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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2일 20시 57분 등록
컬처 코드, 클로테르 라파이유, 리더스북, 2007, 이코노믹 리뷰 2월 15일 2007
미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가볍지만 설득력 있는 재미있는 재담

왜 여자들은 겉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속옷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여성의류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빅토리아스 시크릿 Victoria's Secret 이라는 회사가 있다. 매우 성공적인 회사다. 이 회사 덕분에 여성들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은밀한 부분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성적이면서도 섹시하게 꾸밀 수 있게 되었다. 란제리는 아름다우면서도 도발적으로 자신을 꾸밀 수 있는 매우 안전한 의류이기 때문이다. 왜 여성은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할까 ? 그것은 문화가 주는 긴장에 대한 반응이다. 여성은 아름다워야하고 섹시해야한다. 이것이 미국문화가 미국여성에게 주는 압박이다. 그러나 매력적이어야 하지만 지나치게 도발적이어서는 위험하다. 실제로 강간을 다룬 한 판사가 여성이 지나치게 도발적인 모습을 만들어 냄으로써 강간범을 도발 시켰기 때문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여성들은 아름다움과 도발적 섹시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러나 모든 문화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에스키모 남성들은 뚱뚱하고 건강한 여인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 춥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런 여인이 훨씬 더 적합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는 극단적인 시계추 사이에 있다. 이것이 삶의 긴장이다. 문화란 수많은 원형archetype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란 원형과 그 반대의 원형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의문으로 남았던 문제들에 대하여 매우 그럴 듯한 대답을 몇 개 얻어 낼 수 있었다. 몇 가지 더 우리 사회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주제들에 대하여 그의 입담을 즐겨 보자.

미국은 젊음을 선호한다. 성형수술의 천국이다. 그것은 일종의 늙음 방지 가면 같은 것이다. 젊게 보이기 위한 가면 말이다. 그것은 나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정신의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영원한 젊음을 찬양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 젊음은 가장 미국적인 오랜 전통이다. 그 전통은 300 년간 계속되고 있다’ 라고 말했다. 건강은 곧 활동이고 활동은 곧 젊음이라는 연결이다, 그들은 노인을 존경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인도 젊어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렇다고 모든 문화 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힌두교도에게는 인생은 4단계다. 젊음은 세상의 필요한 것을 얻는 것으로 가장 재미없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성숙이다 아이를 낳고 돈을 벌고 성공을 이룬다, 세 번째 단계는 초연함이다. 세상과 생존 경쟁에서 물러나 진리를 타구하고 철학을 공부한다. 네 번째 단계는 도인이 되는 것이다. 노인들이 재를 쓰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흔히 보는 데 그것은 이미 이승을 떠나 내세에서 사는 예행연습이기도 하다.

비슷한 것 같지만 미국인들은 이 점에서 영국인들과도 다르다. 영국인들에게 젊음은 따분하고 미숙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초연함을 즐긴다. 그러다 지치면 다른 시계추 위치를 선택하는 데 그 때도 젊은이의 활력과 열정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대신 괴짜들의 활력과 열정을 찬양한다. 수염을 깍고 여장을 한 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리처드 브랜슨 같은 사람이나 어린아이처럼 우주복을 입고 출근하는 앨튼 존에게 기사 자격증을 주기도 한다.

직업과 돈에 대한 코드도 매우 다르다. 유럽인들은 휴가가 평균 6주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데도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당황해 한다 . 그러나 미국인들은 휴가가 겨우 2주에 지나지 않는다,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휴가 없이 몇 년을 지내기도 한다. 그들은 일이 모든 것에 우선이다. 그들은 일을 찬양하고 성공한 사업가를 유명인사로 받든다. 일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정체성이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직업에 대한 욕구가 쾌락에 대한 욕구보다 낮다. 재미없는 직업 보다는 차라리 실직을 선택한다. 미국인들은 직업이 없으면 정체성에 심한 타격을 받는다. 빌 게이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도 그렇게 정체성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더 나은 직업을 얻으려는 하고 그것을 발전과 성공이라고 정의한다. 톰 글랜시는 중년의 보험외판원에서 인기소설가가 되었고, 그랜드마 모세스 Grandma Moses는 70 살에 그림을 그려 전설적인 민속화가가 되었다. 이들이 바로 미국인들의 우상인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주로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주로 돈에 대해 이야기 한다. 프랑스 인들은 돈에 대해 이야기 하면 천박하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에게 돈은 성공의 상징이고 증거다. 그러나 돈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돈은 교환 가치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들에게 돈은 두 종류다. 하나는 악화고 또 하나는 양화다. 양화는 땀을 흘려 번 돈이다. 그것은 성공의 증거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승리자로 존경 받는다. 명예는 상대적이고 순간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프랑스에서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면 물러나 개인 생활로 돌아가지만 미국인들은 돈을 벌고 또 번다.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자나 자산 수입 복권당첨자들은 존경의 대상에서 빠진다. 노력해서 번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공의 증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인들은 가장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으로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무(無)에서 일구어 내는 자수성가가 곧 성공이기 때문이다.

한편 음식에 대한 미국인들의 코드는 연료다. ‘I am full’ 이라는 표현은 음식을 연료 공급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몸을 기계로 인식한다. 연료의 품질에는 별 관심이 없다. 패스트푸드는 미국적이다. 맛과 영양은 두 번째다, 빨리 배를 채울 수 있고 채워지면 다른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음식의 목적은 쾌락이다. 프랑스 레스토랑은 요리사 웨이터 포도주 담당자 지배인등 많은 연주자들이 동시에 연주하는 예술성 높은 교향곡이다. 미국에서는 품질로 파는 것 보다 양으로 파는 것이 코드에 맞는다. 뷔페 레스토랑 뿐 아니라 최고급 음식점에서도 엄청난 양을 내 놓는다.

이 책은 앞으로의 마케팅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소르본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를 취득했고, 정치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현실적 시선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인문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일하는 주된 영역은 마케팅 분야다. 그의 전공과 직업사이의 새로운 연결 고리는 마케팅 자체가 문화적 무의식을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미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미국인들의 문화적 코드에 마케팅 초점이 맞추어져야하고, 한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코드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미국인들의 문화적 코드에 대한 아주 재미있고 명료한 지적 도발이다. 꼭 읽어 보아야할 즐거운 책 중 하나다. 그러나 저자는 구라가 센 사람이기 때문에 너무 홀려 들어서는 안된다. 웃으며 읽다가 마음으로 이해되고 끌려드는 것만 취하여 정리해 두면 좋다. 전체를 믿어서는 안된다.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교훈 하나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미국인들의 컬처 코드, 즉 ‘아메리카니티’(미국성)에 대해 대략 감 잡았다고 좋아하지 마라. 미국인들 역시 익숙한 자신의 문화적 코드에서 반대의 극단으로 가려는 삶의 긴장을 즐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에 흥분하는 이유는 삶 속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무엇을 맛보고 즐기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계추 사이의 일상, 이것이 문화의 보편적 속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이렇게 되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문화 코드는 무엇일까 ? 미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그들의 코드를 알아야 하지만, 그들의 문화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우리만의 매력적이고 이국적이고 차별적인 문화적 코드인 ‘코리아니티’(한국성)는 무엇일까 ? 앞으로 최대의 승부처는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세계가 형식적으로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문화적 차이를 활용하지 못하고는 차별적 가치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분명해 지고 있다. 이런 류의 새로운 연결은 문화를 다루는 인문학의 무한대적 수요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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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2007.04.25 06:57:54 *.226.216.101
제가 책을 읽는 것처럼 즐겁게 읽었습니다. 전체를 믿지 말라는 말씀도 인상적입니다.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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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8 14:20:08 *.212.217.154

예전에 좋은 기회가 있어서

케나다에 1년이 조금 넘게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아직도 그리워하는것을 보니

참 좋았던 추억이었지 싶습니다.


케나다와는 조금 다르지만, 미국의 문화를 좀도 깊숙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니

서둘러 주문했습니다.

세계의 스텐다드를 이뤄낸 미국,

그 문화의 속살이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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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 13:35:46 *.196.228.74

한 나라를, 특히 미국처럼 

연방으로 묶인 거대한 나라를

하나의 이론으로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동부와 서부가 다르고,

북부와 남부가 서로 다른 나라.

그럼에도

그 거대한 대륙을 관통하는 일관된 코드를 찾는 저자의 노력을

그저 가볍게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의 안내를 받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속살을 들여다 본 후,

그 가벼운 베일 속에 감춰진 진득한 땀내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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