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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5일 10시 24분 등록

  공항 대합실에서 한 여자가 외쳐댄다.  모든 사람들이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커다란 가방이 여럿 실린 카트를 끌고, 울음이 반은 섞인 소리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고함을 친다. 키가 작은 중국 여자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저 여자, 아이를 잃어 버렸구나 생각했다. 소란은 잠시 후 두 아이가 손을 잡고 나타남으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여전히 계속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편인 듯한 중국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 젊은 남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그 여자는 공항 의자에 무너지듯 쓰러져 앉아 흐느껴 운다. 이쯤되니 사연을 추측하기도 어려워졌다. 그저 그 젊은 여인만 서럽게 울고 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흥미를 잃었고, 그저 그녀의 몰상식한 울음이 조용해 지기만을 바랐다. 그때 우리 일행 중에 스님이 한 분 있었는데, 수홍이라는 법명을 쓰는 젊은 비구니다.  그녀가 가더니 그 울고 있는 여인을 안아 주었다. 여인은 가슴에서 흐느껴 울더니 이내 조용해 졌다. 안아 준다는 것은 언어와 사연을 넘어 그 슬픔을 달래주는 힘이 있음을 그때 보았다.  그 안아줌이 바로 나눔이다.  '당신의 슬픔에 공감합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안아주는 것이다.  안아주지 못하는 나눔은 의무나 책임에 불과하고, 그것은 귀찮은 사회적 요구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런 은행이 있다면 어떨까 ? 이 은행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만 대출해 준다. 왜냐하면 정말 돈이 필요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은행의 고객중 대부분은 여성이다. 왜냐하면 여성이 경제적으로 남성에 비해 자립도가 낮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바로 이런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은행'이다.

1974년 방글라데시에 최악의 기아가 몰아 닥쳤고, 10만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치타공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있던 유누스는 눈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길바닥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도대체 경제학 이론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 경제학자로서 내가 가진 연장통에는 이러한 상황을 치료할 어떤 연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학자로서의 연장통을 잊자. 한 인간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 그때가 시작입니다. 방관자의 자세를 버렸지요. 하늘에서 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땅으로 내려왔어요. 이제 벌레의 눈으로 내 앞에서 무엇이든 찾으려고 했습니다" 벌레의 눈으로 그가 발견한 현실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제자 하나와 조브라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조사하였다. 수피아 베굼이라는 20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 대나무를 사서 하루종인 대나무 의자 하나를 만들었다. 의자가 완성되면 돈을 빌려준 고리대금업자가 의자를 가져간다. 원금과 이자를 제외하면 그녀에게 남는 돈은 2센트 정도다. 하루종일 일한 댓가다. 이 마을에 베굼과 같이 고리대금업자의 돈을 빌려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42명이었고, 이들이 빌린 총 금액은 27달러에 불과했다. 유누스는 27달러 때문에 42명의 생사가 달려 있다는 현실에 낙담했다. 그는 여기서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이렇게 생겨났다. 유누스는 '가진 자는 가진 만큼 더 쉽게 가진다' 그리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라는 기존 은행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편견을 뒤집어 엎었다. '돈이 없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돈이 적을수록 더 잘 빌려 준다'는 원칙이 바로 그라민 은행의 바탕 생각이 되었다. 좋은 생각을 가진 이 은행은 과연 성공했을까 ? 보통의 은행들이 담보를 잡고 대출해준 돈 조차 떼일 때도 그라민 은행의 가난한 대출자들은 빌려간 돈을 갚았다. 그라민은행은 원금 상환율이 98%가 넘는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성공한 은행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저 들으면 좋은 이야기로 그치면 내 인생을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런 배움도 교훈도 없다. 나눔과 관련하여 나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행동 원칙을 정하고 조금씩 실천해 보자.

첫째는 나는 '가난하여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것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자. 우리는 누구나 나누어 줄 것이 있다. 작은 돈을 가지고 있다면 돈을 나누어 주자. 돈이 없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재능을 기부하자. 글을 조금 쓸 줄 안다면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빵을 잘만들면 빵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노래를 잘하면 노래를 불러 주자. 돈도 재능도 없다면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자. 공항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가슴으로 안아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의 마음 뿐이다.

둘째는 선한 일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눔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좋은 일을 시작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 마음은 나누고 싶고, 도와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데 안 해 본 일이라 두렵고 부끄러워 머뭇거릴 때도 있다. 그러지 말자. 손을 내밀어 주자. 한번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나눔은 베풀어 준 사람의 영혼을 즐겁게 한다. 받는 기쁨이 결코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주는 기쁨이다. 줘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바로 그 기분 좋은 영혼의 고양을 즐겨 보자.

셋째는 되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자. 나눔이 즐거우려면 되받을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의도되거나 계산된 나눔은 진정성이 결핍되어 있어 사람들은 경계하게 만든다. 기업이 의도된 계산을 깔고 기부를 하게 되면 그것은 나눔이 아니라 계산된 사업 전략일 뿐이다. 나눔이 상업화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이 사회에서 번 것을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되돌릴 성숙한 책임감'에서 나올 때 존경받는 기업이 될 것이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어디서나 고통받고, 힘든 사람을 위한 선한 이웃이 되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나눔의 기쁨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넷째는 나눔을 일상으로 습관화하자는 것이다. 만일 유누스가 그저 가난한 사람의 자립을 위해 약간의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끝나 버렸다면 한 차례의 나눔으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눔을 제도로 만듬으로써 그라민 은행을 창립할 수 있었다.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홍수가 져 한차례 기부하는 것으로 나눔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면 3류 회사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나눔을 제도화 하고 지속함으로써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기업들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들의 리스트에 끼게 되었다. 그러나 정말 존경 받으려면 나눔의 정신으로 사회에 기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일회적인 나눔으로 그치지 않고, 일상으로 반복되게 하려면는 자신의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나눔터를 찾아보거나 스스로 가장 자기다운 나눔의 방식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 동네에서 빵집을 한다면 낮에 팔고 남은 빵을 매일 저녁 고아원에 보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가정주부라면 아이들과 함께 조금 씩 용돈을 모아 아프리카의 한 아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아름다운 가족 나눔이 될 것이다. 아니면 돈이 조금 비싸더라도 공정 무역을 통해 수입된 커피를 사다 마시는 것도 나눔에 조용히 참여하는 방법이다.

  나눔의 경영학은 간단하다.   나누면 커진다는 것이다.   좋은 감정을 나누면 두 사람의 공감으로 두 배로 커진다.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지만 실제로 그것은 자립을 나누어 준 셈이다.   자립을 통해 그 작은 돈은 몇 배, 몇십 배의 발전으로 되돌아온다.   마음을 나누면 나눈 만큼 공유되고,  공감한 사람만큼 복제되어 물결을 이룬다. 마음이 앞장서서 물질의 나눔을 이끌 때,  진정한 나눔이 시작된다.   이 실천적 나눔이 앞장 설 때,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사람 사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문명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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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10.08.05 14:52:05 *.214.164.243
김형경님의 책 <사람풍경>에 '공감은 타인에게 이르는 가장 선한 길'
이라고 했습니다.
소장님의 글을 읽으며 '나눈다'는 뜻을 다시 생각합니다. 
더운 날씨에 청량한 한줄기 바람을 맞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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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8.05 22:58:49 *.34.224.87
미처, 몰랐었는데
의료는, 인간 삶의 행복을 좌우할 수 있는
자신도 잘 모르는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요즘에야, 연구원 생활을 병행하면서 느낍니다.
철학의 힘이겠지요.. 스승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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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10.08.08 05:20:55 *.6.13.235
좋은글 감사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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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용
2010.08.16 12:56:31 *.141.176.145
제 마음 한구석의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겪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 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회사 송년모임 때 모인 불우이웃돕기 성금의 사용처를 고민하다, 굿 네이버스를 통해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한국돈 월 3만원이면 한 아이가 학교도 다니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죠..
개인적으로도 제 자녀들과 꼭 후원하자고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회의를 통해 꼭 실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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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주
2011.04.01 17:22:19 *.103.83.39
고맙습니다.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샘의 글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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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10:53:25 *.212.217.154

주는 기쁨을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 가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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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8 17:55:19 *.212.217.154

나눔은 좋은것입니다.

나도 따뜻해지고 받게되는 상대방도 풍요로워지지요.


하지만 위에 예로드신 그리민 은행은,

과연 그 순수성이 유지되고 있는것인지

의심이되는 상황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11271958165


기업은 '진정성'있는 나눔을 할 수 없는 존재일지...

여기에 한 신문의 기사는 '불가능'이라고 말합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129912#09T0


이런 '선의'의 은행 뿐만이 아닌

몇몇(과연 몇몇일지는 모르겠지만)ngo단체들의 부패또한

결국 결을 같이하는 문제, 고민이겠지요.


인간 본성인 '이성'만으로 세상을 살 수는없습니다.

매우 차갑고 냉정한 세상이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이성' 없는'감정'만의 세상도

그 분명한 한계에 부딛칩니다.



이성과 감성이라는 두 날개로 접근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정 아름다와질 수 있지 않을지

창밖의 내리는 빗소리에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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