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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3일 13시 09분 등록

 
 일이 잘 될 때가 있다. 그때는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는 것처럼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 신기하고, 즐겁다. 나의 존재감이 커진다. 마치 모든 것이 나와 연결되어 있고, 내가 나서면 안될 일이 없는 듯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매끄럽게 항진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그 반대의 사이클을 탈 때도 있다. 마법처럼 손쉽게 진행되는가 싶던 일들이 갑자기 꼬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예전보다 어렵게만 보이고, 항상 아등바등해야 겨우 일이 돌아가는 것 같고, 자꾸 역부족이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이때는 열정도 중압감 속에 파묻혀 버리고, 활력도 잠이 든다. 생산성과 효율도 고갈되고, 마음도 불안하여 창조적인 새로운 방법에 대해서도 마음을 닫게 되고, 그저 매너리즘이 무력한 반복을 거듭한다. 어딘가 크레바스로 빠져들 듯 자꾸 구석으로 움츠려드는 나를 보게된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늘 머리 속이 문제를 일으킨다. 머리는 온갖 부정적인 망상을 만들어 내고 강압적인 불안과 걱정이 위험 수위를 높혀간다. 이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을 혹사하는 경향이 있다. 하루에 열 시간, 열 두 시간, 심지어 스무 시간을 일만하고 주말에도 나와 일한다. 그리고 한 밤중에 땀이 흥건히 고여 잠에서 깨곤한다. 아예 불면에 시달리기도 한다. 최선을 다했으나 늘 그 일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앞을 막아서듯 알 수 없는 장애가 발생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겨난다. 그때 마다 믿고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종종 밥줄을 책임져야하는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때는 심한 강박감과 공황 증세까지 찾아와 시달리게 된다.

종종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은 부과된 책임을 완수하려면 그만한 땀과 고뇌는 당연히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강박적 책임감은 과잉활동을 자초하여 주위를 괴롭히고, 활력을 꺽고, 창의성을 저해한다. 결과적으로 늘 풀가동되어 있는 상태에서 에너지가 고갈되고, 사소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 중요한 전환점을 놓치고, 결국 비즈니스는 물론 건강과 인간관계에서 조차 균형을 이루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이것을 과잉책임감의 덫이라고 부른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에게 자주 찾아오는 과잉책임감의 덫에 갇히지 않기 위한 몇가지의 기술적 방법들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는 적절한 책임감과 과잉책임감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불운한 결과에 대비하는 것과 강박적 걱정은 다른 것이다. 망상은 현실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므로 적절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위험에 대비하는 시나리오를 계발해 두는 것이 적절한 대책이다. 불안은 상황을 적절하게 인식하는 순간 사라진다. 객관적 시선을 견지하고 합리적 대책을 예비하라. 과도한 불안이 만들어 낸 마음의 허상이 생기면 늘 객관적 현실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라.

둘째는 내가 아니면 해낼 수 없다라는 과잉주도성에서 벗어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강점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역할의 배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모든 과정에 다 내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든 사람의 운명에 개입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도 그들이 책임져야할 일이 있다. 그들의 책임감의 영역으로 내 책임감이 월권을 하게 되는 순간 과잉활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함께 일하는 동료나 부하직원 역시 그쯤되면 스스로 제 일처럼 일하지 못하고 늘 시키는 일이나 하려는 자세로 움추려 들게 마련이다. 그들의 일과 그들의 책임은 그들에게 맡겨라. 그리고 그들이 그 일을 해 낼 수 있도록 도와줘라.

세 번째는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려면 적어도 도와 줄 손 하나 쯤은 늘 비워 두어야한다. 언제나 바쁘다면 그것이 바로 과잉활동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은 막중하고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면 명확한 빨간불이다. 이때는 내면의 성찰로 들어가야한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가장 큰 밑그림은 무엇인지, 내 일의 핵심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어떤 변화들이 주변에서 생겨나고 있으며, 여기에 맞추어 스스로를 얼마나 적절하게 계발하고 재교육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러면 건강한 출발점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때의 시간으로 리셋팅되어 되돌아 올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한때 정신없는 바쁨이 건강한 삶의 척도이며, 나의 필요에 대한 증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전전긍긍하고 아등바등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게 적합한 일에 전력투구를 하되, 억지로 결과를 만들어 내거나 상황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직 그 일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자체를 위하여 헌신할 때, 그것이 기쁨이며 성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삶의 어느 순간에나 깨달음을 있는 것이고, 초심으로의 회심 (메타노이어 metanoia. 回心)은 훌륭한 기준점이며 균형점임을 기억하자.

(부산일보/ 대구 매일신문 9월 13일 기고문)

IP *.160.3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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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8 16:33:11 *.212.217.154

오늘 하루 하늘이 맑습니다.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체 내달리다가,

맑은 하늘 한번 올려다 볼 수 있는 여유같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만사를 잊고 편하게 쉬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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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5 14:13:36 *.212.217.154

말씀하신 '과잉 책임감'에 물든 관리자를

지금은 '마이크로 메니져'라고 하더군요,

개인의 성장과 창의성을 가로막는 이런 행태는

개인의 '성실'과 '탁월한 관리 능력'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조직을 보이지 않게 좀먹는것이겠지요.


'창의성'이 말 뿐인 구호가 아닌

조직을 움직이는 '피' 안에 살아있게 하고 싶은 조직, 기업이라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곱씹어 보고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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