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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일 04시 27분 등록



   알프레드 코지프스키( Alfred Korzibski) 는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라는 힘찬 주장을 한다. 이것은 서양의 어의학이 노자의 동양 사상과 만나는 접점에서 이루어진 인식이다. "그래, 지도는 영토 그 자체는 아니지", 이런 마음이 든 사람은 노자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미상명)이라고 한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도를 설명하면 이미 도가 아니고 이름지어 부르게 되면 그것이 참다운 실재를 나타낼 수 없다. 지도는 실재 영토의 어떤 특성만을 나타내 준다. 마찬가지로 말로 설명된 도는 이미 진정한 도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부정확성과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부정확하고 모호한 것으로 실재를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도교의 현자인 장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멋지게 표현한다.

고기를 잡으려고 망을 치지만
고기를 잡고 나면 망을 잊는다.

토끼를 잡으려고 덫을 놓지만
토끼를 잡고나면 덫을 잊는다.

뜻을 전하려고 말을 하지만
뜻이 통한 다음에는 말을 잊는다

선종의 고수들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언어의 모자람을 경고한다. 한 사내가 절벽 틈에 자란 소나무 가지 하나를 입으로 물고 천길낭떠러지로 떨어지려는 몸을 지탱하고 있는 데, 위에서 사람 하나가 물어 온다. "여보시오 선(禪)이 무엇이요 ? " 입을 벌려 깨달은 바를 외치고 싶지만 입을 벌리는 순간 몸은 천길 벼랑으로 떨어져 내릴 것이다. 속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밷어 낼 수 없다. 선(禪)이란 무엇인가 ?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스스로 깨달을 뿐이다.

서양인들은 종종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지식과 추론에 대한 편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평가절하를 하곤 했다. 노자는 지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이 병이다" (知不知 上, 不知知 病, 71장) 아는 것이 병인 것이다. 이 노자의 사상에 딱 걸린 것이 바로 서양의 거의 동시대 인물 소크라테스다. 그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라고 말한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조차 '알아야하는' 지식 중독증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다시 노자는 말한다.

"학문을 닦으면 지식이나 욕구가 점점 더 늘어 나고,
도를 닦으면 지식이나 욕망이 점점 더 줄어든다"

지식은 추론하고 정량하고 분류하고 분석한다. 과학적 지식이 곧 객관적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이런 고전적 이상은 과학 그 자체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양자 역학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장한다.

과학적 추상화의 극치는 수학이다. 수학은 압축된 언어다. 그래서 피타고리스는 '만물은 수'라고 말한다. 수야말로 자연을 기술하는 언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개념체계를 더 엄밀하고 정확하게 규정할 수록 우리는 점점 더 실재에서 멀어진다. 이것이 아이러니다. 다시 지도와 영토와의 관계를 예로 써 보자. 일상의 언어는 그 부정확성 때문에 직관적 융통성에 의해 보완 된다. 마치 지도가 비록 정밀하다 하더라도 그 구부러지고 층이 진 지형은 융통성을 가진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엄격하면 이 융통성이 사라지고, 결국 실재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약간 모호하고 불분명하지만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개념들을 다시 사용하여 언어적 해석을 가하게 될 때 우리는 실재에 더욱 접근하게 된다. 수학적 모형은 엄밀하고 일관성이 있지만 기호들은 우리의 경험에 곧바로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언어는 부정확하지만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을 사용하여 표현 너머의 실재에 접근할 수 있다. 예를들어 시인들이 종종 가장 모호한 말로 핵심에 이르는 것을 보라. 이것이 동양의 불교와 도교가 실재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었다. 모호하기 짝이 없으나 핵심에 다가가 있다. 이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는 인생을 기가 막힌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 채워준다. 아무 연관 관계도 없던 것들이 불현듯 연결되고, 지루한 일상에 놀라운 감탄이 삶의 구석구석으로 밀려든다. 깨달음은 아무 것도 아닌 것들 속에 존재하고 그것은 내면의 등불이 되어 환한 등불을 밝힌다.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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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8 13:34:32 *.212.217.154

요즈음 읽고있는책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반갑습니다.

'The Social Animal' - 데이비드 브룩스의 책 입니다.

책에서는 우리가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의 부분은

사실 비 논리적이며 감성적인 영역인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것을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해주고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차이가 동양과 서양의 차이로 확대되면

서양의 논리적 사고와, 동양의 도가와 같은 사상과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대치되는 두 사상을 비교하는 맛을 즐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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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3 15:10:03 *.212.217.154

논리에 기초한 서양의 사상과

직관적 깨달음에 바탕한 동양의 그것.


음과 양의 대비와 조화 처럼,

이 둘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한다면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이 될 수 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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