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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8일 21시 06분 등록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일생의 프로젝트로 삼아보자.
행복한 동행, 5월 16일

살다보면 앞이 꽉 막힌 듯한 때가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시원한 길은 없고, 내게 주어진 세상의 호의는 어디에도 없는 듯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는 사라지고 세상이 나를 잊어버린 듯이 보일 때, 내게 편지를 보낸 젊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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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욱 초라하게 느껴져서 글을 올릴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망설임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기 때문에 용기를 내었습니다. 올해 졸업을 하고 아직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25세 여자입니다. 어릴 적부터 학교 성적은 웬만큼 나왔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대학에 갔습니다. 전공도 그냥 수능점수에 맞춰서 수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깊이 있는 공부는 하지 않고, 성적만을 위해서 얕은 공부만 했습니다. 성적은 잘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그럭저럭 살다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성적만 유지하면 되겠거니 하면서 살았는데, 지금 와서 남아있는 것은 대학 졸업장뿐입니다. 전공 지식은 다 잊어버리고, 교양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 또한 제겐 없습니다. 그저 졸업을 하고,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졸업 즈음에 대학원 시험도 보고, 대기업 시험도 한 번 보았는데 모두 떨어졌습니다. 면접이 문제였습니다. 성격이 워낙 소심하고 내성적인데다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이제는 '다 안되겠지.. 나 같은 사람을 누가 뽑아주겠어.. 아무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 속에 파묻혀 버립니다.

이런 생각은 대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대학교 때까지 친구들도 몇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다 보면, 괜시리 두려워졌습니다. 이 친구가 나를 싫어할지도,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실제로 중학교 때 그런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친구를 사귀다가도 제가 갑자기 연락을 안하고 피하니까 자연히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먼저 피한 건 나지만 그로인해 더 외로워지고 우울해집니다. 대학 다닐 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되겠다. ' 라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 내에 있는 학생상담센터에서 몇 달동안 상담도 했었습니다.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었구요. 지금은 거의 집에 콕 박혀서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만 죽이고 있습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이러는 제 자신을 비난하고 또 그것에 지쳐갑니다. 너무 한심해요..

직장을 갖든지, 대학원을 가든지, 아니면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야 할텐데..도무지 제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 모르겠어요..부모님도 답답해하시면서 평생 이렇게 살 것이냐고 다구치십니다. 지금까지도 늘 부모님 그늘아래서 편하게만 살아왔는데, 효도는 못할망정 점점 나쁜 딸이 되는 것 같아요..하지만 어떤 일도 할 용기가 나질 않아요. 등에 짐이 너무 많아서 한 발짝도 나가기 힘든 것 같은 기분이에요.. 이런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의욕상실, 계속되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떨쳐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생각 같아선 책도 많이 읽어서 넓게 지식도 쌓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기차게 살고 싶고, 환경 분야의 공부도 하고 싶고 문화 분야를 새롭게 공부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지 막연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서 하고 싶은 건지, 제가 진정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구요. 제가 원하는 것, 즐거운 것, 미래로 삼고 싶은 것을 빨리 찾고 싶어요.
********

홈페이지에 올라 온 이 긴 편지에 대하여 많은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 5분간 떠오르는 크고 작은, 모든 하고 싶은 것들을 다 적어보고, 그것들 중에서 비현실적인 것들을 지워 나가다 보면, 남는 것이 있을 텐데, 그것부터 시작해 봐라’라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당연한 시점에서 당연한 고민’이라고 전제한 후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제대 후 6개월간 집에서 놀면서 무기력증에 시달리다, 출퇴근 하 듯 도서관에 매일 가게 되고, 석 달 동안 닥치는 대로 100 권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것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되었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달리기를 막 시작한 어떤 중년의 아저씨는 ‘그저 뛰어봐라’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맨 마지막에 편지를 보낸 이 젊은 여인이 짧게 답을 달아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만의 문제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위안을 받습니다. 열심히 길을 찾아 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모두 각자의 짐을 지고 함께 길을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때때로 짐이 무거울 수록 그것이 더 큰 일을 맡기기 위한 신의 안배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기도 합니다.

나 역시 아주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넘치지만 내가 먼저 다가서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외향적이고 밝은 사람이 부러웠고, 자신이 초라하고 바보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등감에 젖은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밝은 성격에 대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이해하고, 내 소극적 방식에도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깊은 속마음으로 자신을 오래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도 어느 덧 자신의 마음을 주게 됩니다. 살면서 느낀 것은 나를 깊이 이해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은 살만 하다는 것입니다.

조언을 하나만 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한 사람을 사랑해 보자. 빛나는 모습의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 대신 지금 가장 초라하고 우울하고 지겹고 불행한 모습의 사람 하나를 사랑해 보자. 바로 지금의 나. 바로 나를 사랑해 보자. 사랑이 나를 일으키도록 해 보자. 내가 한 사람 정도는 깊이 사랑하고, 도와 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워, 단장시키고, 책을 읽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주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맡겨보자.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바로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임을 믿어보자. ‘나’라고 불리는 이 사람을 도와 가장 매력적인 사람 하나로 만들어 보자. 이것이 바로 일생일대의 내 프로젝트가 되게 하자.”
IP *.116.3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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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導 이혁재
2006.05.29 16:23:15 *.108.26.5
선생님, 이 글 너무 감동적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도 힘들 때면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일생의 프로젝트로 삼아보자' 를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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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06.01 09:01:24 *.75.166.29
누군가 제게 물었죠.
'전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없는데... 뭘해야할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문제 없구만! 아무것도 특별히 잘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 않나?'

저는 가끔 씩 노래를 부릅니다.
몇 곡 안되는 아는 노래중에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거야!'
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 안에 나오는 '너'를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로 생각하면서 폼잡고 부르죠...
그렇게 변화를 꿈꾸는 내가
변화되지 않은 나에게 노래부르는 거죠!
사랑의 노래를 ...

괜찮은 방법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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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2007.01.18 08:07:38 *.173.139.94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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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9 11:02:08 *.212.217.154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그 안에서 일어 서는것.

결국, 모든 답은 자신에게 있다는 평범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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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5 17:22:23 *.98.149.92

세상에는 세상 사람들의 수 만큼의 삶이 있겠지요.

이야기 속 그 여인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벌써 십년전 이야기인데,

결혼해서 보석같은 아이와 웃으면서 지내고 있으시겠지요^^


스스로의 문제는 결국 자기 자신만이 풀 수 있지요,

부디 스스로를 잘 사랑하셔서

행복한 삶을 찾게 되셨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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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19:08:51 *.216.241.48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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