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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4일 11시 33분 등록
한비자, 권력의 기술, 이상수, 웅진 지식하우스, 2007

진시황은 어느 날 책 몇 권을 읽었다. '고분'과 '오두'라는 글을 읽더니 이렇게 탄식했다. "이 글을 쓴 이와 만나 사귈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분서갱유로 악명을 떨친 이 냉정한 인물을 매료시킨 사람은 바로 한비자였다. 그는 당시 약소국의 하나였던 한(韓)나라 서얼 공자였다. 진시황은 그를 얻기 위해 한나라를 쳐들어갔고, 드디어 기원전 233년 한비자를 만났다. 그러나 이 극적인 만남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비자와 같은 스승을 모셨던 이사는 진시황의 최측근이었는데 영특한 동창생 한비자의 등장에 바싹 긴장했다. 이사는 결국 한비자를 모략하여 독약을 먹고 자결하게 만들었다. 후에 진시황은 후회하는 마음이 들어 한비자를 사면해 주려했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만남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 중에서 가장 현실주의적인 한비자의 통치이론은 진시황이 강력한 중앙집권적 제국을 건설하는데 깊은 영향을 남겼다.

군주에게 유세하는 것의 어려움을 다룬 한비자는 심리적 통찰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주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진시황이 반한 '고분'의 한 구절을 음미하다 보면 개혁가의 어려움을 들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한비자의 비장함을 느낄 수 있어 보인다.

"군주와 가깝지 않은 자가 군주의 신임과 총애를 받고 있는 자와 다투니 승산이 없다. 새로 조정에 나온 이가 군주와 오래도록 친숙한 관계를 맺은 이와 다투게 되니 승산이 없다. 군주의 뜻을 거슬리는 자가 군주의 기호를 맞출 줄 아는 이와 겨루게 되니 승산이 없다. 지위도 가볍고 신분도 낮은 이가 지위도 무겁고 신분도 귀한 이와 맞서는 것이니 승산이 없다. 오직 자신의 입 밖에 없는 이가 온 나라의 칭송을 받는 이와 맞서는 것이니 승산이 없다."

그는 개혁의 위험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개혁가의 길을 피하지 읺았다. 아마 그 길 외에는 자신의 길이 없어서 였을 것이다. 외로운 현실주의적 개혁사상가였던 그는 그렇게 죽었다. 철두철미 현실주의자는 냉혹하다. 현실주의 없이는 이 땅 바닥에 발을 대지 못하기 때문에 실리를 추구하는 권력은 냉정함을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그 한기로 진저리를 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현실주의의 차거움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해서는 안된다. 역대의 군주들은 그 냉혹함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그 위에 부드러움을 덧씌워 두었다. 이것이 ‘내법외유’(內法外儒) 라는 처세술이다. 겉으로는 온화한 유가의 고품격처세론을 따르지만 그 속은 냉혹한 법가의 차거운 정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이것을 아주 쉽게 ‘무쇠주먹 위에는 부드러운 벨벳장갑을 껴야한다’ 라고 표현했다. 바로 부드러운 밸벳 같은 유가 사상의 밑에 숨어 있는 무쇠주먹이 바로 한비자의 사상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책이 우리를 감탄하게 하는 것은 불편한 철권의 효용만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정교하기 그지 없는 인간 심리에 대한 빈틈없는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례하나를 들어 한비자의 정수 한 쪽을 맛보기로 하자.

악양이라는 위나라 장수가 있었다. 그는 중산이라는 나라를 쳤다. 악양의 아들이 공교롭게 중산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중산의 군주가 그 아들을 잡아 죽이고 국물을 내 악양에게 보냈다. 악양은 막사에 앉아 그 아들의 고기국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 그릇을 다 마셨다. 그리고 중산을 쳐 큰 공을 세웠다. 위나라 군주가 ‘악양이 나를 위해 제 자식의 고기까지 먹었다’라고 그 충성심을 칭찬했다. 그러자 그를 모시고 있던 신하가 이렇게 말했다. “제 자식의 고기까지 먹었으니 무엇인들 먹지 못하겠습니까 ” 군주는 뜨끔해졌다. 악양은 중산과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위나라 군주는 악양이 세운 공에 상을 내렸으나 그를 두려워하여 마음으로부터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런가 하면 맹손이라는 사람이 사냥을 가서 새끼사슴 한 마리를 생포하여 진서파라고 하는 신하에게 끌고 오게했다. 어미사슴이 계속 따라오자 진서파는 새끼사슴을 풀어줘 버리고 말았다. 맹손이 돌아와 새끼 사슴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진서파에게 물었다. 진서파가 불쌍하여 놓아 주었다하자 맹손이 화가나서 진서파를 내쫒아 버렸다. 그러나 세 달이 지난다움 진서파를 불러 자식의 스승으로 삼았다. 한 사람이 쫓아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 자식을 가르치게 한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맹손이 말했다. “사슴 새끼에게도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졌는네, 차마 내 아이에게 못할 일을 하겠느냐” 악양은 공을 세웠으나 의심을 받았고, 진서파는 죄를 지었으나 신임을 얻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한비자는 "교묘한 속임수가 서투른 성실보다' 못함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은 복잡한 것이다. 듣는 사람이 고상한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인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말하게 되면 비루한 인물로 보이고, 상대가 이익을 탐하는데 고상한 명예에 대해 말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 겉으로는 고상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이익을 탐하는 사람에게 고상한 명분을 이야기 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지만 속으로는 멀리 할 것이며, 반대로 이런 이에게 두터운 이익을 얻을 방법을 알려 준다면 속으로는 따르겠지만 겉으로는 배척할 것이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상대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고 나서 그의 심리에 맞도록 설득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적 통찰을 바탕으로 저자는 한비자 속의 리더십의 요결을 7 가지로 정리해 두었다.

첫째, 리더는 용의 등에 올라탄다. 이 말은 권력의 심장부를 장악하거나 권력의 핵심을 설득하지 못하고는 근본적인 개혁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뜻이다.
둘째, 리더는 상황을 탓하지 않는다. 설명이 필요치 않다. 좋은 리더는 수많은 변명 뒤에 숨지 않는다는 뜻이다.
셋째, 리더는 부하의 충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 말은 특별하다. 그동안 유가의 처세론이 충성론에 치중한다면, 한비자의 리더십은 재능론에 접근한다. 즉 훌륭한 리더는 충성을 요구하는 대신 문제를 풀어 낼 재능을 가진 사람을 등용한다는 것이다. 재능을 가진 자가 그 재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리더가 좋은 리더라는 것이다. 한비자가 매우 현대적인 수요와 만나는 지점이다.
넷째, 리더는 자신과 싸워 이긴다. 리더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다. 원수와도 웃으며 악수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자기 통제에 능해야 한다.
다섯째, 리더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빌린다. 리더는 자신의 머리와 지혜만 믿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열린 마름으로 자신을 확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섯째, 리더는 암흑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리더는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길을 제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길을 개척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리더다.
일곱째, 리더는 마지막 까지 책임을 진다. 리더가 되는 길은 점점 더 고독해 지는 길이다. 오랜 과정에서 동지도 얻고 믿을 수 있는 부하와 추종자도 얻지만 리더의 책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것이라는 뜻이다.

‘한비자’는 법가적처세론에 기초하여 권력의 기술을 담아둔 어둡지만 탁월한 책이다. 한비자가 쓴 ‘한비자’라는 책의 서구적 등가물이 바로 마키아벨리의‘군주론’이다. 둘 다 힘을 가진 자가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 꼭 읽어 두어야 할 책들이다. 저자는 '한비자'라는 어렵고 복잡한 책을 읽어 소개하면서 앞 뒤 논리가 정연한 현대적 해석을 담아두었다. 웬만한 리더십 책 열 권의 값을 한다. 쉽게 읽히는 정교한 책이니 읽는 내내 즐길만하다.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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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08.06.27 22:19:28 *.253.124.54
'힘을 가진 자들은 올바른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는 말씀에 너무 공감합니다. 문득, 이 나라의 위정자분들이 많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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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15:36:13 *.212.217.154

이 책도 선생님의 추천으로 사 보고

오랫동안 묵혀두었습니다.


다시한번 꺼내어 읽어보아야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9.07.17 11:56:08 *.212.217.154

실제 '권력'은

이상만으로는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법치만으로도

민심의 파도를 받아들이기 힘들지요.


그래서 한비자의 처세술이 현실적인 방법중 하나일 것입니다.


강한 무쇠 주먹과 그 위의 벨벳 장갑.

삶을 살아가며 부딛치는 많은 순간을 혜쳐나갈

지혜로 받아들이기에도 좋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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