게 주어지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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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아침상념
2008.03.21 17:08:58 *.242.49.136
제 일상이..선생님의 글에 의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고..다시 시작하라고.. 꿈꾸라고..
무기력해지거나..일상에 지칠때 선생님의 글 속 문장들이 제 귓가에서쉴새 없이 얘기를 합니다.
누군가의 충고보다 더 효과가 강한.. 선생님의 글..
화사한 봄날.. 언 마음을 녹이고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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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수
2008.03.27 13:16:52 *.107.118.88
삶은 명료하기에 "00처럼"이라 표현하기는 시인이기에 충분하겠지요

작은 욕망마저 없다면 그저 그런 것이 삶이겠구요
00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00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을 좆는 사람이 또 있죠

시는 명료하고
삶은 단순한 것
그냥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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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룡
2008.03.27 21:46:00 *.199.44.53
계절과 세월에 따라 한단계,한단계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어느땐 시로 ,다정한 수필로 그리고 어느순간 잠언으로 각인되고 때로는 천둥같은 울림으로 가슴을 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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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1 07:59:51 *.139.108.199

달라지고싶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것은

정신병 초기 증상이다.' - 아인슈타인

어제와 다른 오늘로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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