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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8일 11시 48분 등록

 

내 노래로 데메테르의 딸*을 홀리리라.

죽음의 왕도 무너뜨리리라

내 음악으로 그들의 심금을 울려

기필코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부터 되찾아 오리라

 

 

이 노래는 시인이며 리라의 명수인 오르페우스가 일찍 사별한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죽음의 지하세계로 내려가기 전 전의를 다지는 노래다.   무사이의 아홉 여신 중의 하나인 칼리오페의 아들인 오르페우스는 나무의 님프 에우리디케와 결혼을 했다. 어느 날 에우리디케는 들길을 산책하게 되었는데, 들에서 만나 치근대는 양치기를 피해 달아나다가 뱀에 물려 죽고 말았다.

 

 

에우리디케를 몹시 그리워하는 오르페우스는 저승세계로 내려간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스틱스 강의 사공 카론을 울리고, 머리가 셋에 꼬리는 뱀의 모습을 하고 저승 입구를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달래고, 어두운 하데스의 영토 곳곳을 감미로운 그의 노래로 가득 채웠다. 그 노래는 너무도 감미로워 지하세계에서 벌받고 고통 받는 자들의 영혼조차 그 날 하루 동안만은 기쁨으로 구원 받았다. 마침내 저승의 왕과 왕비도 감동하고 도취하여 인간에게 한 번도 허용되지 않은 특혜를 베풀었다. 하나의 조건과 함께.

하나의 조건,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쉬운 것처럼 보였다.

 

 

"네 신부를 데려가라. 그러나 너희 둘이 빛의 세계에 완벽하게 발을 들여 놓기 전까지는 절대 뒤돌아 네 신부를 쳐다보아서는 안된다"

 

기쁨에 젖어 노래하며 오르페우스는 신부를 데리고 어두운 지하세계를 빠져 나온다. 마침내 그는 햇빛이 쏟아지는 지상세계의 입구를 껑충 뛰어 올라 환희에 가득 차 신부를 향해 뒤돌아선다. 그러다 그는 너무 빨리 몸을 돌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우리디케는 막 햇빛 속으로 발을 옮겨 놓으려는 찰라였으니까. 그녀는 순식간에 넘어져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죽음은 그들을 영원히 갈라놓았다.

 

 오르페우스.jpg

왜 오르페우스는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비극적인 실수를 저질렀을까 ? 릴케의 표현에 따르면, 비극은 오직 산자의 몫이다. 앞서 저승을 벗어나기 위해 걸어가는 오르페우스의 시선은 "달리는 개처럼 앞서 갔지만 ...그가 듣는 것은 냄새처럼 뒤처"졌던 것이다. 뒤 따라오는 에우리디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발자국 소리도 없는 그녀, 아무 소리도 없다. 따라오고 있을까 ? 오르페우스는 불안해져 의심한다. 뒤를 돌아보고 싶어 미칠 것 같다. 그러나 죽은 자는 이미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오르페우스를 따라오는 에우리디케는 멍했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달콤함과 암흑으로 가득한 과일' 같은 자신의 죽음을 평온함으로 여겼다.

 

 

다왔다고 여기는 안도의 순간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본다.       에우리디케와 시선이 마주 닿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사라진다. 

'닿는 순간 사라지는 이 미칠 듯한 부재(不在)'

 

이것이 바로 모든 예술가들의 비극이다. 시인이며 음악가인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향해 내려간다.  에우리디케는 그에게 있어 예술이 이룰 수 있는 최선의 극단이다.     '은둔의 철학자'인 모리스 불랑쇼의 표현대로 '그녀는 그녀를 숨기는 이름아래, 그녀를 숨기는 베일 아래, 예술, 욕망, 죽음, 밤이 지향하는 몹시도 어두운 지점'이다.     오르페우스는 그 어둠에 속한 '깊은 것'을 빛의 세계와 낮의 세계로 가지고 나오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빛의 세계로 나와 표현을 얻는 순간 사라진다. 이것이 에우리디케의 얼굴에 머물던 오르페우스의 마지막 시선이다.       어부가 다 잡은 고기를 놓쳐버리듯이, 글쟁이가 무언가를 잡았는가 하다가 놓쳐버리고, 화가가 무언가를 포착하는데 성공한 듯 하다가 놓쳐버리는 것과 같다.      모든 예술가들은 이 지점에서 통곡한다. 작품에 다다르는 순간 거기서 쫒겨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2부 13편에서 에우리디케를 잃고

비탄에 빠진 오르페우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막 지나가는 겨울처럼

마치 그 이별이 네 등 뒤에 있는 것처럼

그 많은 겨울 들 중에서 하나가 끝없는 겨울이니

그 겨울을 나며, 네 마음은 그저 견뎌내야 하리라.

 

 

언제나 에우리디케 안에 죽어 있으라, 노래, 노래하며

더욱 더 칭송하며, 순수한 연결 속으로 돌아가라

이곳, 사라지는 곳들 속에, 쇠락의 영역 속에 머물며

울리는 유리잔이 되어라, 소리를 내며 깨어져 버리는

 

 

할 수 없다. '에우리디케의 얼굴에 머물던 오르페우스의 마지막 시선' 그 시선으로 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작가의 운명이니.  그러나 그 순간에 공명하여 울리는 그 유리잔이 되리라.  

IP *.128.2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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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id: 이슈
2012.02.08 13:16:03 *.243.13.185

"글쟁이가 무언가를 잡았는가 하다가 놓쳐버리고,

 화가가 무언가를 포착하는데 성공한 듯 하다가 놓쳐버리는 것과 같다. "

-무언가에 도달하려고 글사슬을 걷어 올리다가
 다시 우물에 빠트리는 순간 같습니다.

-운영자님 참고로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스북에 구선생님이 링크를 해주셔서 클릭하고 들어 왔는데
 글을 읽고 댓글 하려면 로그인을 도 해야 합니다....
 원래 그런 것인지..아..그럴 수도 있겠네요...댓글하려면 기존 회원을 확인하는...


이해은 가는데 이미 회원이 되었으면 그절차 생략가능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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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2.09 10:56:27 *.85.249.182

지하세게에서 작가의 운명으로 확장시킨 그 정신세계가 부럽습니다.

그런데요,  작가에게 머무는 그 시선은 누구의 시선입니까?

많이 생각하고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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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9 11:49:41 *.23.70.101

<시의 운명>

 

시는 음악을 선망한다.

시의 육체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기에

베이스캠프에 남아서 그의 소식을 기다린다.

 

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따분함이다.

기다림에 지치다 결국 인간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야 하는 좌절

그의 육체는 책이라는 무덤에 묻혀서 영원히 인간에게 오해받는다.

아, 억울한 운명이여

 

그러나 시여, 너무 슬퍼말거라.

너보다 더 비루한 현실을 가진 인간은

너를 오해함으로 인해 그 비루한 현실에 한 잔의 위로를 얻는단다.

 

시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언젠간 그들의 육체에 날개를 달고

흥겨운 노래가 되어서

훨 훨 날아가리라는 황홀한 꿈을 꾼다.

 

 

시가 음악이 되어 날아갈 수 있는 비결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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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1 22:55:50 *.212.217.154

닿으면 사라지는 물방울 같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역설이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유혹하며 자극하는 것이겠지요.

살아있음이 곧 역설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삶과 죽음이 바로 한 끗 차이니까요,

결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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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15:03:21 *.70.27.21

문득, 신화의 이야기에 작은 딴지걸이가 생겼습니다.

왜, 모든 신화속 주인공들은 모두

어떤 신, 영웅, 엄청난 존재의 아들 딸 들일까요?

대부분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보편적 인간들은

그들의 리그에 발 들일 수 없는 것인지.


신화란, 그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기득권들의 이야기는 아닐지,


지금은 없어진, 귀족, 왕족 같은 핏줄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말이지요.


그런 신화의 한계를 이해 할 때,

우리는 우리안의 울타리를 스스로 넘어

더 위대하게 성장할 수 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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