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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30일 07시 04분 등록

그대에게 가는 길이 먼 길 인줄 알았더니
나에게로 오는 길이 먼 길임을 나는
지금
알았다. 
         - 박수자 스칼렛

(박수자는  에페소스의 대극장에서 이 시를 읆었다.   나는 이 시의 한 귀절을 책의 제목으로 쓰고 싶다고 했더니 
그 책의 시작 페이지에 이 시 전문을 넣어달라고 했다.  언젠가 '나에게로 오는 먼길' 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면 그녀의 시 전문를 넣을 생각이다.) 

그는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노인 곁에 앉게 되었다. 매니라는 이름의 미국인이었는데, 그에게 잊지 못할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매니는 2차 대전 때 미군 전투기 조종사였다한다. 이탈리아 해안에서 벌어진 공중전에서 이탈리아 전투기 한 대를 격추시키게 되었는데, 격추된 이탈리아 조종사는 낙하산을 타고 탈출했다. 그는 그 조종사가 꼭 살아남기를 바랐다. '제발 죽지 않기를, 이 전쟁이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되지 않기'를 정말 간절히 바랐단다. 그래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격추된 조종사의 위치를 알려 구조대가 오도록 했다. 구조대가 이탈리아 조종사를 찾아내자 매니는 저공비행으로 내려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격추된 이탈리아 조종사도 화답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매니는 필라델피아로 귀환하였다. 어느 날 구조된 이탈리아 조종사에게서 편지가 왔다. 비행기 날개에 적힌 번호를 보고 매니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 조종사는 매니에게 기회가 되면 이탈리아로 자신을 찾아오라고 간절히 당부했다. 그리고 매니는 이탈리아로 가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그 만난 자리에서 이탈리아 조종사는 매니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습니다.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데 어떠신지 모르겠어요. 우리 가족은 신발과 지갑을 만드는 가죽제품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미국에 지사를 내고 싶습니다. 미국 판매를 책임져 주면 좋을 텐데요." 그렇게 되어 매니는 그 이탈리아 조종사와 동업을 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신발과 지갑을 만들어서 유럽과 미국에 판매하는 회사를 공동으로 경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격추시킨 적의 조종사를 위해 구조대를 불러준 또 한 명의 조종사 매니 이야기는 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전쟁은 서로 죽이는 상황으로 모두를 몰아넣고, 더 많은 죽임이 더 빛나는 영웅을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죽을 뻔 사람이 자신을 죽을 뻔하게 만든 사람에게 다시 연락을 하여 목숨을 구해준 것에 감사하는 것 역시 묘한 정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맥락에서든 이 이례적 사건이 두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경험이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강요된 비극적 상황에 지지 않았으며 인간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머지 인생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어떻게 인생을 나눌 창조적인 소수의 사람들을 찾아 낼 수 있을까 ?   매니의 이야기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을  말해준다.   하나는 환경의 강제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가진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사는 사람은 멀리 함께 갈 수 없다. 환경이 그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관계가 환경에 종속될 때, 그 관계는 불안하다. 매니는 격추된 조종사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한 인간이라는 것을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다시 생각해 냈다. 그가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그것이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전쟁의 광기가 주는 무자비함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 회심(回心)이다. 그리스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다.  위대한 정신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창조적 소수를 얻는 또 하나의 원칙은 비상한 인연이 새로운 만남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격추된 이탈리아 조종사는 매니와의 만남을 그냥 흘러가게 놓아두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구상했다. 그것은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둘이 함께 공유한 하나의 강력한 체험이 서로를 끌어 당겨 하나가 되게 한 것이다. 하나됨 oneness은 일체감이다. 그러나 획일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개성을 가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지만, 서로는 서로에 대한 존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방식으로 성공하도록 서로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는 것이다.

그는 매니가 이 이야기를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에게 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다.  그때 마다 매니는 그 추억으로 되살아나고,  그의 인생은 이 이야기로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역시 매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밑으로 펼쳐지는 아테네 근교의 올리브 밭과 우유빛 대리석을 품은 펜델리 산맥을 내려다 보았다.  비행기는 천천히 영웅들의 도시 아테네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더할 나위 없이 고양되어 있었다. 

* (나에게로 오는 먼 길 장면 #2, 장면 #1 은 델파이다. 모든 장면들은 극적으로 재구성되었다) 

IP *.160.3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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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10.08.30 12:24:34 *.6.197.116
인간의 존엄성
인연

정말 시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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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뇌
2010.08.30 12:40:52 *.73.16.34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의 글에는 어떤 울림이 있는것 같아 매주 찾곤 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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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8 09:28:40 *.126.113.216

감동이 있는 삶.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어떻게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감동을 위한 감동이 아닌,

깊은진심에서 퍼져나가는 꽃 향기같은 것.

그 본질을 놓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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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12:32:38 *.212.217.154

신들의 도시 아테네.

그곳으로 향하는 하늘 위에서 들리는

신화같은 이야기.

그것은 신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

오직 스스로만이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깨우칠 수 있는법.

그 위대한 정신적 변환.

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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