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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6일 08시 09분 등록

상사가 없는 날, 사무실은 자유의 공기로 가득하다. 내 젊은 시절 직장인일 때, 우린 그 날을 무두일(無頭日)라고 불렀다. 머리가 없는 날, 그건 개점휴업같은 준휴일이다. 유감스럽지만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상사란 아무리 잘해주어도 부담스러운 존재다. 그러니 상사가 늦게 까지 자리에 버티고 앉아 있으면, 내 일 다 해놓고 나와도 미안하고 뒷골이 당긴다. 그건 회사 좋아 진 것을 모르는 옛날 일이라고 강변하는 상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사가 아직 퇴근하지 않았는데, 슬그머니 말없이 그냥 퇴근하기도 그렇고, 뭐라도 눈치껏 인사를 하고 나와야하니 또한 궁색하다. 만일 그 상사가 워커홀릭이라 매일 늦게 까지 앉아 있고, 따라서 모든 직원이 늦게까지 일해야하는 분위기라면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직원들은 상사가 빨리 자리를 비우는 것을 좋아하고, 상사는 자신의 주위에 부하 직원들이 가득한 것을 좋아한다. 직원들은 늦게 까지 퇴근하지 않는 상사를 지나친 충성심으로 무장한 야심가이거나 아내와 사이가 나쁜 워커홀릭으로 몰고 싶어하고, 상사는 땡하면 나가는 부하 직원을 공과 사를 구별 못하고 남은 동료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빤질이로 비하한다. 이 감정적인 시선은 자리와 직위에 따라 고정된 것이어서 교정할 수 없는 것일까 ? 모든 일이 만만하여 다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늘 지금 보다 나아질 수 있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상사와 부하직원이 가진 퇴근에 대한 심리적 불화를 줄이기 위한 세 가지 실천적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입장의 차이를 이해하고 바꾸어 보는 것이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상대방의 신발에 제 발을 넣어 보는 것이다. 남이 신던 땀 젖은 신발에 발을 넣어 본다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갈등이 있을 때 마다 듣는 조언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써왔던 방법이며, 그 효과가 검증된 훌륭한 조언이다. 부하에게는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일 못지않게 삶의 질 또한 중요하다. 그러니 가족과 보내야하는 시간 역시 상사가 배려해야할 주요 덕목이다. 부하는 상사 역시 회사로부터 성과 달성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조직인이며, 한 팀의 책임을 맡고 있는 리더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입장의 전환과 이해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다. 그러니 그 사람의 귀가 되어 듣고, 그 사람의 입이 되어 말해 보라. 훨씬 훌륭한 팀이 될 것이다.

두 번 째 방법은 인식의 전환이다. 상사의 경우, '직원은 관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관리자다' 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상사의 입장에서 보면, 직원이 마음대로 자유로운 것은 상사의 직무유기이며 관리 태만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문화의 혁명이 요구되는 때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인재를 결정하는 최고의 기준이 되고, 기업의 사활을 결정하는 미덕이 되었다. 창의성은 '관리된 조건' 속에서는 잘 자랄 수 없다. 창의성의 기초는 '자유로운 사고'이기 때문이다. 관리자에 의해 통제되고 지시받은 직원이 일을 잘 처리하려면, '과거의 검증된 방식'을 따르는 것이 리스크를 지지 않는 현명한 길이다. 따라서 실패에 대한 관용이 부족할 경우 창의성의 핵심인 실험정신은 결핍될 수 밖에 없다. 상사가 전통적인 관리자적 성향을 줄이고, 일이 제대로 되도록 지원하는 스폰서로서의 역할 비중을 높이게 되면 직원이 상사의 존재를 불편해 할 이유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직원 역시 일의 주인은 자신이지 상사가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상사란 일의 수혜자, 즉 내 일의 과정과 결과로 부터 영향을 받는 주요 고객 중 하나지 그 일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일이란 '위에서 지시 받아 해치워야하는 과제'로 인식하는 월급쟁이의 마인드를 벗어 버리고, '내가 팔아야 하는 비즈니스'로 인식하는 경영자의 마인드가 절실하다. 이때 비로소 일에 대한 주인정신으로 충만한 자부심 속에서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상사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위해 스스로 일할 때 그 직원은 탁월함을 추구하는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남아있는 심리적 잔재는 불평하고 비난해야할 몫이 아니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문화적 유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적 전통은 서구에 비해 보다 수직적이다. 관리자나 직원 모두 자신이 자라온 문화적 환경의 산물이다. 창의력이 배양될 수 있는 수평적 질서와 보다 자유로운 상하 관계의 모색이 절실하지만, 당연히 기대되는 질서와 예의를 지키지 않음으로 상사와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인류는 언제나 두 가지 철학의 사이에서 살아왔다. 하나는 결합의 철학이고 하나는 자유의 철학이다. 결합의 철학은 거대한 제국과 조직을 만들고 이끌어 가는 기본 정신이었고, 자유의 철학은 르네상스처럼 개인적 천재의 시대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이 두 개의 정신은 서로 대치되지만 또한 조화 속에서 공존하는 가치들이다. 따라서 개인과 조직, 자유와 질서, 삶의 질과 일의 긴장, 수평과 수직 사이의 역학적 균형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면, 삶의 패러독스와 딜레마에 대한 관용이 커지게 된다.

  톨레랑스, 관용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공존의 정신이며 성숙한 인간의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니 불평을 줄여 자신의 일에 대한 탁월함을 추구하고, 비난을 줄여 함께 일하는 좋은 파트너가 되자. 입장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안고 살자. 그 차이가 바로 좋은 변화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을 위한 원고, 5월)   

IP *.160.3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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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10.05.08 10:32:40 *.116.190.222
개인적으로 팀장급 위치에서 업무추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상사들이 부하직원이 자유로운것을 자신의 직무 유기라고 생각하는지가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전통의 수직문화의 연장이라고 하셨지만,
제 생각에는
많은부분 남성의 수직,명령,복족의 군대문화에 그 책임이 있다 생각합니다.

존대말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유교문화와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군 문화가 서로의 안좋은 면으로 결합하여
지금의 우리나라 수직문화? 의 근간이 되었다 생각하며

군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런식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어렵지 않을까요?


다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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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4 17:36:44 *.212.217.154

김현철님 말씀에 많은부분 동의합니다.

시대가 변하면 문화도 변화하겠지요,

지금은 그 과도기 가운데 있지않나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수직적 문화의 단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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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14:40:00 *.212.217.154

시간이 지나 다시 곱씹어보는 글.

우리는 산업화시대에 만들어진 9to5라는 시간,

그 시간이 만드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벌어지는 충돌이 아닐까?


기계적 대량생산시스템속의 가치가

창의성이 가장 큰 가치인 2017년 현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그 질문부터 다시 질문해야하지 않을지.


'왜 퇴근시간에 눈치를봐야하는가?'가 아닌,

'칼 퇴근'이란 말 자체가 모순적이지 않은지.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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