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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일 21시 10분 등록

아가멤논, 수없이 많은 재앙의 저주를 술잔에 채워두고

펠로폰네소스반도에 위치한 미케네와 아르고스의 왕인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귀국했다. 그리스 군대의 총사령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왕 중의 왕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는 용장 아킬레우스처럼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힘센 장수가 아니다. 그는 정치적 리더였다. 어떤 리더였을까 ?

아가멤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3개의 대표적인 장면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아울리스에서 자신의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죽음으로 보낼 때의 모습이다. 이미 자세히 묘사했듯이 그는 우유부단하고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휘둘리는 인간이다. 부조리한 신탁을 거부해야할 곳에서 이것을 할 수없이 받아들이고, 딸을 지키기 위해 당당해야할 곳에서 사령관의 명예와 의무 속으로 숨어 버렸다. 어머니와 딸, 두 여인의 애원에 대하여 냉정하게 거부함으로써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 명예를 존중하나 사랑을 저버렸고, 왕의 체면을 지키느라 진실을 버렸다. 그는 비겁한 사람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난폭하고 비정한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복종해 버렸다. 그 비정함을 용기로 포장했다. 아마 그는 그리스 전체를 구하기 위한 대의를 위하여 사사로운 관계, 즉 딸을 저버려야하는 비정한 아버지 역할을 했노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리하여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두 번째 장면은 바로 '일리아드'의 도입부분에서 보이는 그의 인품이다. 그리스 최고의 용장인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화가 나 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아폴론 신전 사제인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를 납치하여 제 여인으로 삼자 온 그리스 진영에 역병이 돌아 병사들이 쓰러져 죽어갔기 때문이다. 사제는 몸값을 들고 아가멤논에게 찾아가 딸을 풀어 주기를 요청했지만 아가멤논은 거절했다. 그러자 사제는 은궁(銀弓)의 신 아폴론에게 자신의 모멸을 화살을 쏘아 갚아 주기를 기도했다. 아폴론은 그의 기도를 듣고 활과 화살통을 어깨에 메고 올림포스 산의 꼭대기에서 달려 내려갔다. 움직일 때 마다 성난 어깨에서 화살들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아흐레 동안 신의 화살은 그리스군의 병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은빛 화살은 전염병이 되어 병사들을 휩씁었다. 날마다 시신을 태우는 장작이 쉼 없이 타올랐다. 예언자 칼카스는 이 역병의 원인이 아폴론의 진노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아가멤논은 할 수 없이 탈취하여 제 여인으로 삼은 크리세이스를 놓아보낸다. 그러나 그 대신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대신 가져가겠다고 선언한다. '일리아드'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포이보스 아폴론께서 나에게서 크리세이스를 빼앗아 가시니

나는 그녀를 내 배에 태워 나의 전우들과 함께 보낼 것이오

그리고서 내 몸소 그대의 막사로 가 그대의 명예의 선물인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데려갈 것이오. 그러면 내가 그대보다

얼마나 더 위대한지 잘 알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도 앞으로 감히

내게 대등한 언어를 쓰거나 맞설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오" (주 * )

아가멤논의 말을 듣고, 아킬레우스는 분노하여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려고 했다. 이때 아테나가 오직 아킬레우스에게만 보이게 나타나, 손을 막으며 말로 하라고 타이른다. 그는 아가멤논에게 '주정뱅이에 개처럼 천박하고 사슴의 심장처럼 겁 많은 자'라고 비웃는다. 아테나 여신의 충고에 따라 아킬레우스는 결국 브리세이스를 양보하지만 더 이상 트로이와의 싸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아킬레우스가 빠지자 그리스 전력은 급격히 위축되고 전황은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아가멤논은 나중에 아킬레우스에게 브리세이스를 돌려주고 화해하게 된다.

이 대목에 이르러 아가멤논은 전혀 리더답지 않다. 그저 전리품을 나누어 가진 조폭들의 권위를 잃은 보스이며, 제 몫을 빼앗기자 부하의 몫을 제 것으로 돌려 챙기려다 혼쭐이 난 품위 없는 푼수처럼 보인다.

세 번 째 대목은 그의 죽음의 장면이다. 그는 트로이의 함락과 더불어 카산드라를 전리품으로 얻어 의기양양하게 아르고스의 왕궁으로 귀환한다.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보랏빛 주단을 깔아 환영한다. 보랏빛 주단은 신들의 색깔이다. 그는 처음 그 주단 위를 걸어가기를 거절했다. 오만함이 신들의 노여움을 살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비가 '공훈을 세운 사람의 마땅한 권리'라고 우기자 아가멤논은 신발을 벗고 카산드라와 함께 주단 위를 걸어 들어온다. 10년 전 그는 아울리스에서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 죽이고, 이제는 적국 트로이의 공주를 데리고 개선한 것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가슴은 증오로 가득하다. 승리에 우쭐하여 신들이나 밝고 다니는 보라색 주단 위를 짐짓 거부하면서도 거절하지 않고 뽐내며 걷고 있는 아가멤논에 대한 살의는 깊어간다. 목욕탕에서 긴 전쟁의 피로를 씼고 있을 때, 클리타임네스트의 정부(情夫)인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에게 그물을 씌워 꼼짝 못하게 하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칼로 그를 두 번 찔러 쓰러뜨린다. 쓰러진 후 다시 한 번 내리쳐 죽게 한다. 카산드라 역시 함께 죽인다. 장로들이 회의하는 도중 피범벅이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나타난다. 손에 피 묻은 칼을 든 채, 그녀는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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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상처에서 피가 몹시 흘러 새빨간 피줄기가 검붉게 내 몸을 물들이는데, 나는 그게 어찌나 기쁜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자비로운 비를 받아 기뻐하는 통통한 껍질 속의 보리알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기뻐하세요. 기뻐할 수 있다면 말이예요. 나로써는 큰 자랑이니까요....이 사람은 수없이 많은 재앙의 저주를 술잔에 채워두고, 귀국해서 자신이 마셔 버렸으니까" (주 **)

이렇게 하여 아가멤논은 긴 전쟁으로부터 개선하여 집에 온 그날 밤,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의해 목욕탕에서 살해 되었다. 호메로스가 그리스인들의 왕 중의 왕이라고 부른 아가멤논은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지는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시인은 노래한다.

하고 싶기만 하고

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니지 못한 자

운명에 쉽게 굴복하면서

그 두려움에 대한 항복을 용기라 부르는 자,

비겁한 자는 자신의 왕이 되지 못하는 법

속으로는 떨면서 부러질 듯 단호한 자는 어리석으니

어리석은 자의 집착만한 재앙은 없다

속은 기둥처럼 강하고 겉은 머릿결 같이 부드러운 사람만이

남과 나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나니

무덤까지 존경이 따라가리라

(주*)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제 1 장 '역병-아킬레우스'의 분노 중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 아이스킬로스의 삼부작 비극 '오레스테이아' 중 제 1 부작 '아가멤논' 속의 구절이다. 여기서는 칼로 찔러 죽이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속에서는 양날을 가진 청동 도끼로 쳐 죽이는 것으로 나온다.

엘렉트라, 불행에 불행을 더하는 여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가멤논 사이에는 세 딸과 한 아들이 있었다. 큰 딸 이피게네이아는 아울리스에서 제물로 바쳐졌다. 둘째 딸 엘렉트라는 감정이 격하고 의지가 굳은 여인이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남편인 아가멤논을 죽인 후, 엘렉트라는 아직 어린아이였던 동생 오레스테스를 믿을 수 있는 사람 손에 맡겨 다른 나라로 도망치게 했다. 어머니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차마 아들인 오레스테스를 죽이지 못하겠지만 아이기스토스라면 어린 아이지만 커서 후환 덩어리인 오레스테스를 죽여버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딸 크리소테미스는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하며 부드럽다. 그녀는 언니인 엘렉트라가 이를 갈면서 복수를 생각할 때, 옆에서 달래 주고 복수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려한다. 그렇게 저주를 퍼붓다가는 동굴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엘렉트라는 아버지 아가멤논의 죽음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그리하여 늘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생각해보세요, 제 집에서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들에게 신세를 져야하는 나의 나날을 생각해 보세요. 아이기스토스가 아버지의 왕좌에, 아버지의 옷을 입고 앉아 있고, 무엇보다 심한 것은 그 살인자가 아버지의 잠자리에 든단 말이지요. 살인자와 함께 잠든 여인을 어머니라 불어야하는 내 생활을.... 그 저주할 사내와 지낼만큼 타락한 어머니, 자기가 하는 일에 의기양양하여 아버지를 꾀어서 죽인 그 날을 택해 노래와 춤을 벌리고 신에게 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그 꼴을 집안에서 보고 울다 지치지만... 후련하게 울 수도 없는 나의 생활..." (주*)

팔팔한 엘렉트라는 어머니인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눈엣가시였다. 둘은 늘 싸웠다. 클림타임네스트라는 늘 이렇게 엘렉트라에게 악담을 퍼 붓곤 했다.

" 이 가증스러운 년아, 아버지를 여윈게 너 뿐이더냐. 이 세상에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가 너 하나 뿐 인 줄 아느냐 ? 너같은 것에게는 재앙이나 내려라. 제발 지하의 신들이 너를 지금의 슬픔에서 구해내지 말았으면..."

그녀는 멀리 떠나 있는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죽음과 복수를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기 시켰다. 스무살이 되면 궁전으로 되돌아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징벌해 주기를 매일 기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노인이 찾아와 오레스테스가 죽었다고 전한다. 엘렉트라는 가슴이 무너져 내려 절망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 역시 자식이 죽은 슬픔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이 죽음으로써 후환이 사라졌음에 또한 안도한다. 그녀는 이 이중적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 오, 제우스시여, 이 일을 어찌합니까 ? 다행입니까 ? 무섭기는 하지만 좋은 일일까요 ? 자기의 불행으로 자기가 살아나다니, 아,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

엘렉트라는 원수를 갚아 줄 유일한 혈육인 오레스테스의 죽음 소식 앞에서 무너지지만 다시 일어나다. 그리고 여동생 크리소테미스에게 이젠 둘이 원수를 갚자고 말한다. 그러자 크리소테미스는 두려움에 싸여 도망친다. 엘렉트라는 혼자라고 원수를 갚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러나 오레스테스가 정말 죽은 것은 아니었다. 화장 뼈를 담은 단지를 들고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여 아이기스토스에게 소리없이 접근하기 위한 계략이었다. 오레스테스가 자신의 정체를 알리게 되자, 엘렉트라는 동생을 안고 기쁨 속에서 춤을 춘다. 엘레트라와 오레스테스는 원수를 갚기 전에 아버지의 무덤에 찾아가 복수의 전의를 북돋는 의식을 행한다.

오레스테스 아버지, 우리편에게 부디 힘을 주소서

엘렉트라 나도 함께 눈물에 젖어 목소리를 모아 아버지를 부릅니다.

오레스테스 아버지, 왕의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죽음을 당하신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게 왕가를 다스릴 힘을 주소서

엘렉트라 저도 부탁하오니 아이기스토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소서

오레스테스 오 대지여, 지금부터 우리의 투쟁을 볼 수 있도록 아버지를 잠시 이 세상에 보 내 주소서

엘렉트라 오, 저승의 여왕이시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소서

오레스테스 목욕탕을 잊지 마소서. 거기서 아버지가 살해 되셨습니다.

엘렉트라 그 투망을 떠 올려 주소서. 그것에 어떻게 걸렸는가를....

........

오레스테스 우리에게 '정의'를 보내주소서. 아니 그것보다 그들이 한 흉계와 똑 같은

수법을 쓰게 하소서. 그때의 패배를 잊으시고 승리로써 보복하기를 바라신다면.

엘렉트라 내가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것도 들어 주소서. 여식인 나에게도 연민의 정을 베풀어 일족의 후손을 멸하지 마시기를. 그러시면 몸은 저승에 가셨어도 가문의 생명은 지속될 것입니다.

이 기도 후에 오레스테스는 절친한 친구 필라데스와 함께 궁전 안으로 들어가 복수한다. 나중에 엘렉트라는 변함없는 우정의 필라데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자 아이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여아가 아버지에 대하여 가지는 강한 소유욕적인 애정을 칼 융은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엘렉트라의 이야기를 가지고 1막 짜리 오페라를 만들기도 했다. 이 오페라는 1909년 드레스덴의 작센에 있는 궁전 음악당에서 초연되었다.

시인은 노래한다.

마음을 어둡게 가지면

싸움이 싸움을 낳고,

당하지 않아도 될 불행을 당하는 법 ( 주**)

끝없이 슬퍼하고

언제 까지나 괴로움이 그칠 날이 없구나

긴 머리털을 잘라 아버지의 무덤에 바치고

술을 부어 떠나간 영혼이 쉬기를 바란다

피의 앙갚음을 갚는 자가 없다면

부끄러움도 신을 두려워하는 하는 사람도 없으리니 (주 ***)

마음을 괴롭혀 불행에 불행을 더하는구나

(주*)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 중에서 엘렉트라가 한 말이다

(주**)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 중에서 코러스가 부른 노래말이다

(주 *** )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 중에서 엘렉트라가 코러스에게 대답한 말이다

오레스테스, 어머니의 피를 흘리게 한 죄를 용서 받다

오레스테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장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내 중의 하나다. 가장 비극적인 사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후에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 세상을 떠도는 오이디푸스라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이고 복수의 여신들에게 쫒기는 오레스테스는 두 번 째 비극남쯤 될 것이다. 운명이 이끄는 비극적 인생을 살다간 신화속의 주인공들은 많다. 그러나 스스로 죄임을 알고 그 죄를 의무로 짊어지고 그 끔찍한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도록 기계장치에 걸려든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오레스테스는 평생 어머니를 죽인 죄악에 시달려야했다. 죽이기 전에는 죽여야되는 책임에 시달렸고, 죽인 후에는 살모(殺母)의 죄의식에 시달렸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오자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전하는 나그네로 위장하여 친구 필라데스와 함께 궁전 안으로 잠입해 들어간다. 두 사람은 먼저 아이기스토스를 노린다.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중요한 전갈을 가지고 온 두 나그네의 소식을 듣기 위하여 아이기스토스가 호위병도 없이 시동 하나만 데리고 나타난다. 그는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 소식을 전한 두 나그네가 오레스테스와 그 친구인지 모르는 아이기스토스는 기쁜 소식을 가져온 그들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러자 두 사람은 힘을 합하여 아이기스토스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찾아간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불길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녀는 뱀을 낳았는데 그 뱀을 아기처럼 포대기에 싸서 자신의 젖을 먹였다. 그 뱀이 젖을 빨자 젖 속에서 핏덩이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기겁을 해서 깨어났다. 사방에 불을 밝히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했다. 모든 고뇌를 잊기 위해서였다. 그때 비명이 들리고 시동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클리타임네스트라  왜그러느냐 ? 왜 그리 소리를 지르느냐? 궁성 안에서

시동 살아있는 분을 죽은 사람이 죽였습니다

클리탐이네스트라 드디어 왔구나. 알았다 그 수수께끼 같은 말뜻을. 계략으로 죽였구나. 우리가 전에 계략으로 죽였듯이. 가서 용사를 죽인 손도끼를 가져오너 라. 한시라도 빨리 이기느냐 지느냐를 결판 짓겠다. 내 몸이 이런 지경 에 빠진 이상 더 이상 피하지는 않으리라

그때 문이 갑자기 열리고, 안에서 오레스테스와 발밑에 쓰러진 아이기스토스가 발길에 차여 밀려들어온다. 손에 칼을 든 필라데스도 함께 들이닥친다. 시동은 도끼를 가지러 가다가 기겁을 하여 달아난다.

오레스테스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땅에 엎드려 가슴의 옷을 찢고 젖가슴을 들이댄다)

클리타임네스트라 기다려라. 오레스테스. 이것을 보아라 내 아들아, 이 젖에 매달려 잠들 면서 이빨 없는 잇몸으로 맛있는 젖을 빨지 않았느냐? "

오레스테스는 이 순간 망설인다. 그러나 그는 결국 어머니를 죽인다. 아들은 '아버지의 운명이 어머니를 죽게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낳아 기른 것이 독사였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오레스테스는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으니, 받아서는 안될 벌을 받으라고'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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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추격을 받자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의 신전으로 반미치광이가 되어 피신해 온다. 그들은 육친의 피를 흘리게 자들을 표적으로 지금 까지 한 번도 그 표적을 놓친 적이 없는 저주의 추격자들이다. 아폴로 신전의 성스러운 돌 옴파로스 (주* ) 옆에 죄로 더렵혀진 그는 손에 아직도 핏방울이 떨어지는 땅에서 갓 뽑아낸 듯한 칼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올리브 우듬지 가지를 들고 똑바로 설 수도 없이 쓰러지듯 엎어져 있다. 그의 앞에는 검은 옷을 걸친 흉측한 노파들이 졸고 있다. 바로 에리니에스들과 그들에 의해 쫒기는 오레스테스의 모습이다. 에리니에스의 몰골은 끔찍하다. 눈에서는 흉악한 독즙이 뚝뚝 떨어진다. 아폴론은 흉측한 복수의 여신들을 잠시 졸게 했다. 그리고 오레스테스에게 아테네로 도주하여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얻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폴론은 이렇게 덧붙였다.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피하도록 해라. 저 악을 위해 태어난 흉물들은 끝까지 너를 쫒을 것이다. 네가 헤매는 곳이라면 어디든, 바다를 건너 섬으로 가더라도 너를 추격할 것이다. 팔라스 아테나의 도성, 아테네로 가라. 도착하여 무릎을 꿇고 여신의 상 앞에 엎드려라. 그러면 너는 재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고난으로부터 오래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강구해 줄 것이다. 가거라. 네 어미를 죽이라고 설득한 것은 바로 나니까. 멀리 떠나도 너를 보호할 것이다"

오레스테스가 일어나 떠나자, 복수의 여신들도 잠에서 깨어 사냥개를 모는 사냥꾼처럼 미친듯이 소리를 치며 그를 쫒는다. 그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에 있는 아테나의 신전으로 달려가 여신상의 발을 붙들고 애원한다. 복수의 여신들은 그 주위를 돌며 저주의 노래를 부른다.

"악기도 없이 영혼을 죄어 생명을 말려버리는 노래를 부르자. 집집마다 뒤 엎는 것이 우리의 임무, 군신 아레스가 가족을 죽일 때도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그를 뒤쫓았지 (주 **) 제 아무리 강해도 잡아 죽인다. 새로운 피를 위하여"

아테나는 12명의 재판관을 선정했다. 아폴론이 오레스테스의 변론을 맡았다. 복수의 여신들이 죄인을 두둔하는 아폴론에게 '오레스테스가 흘린 피는 제 어미의 피임을 강조한다. 그러자 아폴론이 답한다.

"어미란 자식의 혈친이 아니라 태내에 새로 깃든 씨를 기르는데 불과하다. 자식의 본질은 아비이며 어미는 오직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듯 그 어린 싹을 보육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치이기 때문에 어미가 없이도 아비는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로 그 아름다운 사례가 이 아테나 여신이다. 여신은 일찍이 어두운 태내에서 양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러나 그 어떤 신도 이처럼 아름다운 신을 키우지 못했다" (주***)

아테나는 12명의 판관에게 판결을 내리게 했다. 만일 찬반이 동수가 나오면 아테나가 자신도 판결에 한 표를 던지겠다 공언을 하였다. 판관들은 단지에 돌을 던져넣어 표결했다. 각자 6명 씩 찬반이 동수를 이루었다. 아테나는 오레스테스의 무죄에 한 표를 던져 넣음으로써 영원히 모친을 죽인 죄를 사해 주었다. 여신은 자신이 왜 오레스테스의 무죄에 표를 던지게 되었는지 해명한다.

"나는 어머니가 없으므로 모든 일에서 남성의 편을 들겠다. 오레스테스는 무죄다"

그러자 복수의 여신들이 저주를 퍼붓기 시작한다.

"이 몹쓸 젊은 신들, 예부터 우리의 권리를 잘도 짓밟는구나. 이토록 비참하게 모욕을 받는 이상 우리도 그 원한을 갚고야 말리라. 이 땅에 심장에서 품어 나오는 독소를 뿌리리라. 이 고장의 생식력을 박탁하고 모든 생명의 종자를 말리고 말리라. 사람을 해치는 오염이 나라에 번지게 하리라. 오래된 율법을 지키는 우리들이 이 고장에서 이런 멸시를 받을 줄이야. 이런 봉변이 있나"

그러자 아테나는 이 복수의 여신들을 달래기 시작한다. 별도로 평화롭게 거주할 수 있는 땅을 떼어주고, 사람들이 그 신전에 와서 경배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제는 저주 대신 자비와 축복을 내리는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대지로 부터의 은총, 하늘로부터 화창한 날 바람이 불어오도록 하고, 가축들의 풍요로움이 항상 찾아오게 하여, 인간을 편안하게 하고 그대신 불경한 자들을 징벌하고, 모든 옳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축복을 맡게 했다.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들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그후부터 이들은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라는 이름 대신, 자비의 여신 에우메니데스 Eumenides라고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 오이디푸스가 이들이 사는 콜로노스의 숲에 이르러, 그 동안의 모든 고행을 끝내고 이 자비의 여신들의 축복을 얻게 되기도 한다.

시인은 노래한다

어찌해야하느냐, 이 일을

어린 시절 그곳에 매달려 이빨 없는 입으로 젖을 빨며

그지없이 행복했던 황금의 시절

그 하얀 젖가슴을 찔러야 하는가

그물에 걸려 제 아내의 손에 죽은 아비의 원한을 갚아야하는가

추악한 복수의 흉물들, 밤낮으로 쫒아와

반은 미쳐 여신의 신상 앞에 쓰러졌구나

한 표의 차이로 법의 용서를 얻었으나

마음은 죄로 녹아내리니

엎드려 빌고 비니 죄를 사하여 벌을 거두소서

(주*) 옴파로스는 '우주의 배꼽'이라는 뜻이다. 델포이 신전 가운데 이 돌이 놓여있다. 아폴론 신전이 우주의 중심임을 표시하였다.

(주**) 아테나 여신의 유명한 처녀 신궁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은 북서로 낮아지면서 아레오파고스 Areopagos의 작은 언덕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군신 아레스가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를 죽인 후 재판을 받던 곳이다. 그래서 아레오파고스, 즉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할리로티오스는 아레스의 딸 아키페를 겁탈하였는데, 거칠고 난폭한 아레스가 단숨에 그를 때려 죽이고 말았다. 아들을 잃은 포세이돈이 제우스에게 재판을 요청하자, 그는 올림포스의 12신들에게 판결을 하도록 했다. 아레스는 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후 이곳은 아테네의 최고 법정이 되었다. 오레스테스가 이곳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 이고, 재판관이 12명인 것도 이 유래에 따른 것이다.

(주 ***)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를 쪼개고 그 속에서 완전 무장을 한 채, 소리를 지르며 튀쳐 나왔다. 제우스가 가장 믿고 아끼는 딸이다. 아폴론의 이 변론은 아이스킬로스가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쓰던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사회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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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1 21:10:48 *.150.248.46

신화 읽기는 쉽지 않네요,

등장인물도 한둘이 아니고,

사건의 인과관계도 복잡하지요.

하지만, 그 않에 인류가 숨겨놓은 삶의 비밀들을

잠시나마 엿볼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겠지요.

지금 힘들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가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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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5 01:12:32 *.139.108.175

씹으면 씹을수록

그 속 맛이 우러나오는것이

고전의 매력이겠지요.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복수의 여신이 축복의 여신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다시읽을때 새삼스럽습니다.


어느것도 변하지 않는것이 없습니다.

악도 어느순간은 선이 되며

고난도 언젠가는 성공 스토리의 하나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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