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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3일 05시 44분 등록

   젊어서 한때 나의 핏 속에는 낭만주의가 80% 이상 섞여 몸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낭만주의자는 이야기를 현실이라고 여긴다.   나는 스토리에 감동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지금도 말이다.   그러므로 나의 핏 속에는 여전이 낭만주의 취향이 오월의 모란처럼 진하게 남아 있다.

   낭만주의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한마디로 공리적 기준을 미적 기준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렁이는 유용하지만 아름답지 않고, 호랑이는 유용하지 않지만 아름답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다윈은 지렁이를 보고 감탄했지만, 낭만주의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 호랑이를 보고 감탄했다. 아름다움이 곧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전통적 아름다움과 다르다. 낭만주의자들은 오직 장엄한 것, 공포를 자아내는 것, 멀고 먼 곳 속에서만 감탄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딕 건축을 선호하고, 폭포와 같은 급류, 아찔한 절벽, 바다를 뒤집는 폭우에 경도된다. 콜리지는 쿠리라이 칸의 제나두를 그리워하고, 멀고 먼 전인미답의 퇴락한 고성이나, 한때 번성했으나 폐허가 된 오래된 세계를 동경했다. 워즈워즈를 거쳐, 바이런, 셸리, 키츠에 이르러 영국 낭만주의는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했다. 그들은 이해타산보다 개인의 열정을 옹호하기 때문에 상업주의와 돈 냄새를 경멸하고 멸시했다. 멋진 일이다. 그러나 낭만주의 운동은 무법적인 새로운 자아를 자극하고 선동함으로써 사회적 협력과 조화를 어렵게 했다. 인간은 고립된 고독한 호랑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자아실현이 윤리학의 최고 원리일 수는 없다.

  오늘 나는 생각한다.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니, 나는 낭만주의자라기보다는 이상주의자인 듯하다. 나는 현실을 이야기라고 믿기 보다는 현실을 이야기로 만들려고 한다. 여전히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다. 어쩔 수없이 나는 이상주의자다.    80% 정도는 그렇다. 그러나 바라건데, 부디 미래 위에 미래를 건설하지 않고, 현실 위에 미래를 축조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현실적 이상주의자라고 스스로 부를 수 있기를 원한다.

IP *.160.3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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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강호
2010.05.13 08:29:54 *.159.97.25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아침 지하철 무료 신문 메트로에 실린 "퇴근의 미학"이라는 선생님의 글을 접하고 이 곳까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즐겨찾기에 선생님 홈페이지 주소 등록해 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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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요한
2010.05.13 09:00:45 *.90.31.75
구본형선생님의 오늘 글을 읽으면서, 우리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고 차별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또한 모두 동일한 형상을 가졌고 공감대적 내면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가 신기하고, 반갑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한 '이상주의' 하거든요. ^^
아름다운 글 감사드리고, "부디 미래 위에 미래를 건설하지 않고, 현실 위에 미래를 축조할 수 있기를...' 하신 선생님의 희망이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 축복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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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13 10:10:21 *.149.8.82
사부님,
전 아직도 낭만주의자 같습니다. 현실적이고자 하고...이상적이고자 하는 그런 낭만주의자...
언뜻 제가 두렵기도 한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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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스트
2010.05.13 13:53:02 *.131.104.198
글 중 " 자아실현이 윤리학의 최고 원리일 수는 없다. " 라는 글은 동감하기가 힘드네요. 자아실현을 윤리학이란 학문적 원리로 보고 판단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립된 고독한 호랑이" 란 표현도 고립이 아닌 자유로움이 더 어울린다고 저는 생각됩니다. 자아실현은 깨달음 입니다. 타인의 눈으로 볼때만 고독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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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5.15 19:57:53 *.34.224.87
책을 읽다가 에우리피데스에 대한 윌 듀런트의 설명을 보면서
옮기고 싶었습니다.

(P125)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다.
이성은 감정에 밀리고, 불의를 미칠 듯이 미워하고, 더 온전한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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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11:24:11 *.212.217.154

현실적 이상주의자!

저 또한 그렇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스스로를 로멘티스트 라고 생각했더랬죠^^

잠시 그때 그시절을 떠올려 봤습니다.


현실에 발 디딘 이상을 향해,

오늘도 느리게 걸어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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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2 12:24:37 *.98.149.92

'이상 위에 이상을 쌓지 말고,

오직 현실 위에 이상을 쌓아 가기를.'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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