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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일 21시 43분 등록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꿔라. 우리는 별이다. - 다섯 번째 이야기
 (동아비즈 )

현대 무용계에 혁명의 바람을 몰고 온 마사 그레이엄은 1911년 4월 로스엔젤리스 오페라 하우스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로스 세인트 데니스라는 무용가의 포스터를 보게된다. 힌두교의 주신 크리슈나의 연인 라다로 분한 세인트 데니스가 금빛 팔찌를 끼고 옥좌 모양의 단상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빛나는 모습에 그녀는 도취하게 된다. 포스터와의 만남, 얼마나 하찮은 간접 만남인가 ! 그러나 이 만남으로 그녀의 인생이 바뀌게 된다. 아버지를 졸라 보게 된 공연에서 17살의 그레이엄은 장엄하고 화려한 옷을 걸치고 풍부한 표정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데니스의 춤에 혼을 빼앗기게 된다. 그녀는 말한다.

"그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는 여신처럼 춤추는 것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러나 마사는 그 후 몇 년이 더 지나 스물 두 살이 되어서야 춤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딸을 춤추는 공연장으로 데려간 아버지였지만 그녀가 춤꾼으로 인생을 사는 것은 반대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그녀는 춤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마사는 데니스가 설립한 무용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평범한 용모에 유연성이 떨어지는 나이든 제자는 데니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마사는 신속하게 자기 분야를 마스터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른이 다 된 다음 그녀의 마음가짐은 정해졌다.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나는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

그후 그녀는 자기만의 욕망과 가치를 담은 무용을 시도했고,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둔 꿈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저항했다. 그녀는 화려한 장식을 떼어내고 엄격한 검소함과 투박한 몸짓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었다. 종종 그녀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고전 무용에 무지하고 추한 형식과 증오에 찬 정신으로 몸을 사용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약속대로 자신의 무용을 만들어냈다. 존 마틴이라는 당시의 무용평론가는 그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무용에는 열정과 항의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 그녀는 무용가로서 용서 받지 못할 짓을 한 셈이다. ...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녀는 거의 혼자의 힘으로 현대 무용을 창조해 낸 셈이다.

우연히 그녀가 푸른 물감에 붉은 물감을 피 튀기듯 칠한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는 순간 그녀의 춤의 이미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 응축된 점이 움직이고 선이 일렁이며 하나의 화폭 안에서 내면이 긴장하여 그림을 보는 순간 그녀는 "이 그림처럼 춤을 추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의 꿈이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며 결국 아름답게 채색되기 시작한 것이다. 꿈은 현재라는 점이 하나의 선으로 일렁이며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화폭을 모험이라는 위대한 긴장의 울림으로 가득하게 만든다.

꿈이란 무엇인가 ? 지난 100년 간을 통틀어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 중의 하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그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의 정신 자체가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사고의 주체를 연구의 대상으로 객체화시킨다는 발상은 혁명적이었다. 그리고 그가 인간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꿈이었다. 꿈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사회의 도덕적 기준의 내면적 상징인 수퍼에고가 눌러두었던 무의식 세계의 활발한 과정을 가늠하게 해 주었다. 니체는 꿈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잠 잘 때 우리는 수 천년 전 인간이 깨어있을 때 했던 방식으로 사유한다" 꿈은 문명 이전의 언어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암시해 준다. 문명 이전, 수천 년 전의 인간의 사유방식으로 풀어 놓은 이야기, 그것이 바로 신화다. 잠 잘 때의 언어 즉 감시당하지 않는 무의식의 언어인 꿈은 인류의 원형 이미지(archetypal image)인 신화 속에서 그 해석의 실마리를 얻어 낸다. 정신분석과 관련하여 누구나 많이 들어 보았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모두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부터 연유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꿈은 무엇인가 ? 자유다. 잠잘 때 무의식이 꾸는 꿈은 사회적 압력을 상징하는 초자아로 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고, 우리가 깨어 있는 낮에 꾸는 꿈은 현재로 부터의 자유를 상징한다. 과거의 강물로부터 근원한 답답하고 초라한 현재, 방광에 가득한 노폐물, 터질 것 같지만 억제된 욕망의 배뇨의 길 그것이 꿈이다. 그래서 꿈을 꾸지 못하면 현재는 풀려나 갈 곳을 잃게 된다. 춤추듯 향해 가야하는 선을 잃고 우리는 화폭의 구석에 작은 점하나를 찍고 스스로 응축되어 갇히게 된다. 현재라는 창살, 벗어 날 수 없는 감옥, 낡은 과거의 옷을 걸친 비루한 죄수로 살게 된다. 꿈은 창살을 빠져나오는 바람이 되고 연기가 되고 탈옥한 자의 웃음이 된다.

꿈은 무엇인가 ? 자신을 주도적 인물로 정립하기 위한 정신 작용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대와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축소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만들어지는 대로 사는 삶을 버리고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자기 선언인 것이다. 모든 평범한 자들은 우연한 사건을 만나 영혼을 흔드는 각성을 거쳐 사회가 강요한 꿈이 아닌 자신의 꿈을 꾸게되는 위대한 모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꿈길, 우리의 모든 걸출한 모험은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시작된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이 말은 마틴 루터 킹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흑인 사회 전체를 위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를 위한 말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라는 말은 나의 신화를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평범한 내가 어느 날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각성에 이르고 드디어 주인공이 되어 신들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괴물을 쳐 없애 고난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그들의 영웅이 되는 위대한 서사시 한 편이 나를 위해 쓰여진다는 뜻이다. 나는 질문한다. 언제 나는 평범함과 위대함이 갈리는 갈림길에 이르게 될까 ? 어느 사건이 '전령관'으로 내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 내는 장면을 연출하게 될까 ? 결국 나는 나만의 인생이라는 모험의 길로 들어서면서 어떤 천재일우의 기회들을 맞게 될까 ? 누가 이 모험의 길목길목에서 나를 구해주고 내게 용기를 주고 내게 괴물의 목을 딸 보검을 전해 주게 될까 ? 이윽고 내가 마주하는 고난과 문제는 무엇이며 나는 이 괴물들을 어떻게 쳐 부수고 그 목을 잘라 자루에 놓고 다시 현실 세계로 귀환하게 될까 ? 결국 나는 무엇이 되어 어떻게 인생의 후반부를 보내게 될까 ? 그리하여 나는 인생이라는 모험에서 어떤 역할을 맡은 것일까 ? 간디는 도덕적 종교적 정치가가 되어 인도를 구하는 신화를 만들었고, 체 게바라는 혁명가가 되어 세계만방의 인민을 해방하는 신화를 썼고, 칼리 피오리나는 기업가로서 자신을 키우는 신화를 써 내려 갔고, 그레이엄은 평범한 사람의 불안과 고민을 몸으로 표현함으로써 춤과 인생이 만나게 해주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꿈은 인생의 대본이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내가 어떤 배우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흥미진진한 것은 그 역할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알고 있다. 결코 대중과 군중이 되어 지나가는 거리의 행인으로 자신을 설정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을 가지고 위대한 이야기를 쓰지 못한다면 누구도 자신의 무대를 가질 수 없다. 역할이 없는 배우, 인생에게 통렬한 똥침을 날리는 대화 한 마디할 수 없는 벙어리, 어느 한 사람하고도 목숨을 건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 내지 못한 졸렬한 인생, 밥을 찾아 스스로 목에 사슬을 건 개. 만일 우리 스스로 자신을 위한 신화 한 편을 쓰지 못한다면 결국 내가 열연해야할 인생이라는 무대는 없다. 꿈을 꾼다는 것은 어둠 속의 관객, 얼굴이 없는 반편, 박수 기계로 남지 않겠다는 정신적 각성이며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내 무대가 설치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묻는다. 당신의 신화는 무엇인가 ? 당신은 인생이라는 모험에 어떤 모습으로 참여하게 되는가 ? 등장인물들은 누구이며, 당신은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가 ?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가 ?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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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경우
2009.06.17 14:08:37 *.10.10.98
사부님, 터닝포인트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정신 버쩍들어서 읽고, 프린트도 했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나름대로 치열하게 반복되는 직장의 일상속에서 문득문득 지금 내가 진정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해답은 찾지 못한채 시간은 또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부님이 마지막 결론부에 쓰신 문장들이 통렬한 똥침으로 저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 가슴이 씁쓸합니다.  좋은 글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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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20:57:23 *.160.33.149

 오래동안 모르고 지내던 그대의 소식을 들으니 좋구나.   그래,  바삐 살다 이렇게 생각나 들어 와 보고 불현듯  소식 전하면 어찌 살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잘 살아 보려 애쓰고 있구나 .  그런 생각을 하는 좋은 날들이 많으면 좋은 삶이다.    잘 지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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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7 22:06:23 *.212.217.154

낮에 꾸는 꿈처럼,

나의 신화를 쓸것.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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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4 09:35:56 *.139.108.171

이제 막

저 스스로의 모험을 떠났습니다.


그 길이 결코 평탄하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웅의 여정처럼,

수많은 난관과 

갖가지 몬스터들이 난무하겠지요.


하지만,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영웅이 가야할 곳으로 

되돌아 갈 것임을 믿습니다.

그 믿음의 힘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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