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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5일 12시 35분 등록
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7 ,
(이코노믹 리뷰- 철도 공단)

꽃피는 봄엔 시를 읽자. 로버트 프로스트의 산들거림도 좋고 신동엽의 담배연기 떠가는 들길도 좋고 뜨거운 네루다의 인간적인 시도 좋다. 그저 꽃처럼 피어나 보자. 책을 펴고 글자를 따라 낭송하듯 우리의 삶의 한 순간이 노래처럼 흐르게 하자. 무엇이든 좋다. 시라면 모두 좋다. 시가 사라진 일상에 이 달 오늘 지금만은 시로 가득 채워 보자.

안타까운 일이다. 어찌하여 눈 씻고 찾아보아도 부자가 된 것은 저 밖에 없는 재테크 서적과 시시하고 값싼 저도 못한 ‘해라’ 처세론이 베스트셀러를 휩쓸고 있을 때 시집은 그 속에 한 권도 그 이름을 올리지 못한단 말인가 ? 우리를 깨워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만들었던 그 위대한 노래들이 왜 사라져 버렸을까 ? 어찌하여 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상자 속에 갇힌 것일까 ?

아마 시가 어려워서일 것이다. 그래서 일상의 언어로 가득한 부엌 같고 거실 같이 편안한 시집 한권을 소개할까 한다. '끝과 시작‘은 비스와라 쉼보르스카의 시선집(詩選集)으로 170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녀는 폴란드의 여류시인이고 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녀의 시를 ‘모짜르트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위에 베토벤 음악같이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하고 있다’ 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이런 극찬에 대하여 그녀는 역대 수상자들 중에 가장 겸손한 수상 소감으로 답례했다.

“ 계속 새로운 도전거리를 발견한다면, 어떤 직업이든 끊임없는 모험의 연속일 것입니다. ‘나는 모르겠어’ 라고 말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감이 솟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하여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또 다시 망설이고 흔들리는 과정을 되풀이 합니다. 이 작품 또한 일시적인 답변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번 더’, ‘또 다시 한 번 더’, 시도와 시도를 거듭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시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할 일이 많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런지요. ”

그녀의 시는 편안하다. 그러나 일상의 평범한 언어들을 모아 결코 평범하지 않은 통찰과 핵심을 전하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고심하는 지를 보여주는 시가 하나 있다.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도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끓는 증오처럼
.....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 ‘단어를 찾아서’ 중에서 )

그녀는 시를 쓰기 위한 단어를 찾는데 만 애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사람을 만나 사귀게 되는 데도 무한한 애정을 쏟는가보다. 그녀의 시 ‘열쇠’ 에는 그 갈구를 이렇게 표현한다.

열쇠가 갑자기 없어졌다.
어떻게 집에 들어갈까 ?
누군가 내 잃어버린 열쇠를 주어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리라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텐데.
걸어가다 그 쓸모없는 쇠붙이를
휙 던져버리는 게 고작이겠지.

너를 향한 내 애타는 감정에도
똑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이미 너와 나,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의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니. (‘열쇠’, 하략)

그렇다. 사람들은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인류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하나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와 나는 누구도 만들어 내지 못한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그렇게 사랑해야한다. 하나밖에 없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인생이란 두 번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반복되는 하루는 없다. ‘똑 같은 밤도 두 번 없고, 똑 같은 키스도 두 번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그 사람의 이름을 듣는 순간, ‘마치 열린 창문에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듯’ 했다면, 그 순간을 잊지 마라. 다 잊고 사랑이 식어 그 장미가 꽃이었든가 돌이었든가 의심하고 돌아서지 마라. 그렇게 이 세상의 사랑 이야기 하나가 보잘 것 없는 망각으로 슬피 사라지게하지 마라.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 ‘밤하늘의 보잘 것 없는 별들에게는 그처럼 관대하기만 하던 세월이 우리에게는 빈손을 불쑥 내밀었다가 그것도 아까운 듯이 금세 거두어들이고’ 만다. ‘인생이란 아무리 긴 듯해도 언제나 짧은 것’이다.

나처럼 시하고는 아무 관련도 없는 시의 문외한이 접하기에 쉼보르스카는 가장 잘 읽히는 시인들 중의 한사람이다. 물론 행과 행 사이에 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시라는 구조 자체가 말을 아끼기 때문에 산문처럼 그렇게 쉽게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도 그렇다.

어쩌면 이 시집도 어렵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를 읽을 때는 10편중에 마음에 딱 꽂히는 시가 한 편만 되도 건진 것이다. 모름지기 가슴으로 무찔러드는 그 한 편에 의지하여 다른 시에 접근하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약간의 퍼즐이고, 약간의 도전이고, 약간의 영감을 필요로 하는 놀이다. 어쩌다 이리저리 돌리던 하나의 열쇠가 ‘탁’하고 자물쇠를 튀어 오르게 하면 돌연 그 어두운 밤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린다. 시란 바로 그 감흥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는 시를 읽자. 시를 노래하자. 모두 모여서 가장 좋아하는 시들을 읊어보자.
IP *.128.229.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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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2008.04.16 17:11:56 *.234.181.140
옳은 말씀입니다.
다시 시집을 들고, 빈 자리를 찾아 떠나고 싶네요.
역시 글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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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0 13:34:50 *.212.217.154

시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시를 특별하게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자신이 느끼는대로 읽고

그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는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의미에서

하상욱의 시 처럼 

우리세대를 대변하는 시가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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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 16:57:11 *.212.217.154

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간이지나고 연륜이 쌓여간다면 

언젠가는 마음속으로 들어올날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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