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구본형

개인과

/

/

  • 구본형
  • 조회 수 7051
  • 댓글 수 7
  • 추천 수 0
2011년 9월 7일 18시 24분 등록

그날, 볕은 뜨거우나 바람이 좋았다.  우리는 보리 비빔밥을 먹었고, 빈대떡도 먹었고, 막걸리도 한 잔 했다. 그는 아직 총각이었기에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는지도 물어 보고, 함께 쓰는 책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 물었다.

 

"사람은 여러 곳에 걸려 넘어 집니다. 가지가지에 걸려 넘어지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4가지 덫에 걸려 넘어지면 좀 봐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것을 4F 라고 적어 보았습니다. Food, Fame, Fortune, Family가 그것인데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나는 4가지를 다 봐 줄만큼 관대한 사람은 아니다.   2가지는 나도 사람으로써 어찌할 수 없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다른 두 가지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자가 Fortune 이라고 표현한 그 말의 정체는 돈이다. 돈은 사람을 엎어지게 한다. 그러나 돈에 걸려 가서는 안되는 길을 갔다면, 그것이 아무리 유혹적이라도 그 사람은 사회적 리더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조심해야한다.  돈의 힘을 즐겨본 사람들은 돈으로 유혹한다. 돈의 유혹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도 악질적인 비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방의 대상이 깨끗하면 비방자들은 그 측면을 공격한다. 가족과 측근을 집요하게 후벼 판다. 그러면 반드시 누군가 걸려들게 되고, 그 악취는 도덕성이 강한 사람의 흰 옷에 붉은 피처럼 튀긴다. 입은 옷이 정결할 수록 그 피는 더욱 선명하다. 그리하여 부패한 사회일 수록  특히 엄격한 도덕성의 소유자들은 가장 확실한 악의적 비방의 표적이 되어왔던 것이다. 

 

 만약 명성과 명예에 걸려 넘어진 사람이 있다면, 자기 관리에 서투른 사람이다.  특히 명성은 주로 허영이 강한 사람들의 미덕이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고 삶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명성의 덫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조작된 가치를 만들어 획일화하려는 독재자 역시 왜곡된 가치에 대한 복종을  명예로 치환하여 강조한다.  스파르타의 여인들은 자식을 전쟁터로 떠나 보낼 때, "방패를 들고 오거나, 방패 위에 눕혀져 오라'가 말한다. 그렇게 교육받았다. 전장에서 항복은 없다. 싸워 이겨서 개선하던지 죽어 시체로 돌아오던지 둘 중의 하나이며, 이것이 군인의 명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시인 아르킬로코스는 이렇게 말한다.

 

"버려야 한다면 버려야겠지. 불쌍한 방패. 적들은 이 방패를 얻어서 좋고, 나는 목숨을 건져서 다행이다.

오냐, 잘가거라, 방패야. 나는 새것을 구하면 그 뿐이지"

 

 명성과 명예에 걸리지 않는 스스로 해방된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다. 자유로운 사람은 고독하다. 이겼다고 교만에 들뜨지 않고, 졌다고 빈집에 웅크리고 앉지도 않는다. 명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대중의 영웅을 추종하지 않는다. 비겁하게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삶을 사랑하고 운명에 맞섬으로써 스스로의 영웅이 된다.

 

만일 먹을 것이 없어 하루하루 생계가 어렵고, 아이를 학교 보내지 못할 만큼 빈한하고, 아픈 아내를 거두지 못할 만큼 쪼들릴 때, 자신도 싫어하는 비굴한 짓을 하고, 몇 년이 지나 생활이 나아진 다음 그때 그 일을 해서는 안되었을 일로 내내 후회한다 하더라도, 먹지 못해 저지른 행위를 들어 사람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비난한 사람의 잘못이다. 이미 장 발장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할지를 가르쳐 주는 고전적인 텍스트가 되었다. 한 사내가 배가 고파 빵 한 덩어리를 훔쳤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다. 나는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날 때부터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듯이,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그 사람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믿는다.

 

만일 가족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비난하기 어렵다.  못난 일임에 틀림없으나 부모가 자식에게 정의를 지킬 수는 없다. 이 대목에서 정의의 목소리가 너무 크면 그것은 왜곡된 사회다. 그래서 법이 칼날 같고 정의가 추상같은 사회는 살기 어려운 강퍅한 사회인 것이다. 공자가 법 대신 덕치를 주장한 이유이며, 노자와 장자가 인위를 거부한 이유인 것이다. 법이 없어도 정의가 살아 있다면 법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옳고 그름의 정의가 없어도 모두 다 행복하다면 그 정의를 무엇에 쓰겠는가 ? 부모가 자식을 위해 사회적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정의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 그렇기 때문이다. 부모는 몰락해도 자식에 대한 도움을 거부할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은 불쌍한 일이지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으로 불쌍한 일을 당하면, 아르킬로코스의 시 구절하나를 기억해야한다

.

'술통에서 포도주 한 잔을 가득 꺼내들고 갑판 난간에 서서 바람에 섞어 마셔야한다.

우리도 사람인데 어찌 맨 정신으로 이 꼴을 볼 수 있겠는가 ?'

IP *.128.229.55

프로필 이미지
나경
2011.09.08 23:27:16 *.182.212.2
아!  모처럼 들러 가슴에 탁~ 와 닿는 글을 읽고 가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이철민
2011.09.09 10:05:57 *.236.7.113
법과 정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 없어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아주 소수일뿐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언제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모두의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나 봅니다.

사부님, 또 한번의 가르침 감사합니다. ^^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1.09.09 10:09:32 *.30.254.21
바람에 섞어 마시는 포도주 한잔..
그것이로군요..

세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집에서
휘영청 밝은 추석달을 바라보시는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사부님..마지막의 시..
끝내줍니다...emoticon.

프로필 이미지
황진규
2011.09.16 18:35:07 *.87.61.230
제가 읽은 소장님 글 중 시대의식을 표현하는 첫번째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지고 계신 영향력만큼 조금만 더 사회에 대한 문제점 환기를 요청하는 것은 주제 넘는 짓이겠지요?^^;;

잘 읽고 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달꽃
2011.10.20 14:45:52 *.110.188.226
부모는 몰락해도 자식에 대한 도움은 거부할 수없다"  라는 문장이 가슴에 꽂힙니다.  저의 어머닌 오늘아침에도 올라와 "너가 좋아하는 고추밀가루무침을 못해 줘 대신 해먹으라고 찜냄비를 아들편에 보냈는데 못해줘 미안하구나"  자신을 원망하더군요. 엄마의 사랑은 어디까지 일까요? 그런 애정이 나에겐 짜증으로 왔는데 선생님 글을 읽으니 못났고 후회됩니다.참사랑을 볼 줄 모르느 냉정함이.  저녁 때 돌아 가면" 엄마! 고추찜 안먹어도 정말 행복하고 감사해요" .라고 안아드리며  엄마 좋아 하는 갈치조림을 해서 내일 저녁엔  깜짝 방문을 할까봐요. 

진정한 자식을 위함은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6.12.08 11:37:34 *.212.217.154

요즘 공부중인 '경제'의 시각과 프래임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사회적인 문제의 핵심은 결국 보편적'복지'에 닿아있다.

이런 복지는 정부의 '정책'으로써 사회에 발휘된다.

그러한 '정책'은 국회에서 행해지는 '정치'로써 결정된다.

'경제'와 '정치'가 결코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치의 핵심인 국회의사당과 

경제의 핵심시설들이

여의도에 함께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들이 결코 정치를 외면하고 혐호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프로필 이미지
2017.11.22 10:42:26 *.139.108.199

밥, 명성, 운, 가족.


밥은 돈이고

명성은 소문과 같겠지요,

운은 하늘이고

가족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것과

어찌할 수 없는것들이

뒤섞여 있지만,

모든 씨앗은 스스로가 뿌린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씨앗을 뿌릴수 있기위해

오늘도 느리게 걸어갑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3 젊음 한창 때 [16] 구본형 2011.11.23 37168
562 젊음의 경영 [3] 구본형 2011.11.21 7415
561 헤파이스토스,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아내로 얻은 추남-----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 12 file [3] 구본형 2011.11.09 11324
560 꿈벗 가을 소풍기 [11] 구본형 2011.11.03 6430
559 아가멤논의 죽음, 그리고 오레스테스의 복수 -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 11 file [2] 구본형 2011.11.01 21223
558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고대 최고의 훈남과 부덕(婦德)의 여인 -나의 그리스신화 독법 10 file [2] [1] 구본형 2011.10.25 12099
557 아킬레우스, 노래하소서 여신이시여 나의 분노를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 9 file [2] 구본형 2011.10.20 11839
556 안티고네, 비극과 함께 하는 불멸의 여인 - 나의그리스 신화 독법 8 file [3] 구본형 2011.10.14 355087
555 오이디푸스, 가장 비참하고 장엄한 자 - 나의 그리스 신화 읽기 8 file [7] [2] 구본형 2011.10.10 16288
554 은궁의 신 아폴론-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 7 file [2] 구본형 2011.10.06 11967
553 아스클레피오스 -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 6 [2] 구본형 2011.09.30 6597
552 테세우스, 영광과 실수-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 5 file [2] 구본형 2011.09.28 7695
551 테세우스, 영광과 실수-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 5 file [2] [2] 구본형 2011.09.26 8318
550 디오니소스, 죽어야 다시 살아나니 -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4 file [2] [1] 구본형 2011.09.24 12664
549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 3 - 다이달로스,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 ? [2] [9] 구본형 2011.09.23 7780
548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2 - 아리아드네, 미망과 혼돈에서 벗어나는 실 끈 [3] 구본형 2011.09.22 174176
547 나의 그리스 신화 독법1 - 미노스 [3] 구본형 2011.09.21 10554
546 빈공간은 왜 필요한가 ? - 데모크리토스의 생각, 생각탐험 27 [3] 구본형 2011.09.12 8097
» 정의란 무엇인가 ? - 비빔밥 버전 [7] 구본형 2011.09.07 7051
544 시도하라,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 처럼 [10] 구본형 2011.08.26 8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