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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6일 15시 15분 등록
아이들이 있는 일상 - 3개의 스케치, 샘터 3월, 2004


작은아이의 목이 많이 부어 병원에 갔습니다. 두 달도 되지 않아 다시 감기로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 감기를 완전히 떼어내지 않은 채 약을 끊어서 그렇다는군요. 좀 먹다가 나은 것 같으면 약을 그만 먹게되는 것이 보통인데 그게 안좋다는 것이지요. 약국에서 기다리는 동안 또 쌍화차를 한 병 씩 마셨습니다. 그 약국에 가면 손님들에게 늘 쌍화차를 하나씩 주거든요.

나는 감기에 걸리면 나대로 털어내는 방식이 있습니다. 4.19 묘지 근처에 있는 맛있는 추어탕 집에 가서 매운 청양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탕을 먹고 나면 땀이 흥건히 젖습니다. 그러면 감기가 다 나은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잠을 좀 넉넉히 자면 훨씬 좋아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 하나는 아스피린과 쌍화탕을 먹고 이불을 머리까지 푹 뒤집어 쓰고 땀을 흘리면 다 낫는다고 합니다. 내 처는 약간 뜨거울 정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목욕을 오래 동안 합니다. 그러면 훨씬 좋다는군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만의 감기비법을 알게되는 것인가 봅니다. 작은아이도 크면서 자신만의 감기 비법을 체득하게 되겠지요. 인생이 다르듯 처방도 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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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붉고 붉은 장미꽃다발을 들고 밤늦게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매일 만나더니 결국 서로 사귀기로 한 모양입니다. 만나러 나간 날은 물론이고, 이제 집에 있는 날에도 전화통을 붙들고 살겠군요.

웃음과 소근거림과 기쁨이 따르겠지요. 그러나 슬픔과 아쉬움과 고뇌도 따르겠지요.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참으로 낮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거든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거든요. 사랑은 다른 사람을 통해 우리 내면의 깊고 어두운 곳을 탐험하게 하는 묘한 길을 걷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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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애의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국악창의 하나인 정가를 전공한 아입니다. 연희동 2층 가정집을 개조한 하우스 콘서트 장소를 빌려 가족 중심의 발표회를 연 것이지요. 한복을 입고, 병풍을 두른 자리 위에 나붓이 앉아 가야금과 장고에 맞추어 창을 하더군요. 정가란 짧은 시 한 수를 한 글자씩 길게 목소리를 떨지 않고 불러내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좋은 데, 다 부르면 보통 4-6 분 정도 걸리니 얼마나 천천히 글자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지 짐작이 되시지요 ? 옛날 선비들이 자신을 수련할 때 부르던 노래라고 합니다.

나는 맨 앞자리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보았습니다.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고 웃음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 온 자주 마주치던 아이가 남모르는 자신의 세계를 갖고 사는 보니 딴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끝나고 붉은 포도주 한 잔 씩을 나누어 마셨습니다. 작은 공연장의 한쪽 벽에는 책과 음악 CD 그리고 DVD 로 가득했습니다. 하우스 콘서트 주인은 아직 젊은 사람인데, 이렇게 음악 속에 묻혀 사는 것도 좋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훌륭한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자신도 창작을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관객이었나 ? 물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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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어울려 살면 아이들이 나를 키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자신들의 인생을 펼쳐 나가는 그들의 방식을 보게 됩니다. 같은 듯 하지만 다르고, 다른 듯 하지만 같습니다. 자신에게서 멀어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듯 하다가, 다시 세상으로부터 걸어 나와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그들을 보며, 나의 과거 속에 함유된 젊음과 후회와 성취와 환한 빛을 보곤 합니다. 부디 그들이 참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되길 바랍니다.

IP *.229.14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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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7 13:30:40 *.193.138.248

나날이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신록처럼 깊어 가는데 자녀분들은 더 하시겠지요.

그러나 이런 글로 가족에 대한 마음을  남길 수 있는 부친이시니  세월이 갈수록 그 관계에 고아한 향기가

만방에 떨쳐지며 큰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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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5 14:54:37 *.212.217.154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

엿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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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0:54:09 *.241.242.156

우리의 일상, 평범한 삶의 주름속에서

보물을 찾듯이 작은 행복을 지긋이 바라보자.


행복은 커다란 그 무엇이 아닌

티끌처럼 작은것 안에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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