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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일 07시 12분 등록


 계곡과 검은 암컷 (현빈 玄牝)
- '노자' 사상 속의 가장 중요한 신화의 모티프 motif

'계곡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검은 암컷이라 부른다. 검은 암컷의 문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 이어지고 또 이어져 영원히 존재하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 '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도덕경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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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모두 여성의 생식력을 의미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다. 문외한도 단박에 그 감을 꿰뚫어 알 수 있다. 자연을 사람의 몸으로 비유한 중국고대인들의 사상,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에 따르면 달과 계곡은 모두 여성의 상징이다. 여성은 음이다. 특히 달은 음(陰)의 으뜸, 바로 태음(太陰)이다. 하늘과 땅 조차도 검은 암컷, 즉 여성의 음부에게 나온다는 말이다. 대만의 신화학자 두이미는 그래서 노자의 '도덕경'은 달의 신화에 근거하여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달을 여성의 으뜸으로 생각한 것은 고대 중국인뿐만 아니라 그리스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태양의 신이 아폴론이라는 남성신인데 반해 달의 신은 아르테미스라는 처녀신이다. 달의 여신은 사냥을 한 후 피곤한 몸을 깊은 계곡에서 목욕으로 푼다. 계곡의 한 쪽에는 동굴이 있는데, 맑은 샘물이 끝없이 흘러 나와 마치 커다란 대야처럼 생긴 욕조를 이룬다. 아르테미스는 이곳에서 깨끗하고 맑은 물로 처녀인 자신을 씻는다. 이때 젊은 사냥꾼 악타이온이 아무 생각없이 여신의 성역으로 들어와 처녀의 가장 신성한 곳을 보게된다. '대자연의 숨김없는 아름다움을 본' 이 재수없는 젊은이는 분노한 달의 여신에 의해 사슴으로 변하게 되고,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물려 찢겨 죽게된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달과 계곡이 여성이라는 생각은 인류의 집단무의식이기 때문에 배우지 않고도 단박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깊은 계곡의 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 깊은 것은 어둡고 검다.   검다는 것은 심연이니 영원히 물로 차 고요하다. 그것은 깊고 오묘하고 숨겨져 있다. 바로 여성이다. 또한 달은 차고 기울지만 죽으면서도 스스로 기르니 결코 죽어 사라지지 않는다.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니 불사의 존재다. 생명은 끝이 없다. 여성만이 생명을 낳고 기른다. 여러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노자의 철학이 여성의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머니는 존재의 시작이고 생명의 창고이고 원류다. 여성은 물처럼 부드럽고 유약하지만 강함을 이기는 가장 유용한 상징이다.

   유가가 남성의 철학인데 반해 도가의 사상은 여성의 철학이다. 유가의 사상은 남성적인 모든 것, 즉 인위적이고 제압적이고 이성적이고 때때로 침략적인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도가의 사상은 철저히 그 반대의 측면인 여성성을 강조한다. 도가는 '받아들이고 정성을 다해 이루고 물러나 지키고 신비하여'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낳고 기르지만 어느 것도 지배하지 않는다.  고대인들은 이것이 여성과 어머니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노자의 도(道)는 계곡으로 상징되며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며 생명과 사랑을 주관하는 어머니다. 

  반면 '논어' 속의 군자는 낮은 곳에 사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악이 흘러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가는 지배자의 사상이다. 그러므로 산의 정상을 지향한다. 그러나 노자는 백성의 사상이다. 그들은 계곡을 지향한다. 유가는 양의 철학이고 도가는 음의 철학이다. 이 둘은 종종 대립하고 갈등한다. 그러나 결국 상생한다. 음과 양이 잘 어울릴 때만 비로소 상생이 가능하다. 상생의 결과, 그것이 생명이다. 끊임없이 계속되고 면면이 이어지니 단지 생명, 생명 뿐이다. 모든 것을 낳고 그 시원이 되지만 장악하지 않고 제압하지도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는 늘 경쟁과 승리와 성공을 찬양한다. 그것이 삶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철저한 양(陽)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마르고 타고 죽어간다. 경쟁이 있으면 질 때가 있고, 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다. 노자의 사상은 한 때 지고 실패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구부리면 도리어 온전해 지고, 낡으면 오히려 새로워 질 수 있고, 적으면 오히려 많아질 수 있다' (도덕경 22장) '감히 세상 사람들의 앞에 서지 않는다.' (67장) '감히 무엇을 하는데 용감한 자는 죽게 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용감한 자는 살게 된다' (73장) 노자의 사상은 한때 실패하고 절망하고 자기연민에 괴로운 사람들을 진무해준다.   다시 살게 해준다.   달처럼 거듭 모태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게 도와준다. 죽지만 죽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지 못하면 다시 태어날 수 없다. 사는 동안 끝없이 죽고 다시 살아야 새로워 질 수 있다. 철학자 피터 마제스가 이것을 아래와 같이 절묘하게 표현한다.

"노자의 사상은 패자를 위한 위안일 뿐 아니라 승자에 대한 깨우침이다.  혹은 패자의 영혼이고, 승자의 철학이다. 노자는 승리와 성공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교만과 실패에 반대한다. "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이렇게 통쾌한 것이구나.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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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8.12.02 14:10:23 *.33.52.13
세상의 온갖 것들이 이 글 안에서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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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이리
2008.12.31 15:46:45 *.48.246.10
새해에는 배우지 않고도 단박에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즈음에 통쾌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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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5 07:23:29 *.7.51.98

예전에는 유가와 도가에 대한 글을 읽더라도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유가와 도가를 비교하니, 한결 쉽게 다가오네요^^

이것이 바로 음과 양의 절묘한 조화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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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8 09:54:32 *.212.217.154

선생님의 맑은 글로,

오늘 하루 무릅을 탁! 치며 시작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는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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