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구본형

개인과

/

/

  • 구본형
  • 조회 수 8872
  • 댓글 수 8
  • 추천 수 0
2012년 3월 19일 10시 24분 등록

여기 시가 하나있다. 이 시의 제목은 '내 고추'다.

 

변소에 가서

오줌을 누려고 하는데

해바라기가

내 고추를 보려고 한다

나는 안 보여줬다

 

어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시다. 열 살짜리의 시인데, 귀엽다. 그러나 원래의 시는 다르다. 원작은 이렇다.

 

변소에 가서

오줌을 눌라고 하는데

해바라기가

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나는 안 보여줬다

 

제목도 '내 고추'가 아니고 '내 자지'다. 사투리도 표준말로 고쳤다. 학교 선생은 다른 학생들에게 원작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불편해서 교육적 차원에서 젊잖게 고쳐두었다고 한다. 강제 개작을 통해 이 시의 어린 작가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 날 수 없게 되었다. 표준화 되었고, 무난해졌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거름망을 지나오는 동안 '열 살짜리 남자 아이'라는 본질을 잃고 말았다. 생명을 잃었고, 진실을 잃었고, 시(詩)를 잃었다. 해바라기가 보려고 하여 숨긴 것은 내 고추가 아니라 내 자지인 것이다. 고추라면 숨길 필요도 없다. 오직 자지이기 때문에 숨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프레데릭 와츠.jpg

 

신화는 문명의 고치지 않은 원판이며 야생의 사유다. 모든 어른 속에 아이가 들어 있듯이, 인류는 그 사유 속에 원시를 품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문명은 원시로부터 시작되었다. 원시를 품지 않은 문명은 죽은 것이다. 야생의 사유가 없는 문명은 아스팔트며, 가면이며, 생명이 다했거나 애초에 생명이 없이 만들어진 조화(造花)에 불과하다.

 

신화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오래된 원시의 철학이다. 그때 그들은 이 사유의 틀로 사람을 이해했고 자연을 이해했고 우주를 이해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원시를 미신이라고 불렀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원시를 야만이라고 모멸했다. 그러나 신화는 이야기 속에 체계적으로 위장되어 있는 진리의 상징이다. 그것을 풀어내면 옷 속에 감춰진 인류의 은밀함에 접근해 갈 수 있다.

 

IP *.128.229.208

프로필 이미지
2012.03.19 10:52:11 *.97.72.233

 

.

.

.                                              ^-^*

 

프로필 이미지
2012.03.19 22:10:04 *.168.97.226

신화는 가장 오래된 원시의 철학!

느낌 있습니다.


요즘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공부를 즐깁니다.


원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상상하는 것이 

제법, 저의 뇌를 흥분시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프로필 이미지
2012.03.20 01:40:49 *.122.237.16

ㅋㅋㅋ 사부님, 통쾌하네요.

프로필 이미지
2012.03.27 13:07:04 *.37.14.12

자지란 생생한 표현이 좋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3.28 06:55:30 *.180.231.209

해바라기는 그곳에 그냥 피어 있을을 뿐인데, 시속에 생생한 조연이 되었습니다. 멋진 해바리기 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3.31 13:34:49 *.200.147.129

"야생의 사유가 없는 문명은 ~ 조화에 불과하다" 이 구절 좋으네요. ^^

 

"야생의 사유가 없는 삶은 ~ 가짜 삶에 불과하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7.02.25 11:16:08 *.139.108.199

자지를 자지라 부를수 없다니!

아무튼 유쾌통쾌한 글이에요^^


인류가 아무리 문명화 하더라도,

동물적 본성은 숨길 수 없겠지요,


그 본성과 문명을 조화롭게 어울리는 기술이 삶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9.01.17 11:25:54 *.212.217.154

자지를 자지라 부를수 없고,

보지를 보지라 부를수 없는 슬픔!


그것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비 문명에서 문명으로

'성장'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화 이겠지요.


내 안에 숨겨진 어린아이의 그 순수함, 원시의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

그 에너지를 잘 되살릴 때

그 힘은 우리를 본래의 자신으로 되 돌아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83 4종류의 직업 [5] 구본형 2002.12.25 7352
582 변화라는 것 -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행복한 비명같아요 [2] 구본형 2002.12.25 6216
581 좋아하는 일은 활력입니다 [2] 구본형 2002.12.25 6193
580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내는 방법 [5] 구본형 2002.12.25 7888
579 남보다 우월하기 위해서는 모범적이어서는 안된다 [2] 구본형 2002.12.25 6551
578 돈을 버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하나 뿐이다 [2] 구본형 2002.12.25 7189
577 변화의 의미 - 변화하지 않을 때의 기득권과 변화할 때의 혜택 [2] [1] 구본형 2002.12.25 6184
576 변화의 얼굴들 - 변형, 변성 그리고 변역 [3] 구본형 2002.12.25 6901
575 알짜 부자들의 정체 [3] 구본형 2002.12.25 6265
574 돈이 최선인 사회에서는 조지 소로스도 살기 어렵다 [3] 구본형 2002.12.25 5616
573 우리는 나아질 수 있다 - 아니타 루시아 로딕 ( Anita Lucia Roddick) [2] [2] 구본형 2002.12.25 5894
572 우리는 자신의 내면의 이름을 찾아야한다 - 페이스 플로트킨에서 페이스 팝콘까지 [2] 구본형 2002.12.25 5641
571 한정된 자원을 통한 경제의 지속적 성장 [2] 구본형 2002.12.25 5944
570 세계지식포럼 참관기 - 레스터 소러 교수 기조연설 [2] [2] 구본형 2002.12.25 6438
569 휴먼 개피털에 주목하라 [2] 구본형 2002.12.25 6029
568 가장 자기다운 것을 만들자 [4] 구본형 2002.12.25 6359
567 보보스 [2] [2] 구본형 2002.12.25 5643
566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2] 구본형 2002.12.25 7177
565 서가에 꽂인 책 [2] 구본형 2002.12.25 5995
564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2] 구본형 2002.12.25 6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