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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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샘터 9월
어느 날 한 젊은이와 청진동에서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그는 청진동 해장국을 한 번도 먹어 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젊은이들과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그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오래된 식당에 데려갈 수 있고, 그들 역시 내가 가본 적이 없는 아주 최근에 생긴 식당에 날 데려 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아니면 절대로 혼자서는 가지 않을 곳이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오래 되었다는 것이 아주 새로운 것일 수 있으니까요. 신구의 세대는 취향이 맞지 않는 별개의 세계에 속한 별종들이 아니라, 서로에게 속한 시간과 세상을 나눔으로써 새로움을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가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찬 것임을 알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저녁이 아직 일러 식당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내포 한 접시를 더 시켜 소주 한 병을 둘이 나누어 마셨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고 할말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모여 촛불시위를 벌이곤 하는 광화문 문화관광부옆 작은 공원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 날은 시위 대신 브라질인들이 쌍쌍이 어울려 포크댄스를 추고 있었습니다. 한 30명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인도 서 너명 섞여있는 듯 했습니다.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경쾌한 남미풍 노래와 레크레이션을 주도하는 리더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이국적입니다.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우리와 판이하게 다른 억양과 리듬이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모임인지 알 수 없으나 타향에서 서로 만나 자신의 언어로 마음껏 말할 수 있고 소리치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커피집에서 라떼 한잔과 찬 카라멜 프라푸치노 한잔을 시켰습니다. 그 젊은이는 아몬드 쿠키 두 개와 쵸코렛 두 개도 함께 샀습니다. 우리는 커피를 들고 다시 공원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몇 명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린 딸이 함께 타고 있었고, 한 젊은 청년도 타고 있었고, 막 배우기 시작한 중년 남자도 타고 있었습니다.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이 커다란 개를 데리고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인들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공원에 앉아 그런 모든 것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지자 그들의 파티도 끝났습니다. 그러나 헤어짐은 꽤 길더군요. 혼자가 되려고 떠나 온 긴 여행인지도 모르지만 낯선 땅에서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을 잠시 미루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하나 둘 떠나가자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저녁나절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오늘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차창을 통해 보고 있었습니다.
깊이 사귀면 훨씬 많이 마음이 쓰이지만 마음을 쓰는 일이 또한 즐겁습니다. 마음을 나누게 되면 따뜻해집니다. 이해를 좇지 않고도 행동할 수 있고, 홀로 있어도 마음을 기댈 데가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혹간 세상에 상처를 입더라도 더불어 잊을 또 다른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 속에 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만 있어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그 사람은 친구입니다. 그 사람은 연인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대상이 아닌 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사랑은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우리는 죽을 수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랑을, 그 자체를, 그 아름다운 개념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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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젊은이와 청진동에서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그는 청진동 해장국을 한 번도 먹어 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젊은이들과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그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오래된 식당에 데려갈 수 있고, 그들 역시 내가 가본 적이 없는 아주 최근에 생긴 식당에 날 데려 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아니면 절대로 혼자서는 가지 않을 곳이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오래 되었다는 것이 아주 새로운 것일 수 있으니까요. 신구의 세대는 취향이 맞지 않는 별개의 세계에 속한 별종들이 아니라, 서로에게 속한 시간과 세상을 나눔으로써 새로움을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가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찬 것임을 알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저녁이 아직 일러 식당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내포 한 접시를 더 시켜 소주 한 병을 둘이 나누어 마셨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고 할말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모여 촛불시위를 벌이곤 하는 광화문 문화관광부옆 작은 공원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 날은 시위 대신 브라질인들이 쌍쌍이 어울려 포크댄스를 추고 있었습니다. 한 30명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인도 서 너명 섞여있는 듯 했습니다.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경쾌한 남미풍 노래와 레크레이션을 주도하는 리더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이국적입니다.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우리와 판이하게 다른 억양과 리듬이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모임인지 알 수 없으나 타향에서 서로 만나 자신의 언어로 마음껏 말할 수 있고 소리치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커피집에서 라떼 한잔과 찬 카라멜 프라푸치노 한잔을 시켰습니다. 그 젊은이는 아몬드 쿠키 두 개와 쵸코렛 두 개도 함께 샀습니다. 우리는 커피를 들고 다시 공원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몇 명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린 딸이 함께 타고 있었고, 한 젊은 청년도 타고 있었고, 막 배우기 시작한 중년 남자도 타고 있었습니다.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이 커다란 개를 데리고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인들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공원에 앉아 그런 모든 것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지자 그들의 파티도 끝났습니다. 그러나 헤어짐은 꽤 길더군요. 혼자가 되려고 떠나 온 긴 여행인지도 모르지만 낯선 땅에서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을 잠시 미루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하나 둘 떠나가자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저녁나절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오늘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차창을 통해 보고 있었습니다.
깊이 사귀면 훨씬 많이 마음이 쓰이지만 마음을 쓰는 일이 또한 즐겁습니다. 마음을 나누게 되면 따뜻해집니다. 이해를 좇지 않고도 행동할 수 있고, 홀로 있어도 마음을 기댈 데가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혹간 세상에 상처를 입더라도 더불어 잊을 또 다른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 속에 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만 있어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그 사람은 친구입니다. 그 사람은 연인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대상이 아닌 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사랑은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우리는 죽을 수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랑을, 그 자체를, 그 아름다운 개념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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