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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2일 07시 21분 등록

그는 모든 것에 대하여 글을 썼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당시 알려진 세계의 곳곳을 열심히 돌아 다녔다. 인도의 나체 수행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에티오피아 까지 다녀왔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화학을 배우고 수학과 천문학의 기본 개념을 배워왔다. 그 역시 다른 그리스의 현자들처럼 세계를 훑고 지나는 방랑여행을 통해 많은 신기한 생각들을 낚아내고 창조해 냈던 것이다. 관심이 다양하여 방대한 저서를 남겼으며 백과전서처럼 모든 분야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온전하게 전해지는 저서는 한 권도 없다. 역시 방대한 저서를 남긴 플라톤의 책이 한 권도 빠짐없이 남아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데모크리토스에 대하여 플라톤은 분명히 잘 알고 있었을테지만 그에 대하여 플라톤은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리스 철학자 열전'을 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플라톤이 데모크리토스를 너무 싫어해서 그의 모든 저작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던 기원전 460년 경, 그리스 북부의 식민지였던 트라키아의 압데라에서 태어난 그가 죽고 나서 700년 정도 지난 서기 3세기에 이르러서는 그의 모든 저서는 이미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더우기 유물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의 책은 기독교 세계를 관통해 오는 동안 특별히 가혹하게 취급되면서 자취를 감추어 가게 되었다. 이제는 그저 파편적인 자료들 밖에는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내용은 다 사라졌으나 그가 쓴 글들의 제목은 남아 있다. 수학에 대한 글을 썼는데, 당시 뛰어난 수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는 그의 논문이 매우 훌륭했다고 증언했다한다. 생물학에 대해서도 글을 썼는데, 그 속에는 생물을 직접 해부해 본 사람의 경험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윤리에 대해서도 글을 남기고, 문헌학에 대해서도, 문학에 대해서도, 음악에 대해서도 글을 남겼으며 특히 자연의 체계에 관심이 많았던 것을 보면 정말 모든 것에 대하여 왕성한 호기심으로 글을 써 댄 백과전서적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살기도 오래 살았다. 아흔이 넘어 까지 살아 있었기 때문에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백 살도 더 넘게 살았다고 허풍을 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신선처럼 사라졌다.

데모크리토스가 발전시킨 가장 위대한 생각은 원자라는 개념이다.  그는 '원자란 견고하여 분리할 수 없는 입자'라고 정의했다. 그는 자연이란 원초적으로 '원자와 빈자리'로 이루어 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물질이란 꽉 차있는 것이라는 사고를 엎어버린 것이다.   원자가 운동을 하려면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아마도 평평한 지표에 안개가 진하게 끼는 현상이나 햇빛 속 먼지를 관찰하다가 암시를 받았지도 모른다. 현대에 이르러 졸리오 퀴리가 "물질의 내부에는 텅빈 거대한 공간이 있으며, 물질을 이루는 입자의 크기를 감안할 때, 이 같은 빈자리들은 우주의 항성간의 공백에 비교할 수 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데모크리토스의 위대성은 입증되었다. 당시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원자라는 지극히 미소한 입자의 세계에 대하여 오직 두뇌 하나만을 가지고 직관적으로 상상했다. 원자들은 거대한 공간 안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왜 움직이는 지는 모른다. 아무런 목적이 없다.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러다가 아무 방향에서 서로 충돌한다. 그에게 자연이란 '아무 방향에서나 마구 부딪혀 튀어 오르는 원자'들이었다. 서로 스치고 부딪히고 충돌하다가 같은 형태를 가진 원자들 끼리 서로 얽혀 무더기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것이 눈에 보이는 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는 천지창조의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햇볕 속에 부유하는 먼지들처럼 원자의 종류와 형태는 무수하다. 그것들이 그저 목적 없이 떠돌다 부딪히는데 그 중에서 무거운 원자 들이 모여 덩어리를 이룬 것이 대지이며, 그 대지의 내부에서 가장 가벼운 원자 덩어리들이 물이되어 대지의 움푹 파진 곳에 깃들어 있는 것이 바로 바다이다. 그리고 가장 가벼운 원자들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생명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생명은 물질 안에 존재하며 불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자들은 아주 작고 둥글고 매끈한데 굉장한 이동성을 가지고 있다. 생명은 이 불의 원자들이 충분히 있는 한 유지된다. 대기는 수많은 불의 원자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체는 대기를 호흡함으로써 죽을 때 까지 생명을 유지한다.

생명체는 원자들의 결합체에 불과하다. '물과 진흙 속에서 태어 난 우연의 산물'이었던 인간들은 오랜 진화를 거쳐 지금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도 없고, 왜 태어났는지 목적도 없다. 죽음 이후의 삶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데모클리토스는 신앙이란,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진 허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신은 인간 보다 더 미세한 입자들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불멸 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 보다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신들은 인간에 대하여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온갖 무절제와 방탕으로 몸을 망가뜨려 놓고 신에게 건강을 갈구하는 자들을 심히 경멸했다. 인간이 외부 세계를 어떻게 파악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일관성을 유지했다. 예를 들어 청각과 관련해서는 소리를 내는 대상으로부터 퍼져오는 원자들의 요동과 흐름이 우리의 귀에 닿기 때문에 귀는 소리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시각도 마찬가지다. 외부 대상이 눈을 통해 우리의 뇌로 들어오는 소위 시뮬라르크라는 원자들의 이미지에 의해 파악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원자라는 개념으로 어떻게든 모든 것을 해명해 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탁월하지만 이런 천진한 생각들은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하다가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 이 천재적인 철학자는 고뇌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자연현상을 이해할 때, 만족할 수 있는 틀을 터득하게 되면, '왕관을 소유하는 것 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고귀한 연구자였다. 그러다가 스스로 고안해 낸 체계가 모순에 빠져 붕괴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딱한 이성 같으니, 우리에게 감각이라는 증거의 수단을 몰수 하더니, 이제는 우리마저 무너뜨리는구나. 너의 승리는 곧 너의 패배이리니"

물질을 사랑하고 우리의 영혼조차 물질로 만들어 졌다고 감히 주장하는 데모크리토스는 고대에 가장 핍박 받는 학자 중의 하나였다. 기독교 세계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로마와 중세의 긴 어둠 속에서 그는 '악마의 앞잡이'였을 뿐이다. 그것이 그의 모든 저작이 사라진 까닭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학자로서의 명성과 성과물들을 다 잃었다. 그 역시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한 선지자 중 하나였다.

데모크리토스는 고대 과학의 상징이었다. 그의 몰락이후 고대 과학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과학은 목적론을 중시하는 신의 체계 밖에는 없는 중세를 관통하는 긴 세월 동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모든 설명은 그리스도교 신학 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에도 인간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모두 잃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성의 힘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그리스 과학이 멈추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 가까이 멈추어 섰던 과학이라는 시계는 다시 살아나 째깍이기 시작했다. 위대한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IP *.128.229.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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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2 07:37:11 *.12.196.151
우와.. 고대에 원자라는 개념을 깨치다니요.. 놀라운 인물입니다..

이 아침, 스승님의 글을 통해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인물을 만나봅니다.
우주의 출렁이는 물결에 맞춰 춤을 추자면 늘 빈공간이 있어야 할것이고,
우주의 진화는 때론 2천년의 세월을 두고도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제 조금씩 배워갑니다.

사부님. 저에게서 떠나, 저의 르네상스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그리 노력하겠습니다.
송편 마니마니 드시고, 더욱 건강한 가을되시기 바랍니다.
이 가을에도 늘 행복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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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6 16:46:32 *.212.217.154

목적없는 우주,

빈 공간이 없이는 물질도 없는 역설.

시대를 너무나 앞서갔기에 잊혀진 과학자

시대를 너무 앞서갈 것인가,

적당히 발 맞추어 갈 것인가?

그 적절한 거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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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1 16:03:20 *.212.217.154

비록 스스로의 이상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기를.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노력을 알아줄 때가

반드시 올 것임을 믿을것,

그 믿음을 지켜갈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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