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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0일 12시 00분 등록
좋은생각- 천리포 수목원, 2002 년 8월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식물에게 그렇듯 그들은 그곳에 무심한 채로 서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곳은 다른 곳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 선, 가꾸지 않았지만 꽤 매력적인 정원 정도로 생각될 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동물들의 시계를 벗어 놓고 식물들의 시간 속으로 잠시나마 들어 가 볼 수 있었다.

후배 몇 사람들과 천리포 수목원을 찾아 간 것은 평일 오후였다. 땡볕이었지만 바람이 있어 서늘하고 너무도 환한 날이었다. 작은 방문패를 목에 걸고, 그곳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후배의 뒤를 따라 나섰다. 이미 다 지고 가끔 뒤늦은 꽃 한두 송이를 달고 있는 목련들 사이로 수련이 가득한 연못가를 천천히 걸었다. 아주 천천히 걷다 다시 멈추어 섰다. 주위를 둘러보고, 물끄러미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실린 꽃향기가 좋다.. 우리들은 즐겁게 웃고 떠들었고, 이상하게 시간은 멈추어선 듯했다. 잠시 나는 수목원 가득한 나무들과 어울려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무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이 사라진 듯 했다.

갑자기 회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공자는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 하지 않는 사람은 군자라 할 만하다하였다. 이것이 화이부동이다. 소인배들은 서로 잘 지내는 듯하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할 뿐, 두루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했다. 이를 동이불화 (同而不和)라 부른다. 어째서 내가 수목원의 나무를 보며 군자를 생각하게 되었는 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태연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서로 잘 어울렸다. 나무들끼리 서로 어울렸을 뿐 아니라 바람과 하늘과 바다와 구름과 햇빛과 새, 그리고 호수와 그렇게 어울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나무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침잠한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 혼자 있어도 아름답고, 같이 있어도 아름답다. 그들은 태평하고, 여유롭고,느긋하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다. 우리처럼 바쁘지 않다. '마땅한 때', 즉 봄이 오면 잎을 내고 이윽고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맺는다. 자신이 어느 때 무엇을 해야하는 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매일 바쁘다. 그래서 서둘러야할 이유가 없어진 모처럼의 휴가도 일에 쫒기듯 바쁘게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휴가는 다른 현실과의 약속' 그리고 '휴식은 틈새로 보이는 빈 공간'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그리고 올해 휴가는 동물들의 분주함에서 식물들의 일상 속으로, 바로 또 다른 현실 속으로 침투해 보자. 아주 느리게 흐르는 식물 시간의 여울 속에 몸을 담그고 그 유유한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보자. 잠시 나무가 되자. 손가락에서 줄기가 나와 잎이 달리고 발에서 뿌리가 나와 땅 속으로 들어가며 이윽고 온몸에서 뻗어 나온 줄기들과 잎들에 뒤덮여, 눈을 감고 조용히 혼자 자신을 들여다보자. 그러면 아마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탓임을 알게 될 것이다.


IP *.229.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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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1 16:37:32 *.212.217.154

화이부동.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지만, 사사롭게 흔들리지 않고, 이해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지 않는 자는 군자라 할 만 하다.


자연처럼 서로 잘 어울리는 것.

자연이 곧 군자이겠지요.

자연처럼, 받아들이는 삶 또한 즐거운 삶 임을.

자신의 욕망과 자연의 순리 사이에서

균형있는 나를 그려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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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4:39:28 *.223.162.130

마음의 큰 불안감이 생기면

판단력이 흐려지며

만사가 예민해집니다.


어제 오늘의 제가 그러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것은 참으로 힘든 일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매일 수련한다면 조금은 쉬워질까요?


그래도 선생님의 글을 읽는것이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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