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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6일 11시 13분 등록

  커다란 배가 멈춰 섰다. 머리에 하얀 마을을 올려둔 아름다운 산토리니 섬이 앞에 서있다. 작은 배들이 큰 배를 향해 몰려들었다. 큰 배의 승객들은 작은 배로 갈아타고 산토리니 섬에 내렸다. 섬의 정상에 자리 잡은 마을 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당나귀를 타고 오르는 것이고, 세 번 째 방법은 당나귀가 오물을 잔뜩 싸놓은 그 길을 따라 588개의 계단을 발로 걸어 오르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당나귀를 타고 올랐다. 비록 수는 적었지만 그래도 몇 사람은 제 발로 계단을 올랐다. 산토리니 마을로 오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 당신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그 섬의 꼭대기에 오를 것인가 ? 가장 많은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을까 ?

  이 질문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호와 취향대로 사는 자유가 주어지는 사회가 훌륭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자신의 방식대로 살기를 원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진다. 후회도 있고, 기쁨도 있다. 그것이 삶이고 배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취향과 기질에 따른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소통은 한마디로 '다른 것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잘 참지 못한다. 다른 것을 이내 틀린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상대를 동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한다.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사용하고, 나이가 든 사람은 삶의 연륜을 이용하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통해 자신과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타인에게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갈등관계에 빠지게 된다. 이윽고 투쟁 관계로 돌입하고 서로에게 항복을 요구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 속에서 우리는 비일비재하게 이런 현상을 보게 되고, 조직 속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름을 적절하게 경영하는 소통에서 실패한 것이다.

   다름의 경영, 즉 좋은 소통의 기초는 관용과 배려다. 관용이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기호에 따라 케이블카를 타고 가지만, 나귀를 타고 오르는 사람이 택한 특별한 선택도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40도가 넘는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나귀의 배설물 사이를 이리저리 피하며 올라가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그 선택이 바보 같은 것이었다고 비웃는 대신, '그때, 바로 산토리니에서가 아니면 해보지 못할, 그들의 이례적 선택'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사회적 미덕으로 존중하는 톨레랑스는 바로 다름에 대한 관용이고, 이것이 그 사회가 다양성을 품은 성숙한 사회로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때 '타인은 곧 지옥' 이라는 고독을 극복하게 된다. 비로소 우리는 다르지만 서로 존중할 수 있고, 같이 있지만 서로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운 관계의 기초를 쌓게 된다.

   그러나 관용만 가지고는 소통의 묘를 터득할 수 없다. 다른 사람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이성적 활동만으로는 두 존재의 거리를 좁히기 어렵다. 자칫하면 '너는 너, 나는 나'의 평행관계에 그치게 되고, 그 차이를 좁혀 서로의 인생에 긍정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관용은 갈등을 넘어서 친교의 기초를 이루게 도와주지만 진정한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배려라는 미덕이 필요하다. 배려란 '상대의 기쁨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산토리니의 마을로 올라갈 때, 누군가 이곳만의 오래된 교통수단을 즐겨보자 했다. 아마 그 중에 한두 명은 케이블카를 타고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나귀를 타고 오르는 제안을 기꺼이 받아 들여 주었다.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으나 우리는 꽤 오랫동안 나귀의 등위에서 푸른 바다에 감탄하며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무거운 우리를 싣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나귀가 가엾고 고맙다는 것도 체감했다. 어느 선택이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기쁨에 즐겨 참여해 주는 배려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 우리는 소통에 성공한다. 그렇다고 배려가 나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기쁨을 위해 참여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나 혼자라면 결코 맛보지 못했을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참여하게 된 기쁨을 역시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배려란 나와 다르지만 상대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나도 그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우리는 인생의 한 순간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하나가 된다. 우리는 통(通)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가까워진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바로 눈빛으로도 상대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때 소통은 이미 신비로운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소통은 그러므로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전달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다. 모르는 사람과 처음 만나게 될 때, 우리는 말에 의존한다. 관계가 길어짐에 따라 경험을 공유한다. 말은 잘하지만 행동과의 유리를 느끼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신뢰를 잃게 되고, 관계는 가식적이 된다. 서로 두꺼운 가면을 쓰게 되고, 우리의 마음은 교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통은 두 개의 열쇠,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과 상대의 입장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배려의 산물이다.

   실험해 보자. 직장에서 나와 벽이 된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을 관찰해 보자. 그와 나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 그 다른 점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혹시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될 수 있지 않을까 ? 어느 날 그가 좋아하는 그 일에 한번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 보면 내게도 이로운 체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이때 '다름'은 서로를 보완하는 창조적 합성과정을 통해 나를 자라게 한다. 소통이라는 다름의 경영에 성공하게 될 때, 우리는 창조적 관계에 돌입함으로써 상대를 통해 내가 확산되고, 다름을 통해 내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개안(開眼)의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다름'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자. 그리하여 서로의 가슴에 이르는 무지개다리를 하나 놓자.

(엠코코리아를 위한 원고의 초고, 2010년 8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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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뵤
2010.08.26 17:40:52 *.74.133.97
단언컨데, 저는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면 절대 당나귀 등에 올라타지 않았을 것입니다.
빠르게 오르고 좀 더 오랜 시간을 절벽 위에서 보낼 수 있는 케이블카를 선택했거나,
아님 아예 느리게 걸으며 절벽 자체를 즐기는 걸어가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당나귀 한번 타 볼까?" 라는 제안에 아무런 고민 없이 "그러마" 했습니다.
그순간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잘 했습니다.
당나귀를 탄 사람들과 그랬지 그랬지 하면서 맞장구칠 거리가 생긴것입니다.
'함께 경험한다는 것'이 소통을 위해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한가지'를 발견하는(혹은 만드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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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8.26 17:42:23 *.30.254.28
진철이의 선택이 이해되는 상황이군요.
변경연의 많은 분들은 아마,
오래된 교통수단인 당나귀를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쉽게 생각하지만
그토록 소통이 어려운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삶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진짜로 아는 것이겠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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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진
2010.08.29 06:46:42 *.9.226.137
좋은 글이군요 아주 당연하나 그리 하긴 참으로 힘든 그것 또한 "말" 이지요. 상대방에게 관용과 배려를 베풀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있을것입니다. 사회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이것저것 해야 할것들이 많을때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하고는 싶으나 못하는 것도 있을것이고 할수 있어도 하기 싫은 것도 있겠지요 

그것은 모든 개개인의 문제이고 그러한 개개인의 문제는 사회 문제로 나타나듯이 나와 너가 하나 이고 저기 보이는 것이 여기 일어나고 있는것이란 이해가 필요한듯 합니다. 그리고 이해는 실천과 하나 되지 않지요 그러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이해와 실천이 하나됨을 알기 위해선 이해 또한 없어져야 하고 그냥 앎 그자체가 되는 수밖에 없을겁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의 깊이를 이해한다고 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가 탄생할 수 없듯이, 앎 자체가 되지 못하면 관용도 배려도 힘이 들것입니다. 서로 베풀고 인정하는 삶은 아주 좋지요 그전에 자신을 먼저 인정한다면 말이죠..

구본형님 칼럼에 있는 많은 물음과 화두가 저를 즐겁게 하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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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2 12:26:11 *.214.76.206

관용이란 토대 위에 쌓는 배려라는 미덕.

하지만, 관용위에 쌓지 못한다면,

건강한 배려의 관계도 힘들지 싶습니다.

좌 우의 날개로 나는 새 처럼,

이 둘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더 좋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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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1 12:11:11 *.212.217.154

나와 벽이된 그 사람과

굳이 내가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함께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좋아하는 일을 찾는것이 천복의로가는 한 방법이듯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것 또한 그 길로가는 한가지 길이겠지요.


싫은것은 싫다고 표현하는 능력

그런 기술또한 필요하지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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