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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1일 07시 53분 등록

시가 내게로 왔다

그래, 그 무렵이었어.... 시가
나를 찾아 왔어, 난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디서 왔는지 나는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침묵도 아니었어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지.
밤의 가지들에서,
느닷없이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얼굴도 없이 저만치 서있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어

......

      - 파블로 네루다, '시'의 처음 부분

   시(詩)는 어느 날 '내게 찾아오는 것'이다.  당나라때 시인 이하는 매일 아침 파리한 나귀를 타고 집을 나섰다. 나귀 등에는 낡은 비단 주머니가 매달려 있는데, 그는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즉시 쪽지에 써서 그 비단 주머니에 담아두곤 했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계집종을 시켜 그 비단 주머니 속 쪽지들을 꺼내 보며 한 숨을 쉬었다 한다. " 이 아이가 심장을 다 토해 내어야 이 일을 그만 두겠구나" 이하는 저녁을 먹은 후 쪽지들을 가져다 정성스레 먹을 갈아 옮겨 두었다. 이하는 겨우 스룰 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는 죽기 전에 꿈을 꾸었다. 꿈 속에 비단 옷을 입은 사람이 나무판 하나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옥황상제께서 백옥루를 지었는데 이제 완공되었다. 그대가 와서 상량문을 지으라 하신다" 이 꿈을 꾸고 얼마 후 이하는 죽었다. 시는 시인이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다. 시인은 다만 찾아 온 그것을 '따라 말하는 것'(Ent-sprechen)이다.

   시 뿐만 아니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다. 그것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다. 스스로 피와 땀을 쏟는 사람에게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것이다. 시는 시인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을 종으로 쓴다. 그림은 그려 낼만한 재목을 찾아 낸 다음에야 그 사람을 찾아온다. 노래도 그렇고 글씨도 그렇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다. 조선 시대 명필로 최흥효란 사람이 있었다. 과거 시험장에 가서 답안을 쓰는데 우연히 한 글자가 왕희지의 글씨와 같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아무리 연습해도 쓰지 못했던 글자였다. 그는 답안을 쓰다 말고 물끄러미 그 글자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글자가 아까워 답안을 제출하지 못하고 그냥 품에 넣어왔다. 우연히 써진 글자 하나를 아껴, 과거를 포기하고 돌아 온 것이다.      이징은 조선의 이름 난 화가였다. 천대 받는 화공의 길을 걷는 것이 싫어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했다. 그는 다락에 올라가 홀로 그림을 그렸다. 사흘 만에야 다락에서 내려왔다. 아버지가 화가 나서 회초리로 쳤다. 아이는 매를 맞으면서도 눈물을 찍어 저도 모르게 새를 그렸다. 이것을 본 아버지가 한 숨을 쉬며 아이에게 그림 공부를 허락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선 중기에 명창으로 이름 난 학산수(鶴山守)는 산에 들어가 노래 연습을 하곤 했다. 신발을 벗어 한 곡을 부를 때 마다 모래를 한 알 씩 넣어 신이 모래로 가득 찬 후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한다. 어느 날인가는 돌아오는 길에 도적을 만나 죽게 되었는데, 서글픈 마음에 바람결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도적 떼가 감격하여 모두 눈물을 흘렸다. 빼앗겼던 물건을 다 돌려받고, 도적들에 잘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이것을 잘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이 시인들이다. 쓰지 않고는 못견디는 표현 욕구를 옛 사람들은 기양(技癢) 이라 불렀다. '양'은 가렵다는 뜻이다. 아무리 긁어도 긁어지지 않는 가려움 말이다. 시인에게 붙어 진기를 소모하게 하고 허구한 날 시구의 조탁에 힘 쏟게 하는 것, 그 알 수 없는 것을 옛사람들은 시마(詩魔)라고 불렀다. '시의 귀신'이 달라붙은 것이다. 귀신이 달라붙으면 어쩔 수가 없다. 시인 김득신은 비오는 날 처마 밑에서 오줌을 누며 시작에 몰두했는데,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제 오줌 줄기로 착각하여 한 참을 바지를 내린 채 서 있었다고 한다.  귀신이 붙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다. 

시작(詩作), 즉 시를 짓는 것은 '신을 부르는 것' 이다. 아이데거는 존재가 스스로를 열어 밝히는 '고요의 울림'을 듣는 것이 시인이라 말했다. 이 때 시는 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시의 목소리다. 시가 스스로를 밝혀 시인을 통해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시인의 창작품이 아니라 시인에게 찾아 온 신의 음성이다. 신은 무엇인가 ? 하이데거에게 신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가장 심원한 시원(始原)'이며, '태초의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시인을 통해 무엇을 '스스로 밝혀내려하는가 ?' 은폐되어 보이지 않는, 인간이 살아가야할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표현에 따르면, "무엇이 신성하며, 무엇이 비속한지, 무엇이 고귀하고 무엇이 덧없는지, 무엇이 주인이고 무엇이 노예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 자신이 살아갈 '존재의 의미'를 열어 밝혀준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예술의 본질은 시작(詩作)' 이라고 말했다. 모든 예술은 시로 환원된다는 뜻이다.

나는 글을 쓴다. 스스로 작가라고 부른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14년 째에 이르러 18권의 책을 쓰게 되었다. 내 책들은 '고요의 울림'을 담고 있는가 ?

(2011년 7월 7기 연구원 모임에서 철학자 김용규 선생은 나는 접근해 갈 수 없었던 하이데거의 예술론에 대하여 1시간 30분 강연을 해 주었다. 이 짧은 강연을 위해 선생은 집에 있는 하이데거 전집을 다시 읽느라고 여러 날들을 몰두했다한다. 선생도 시마(詩魔)에 걸린 사람이 아닐까? )

IP *.160.3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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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1.07.11 09:25:51 *.97.72.137
저희 또한 자기를 찾아오는 신령을 귀히 대접하며 기꺼이 따르는 사람이들이 되어야겠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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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1 19:20:47 *.124.233.1
분명 저는 그날 사부님과 함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의 같은 강연을 들었는데,
사부님의 손끝에서 나온 감로와 같은 글을 보며 제자는 부끄러워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결코 다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떤 무한한 간격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세월의 간격때문인지, 고요의 울림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세계에 닿기 위해 더욱 더 정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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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3 19:31:46 *.170.174.217

나에게 찾아오는 그 울림,

그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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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11:04:34 *.241.242.156

우리는 누구나

시인을 가슴에 품고 태어납니다.


누구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만,

대부분은 삶의 무게에

그 소리에 귀 닫아버리지요.


신이 우리안에 숨겨놓은 그 시인의 목소리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것이

잊어버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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