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구본형

개인과

/

/

  • 구본형
  • 조회 수 6139
  • 댓글 수 8
  • 추천 수 0
2010년 6월 9일 10시 09분 등록

   생전 처음 해본다는 것은 어색한 일입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신기하게도 한 번도 아버지께 편지를 써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 편지가 처음이네요. 편지는 멀리 있는 가족에게나 보내는 것이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떨어져 지낸 적도 많았으니까요. 그리움이 없었을까요 ? 어찌하여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작고한지 오래된 당신께 처음으로 편지를 한통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문득 해가 떠오르는 산을 보다 들은 생각입니다. 이제는 제 마음에 어떤 생각이 찾아오면, 가능하면 그 생각대로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인생을 즐기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요 ? 아버지를 회상하고 모자람을 늦게 깨달은 자식의 잘못을 절절히 호소하는 편지가 되지는 않게 하려 합니다. 그저 내 속의 아버지를 털어놓으며 소주 한잔 마시듯 그리하려합니다. 그동안 종종 누군가 아버지에 대하여 물으면, 그저 웃으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사업을 했던 분'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는 가난했지요. 그때 모두 가난했지만 우린 특별히 그랬지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 내야할 등록금이 오래 연체되어, 담임선생님이 저를 학교 수업 중에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가방을 교실에 놓아둔 채 집에 왔지요. 집 툇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조금 있으니 작은 누나가 나와 똑같은 이유로 집으로 쫒겨 왔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툇마루에 앉아 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나가 제게 그랬어요.

   "집에서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바로 너야. 나중에 결혼해서 이런 일을 아이들이 당하지 않도록 하려면 너는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더 노력해야할꺼야"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이 말은 제게 송곳 같았습니다. 그리고 늘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틀림없이 경제적으로 밝은 분은 못되셨지요. 마음이 헙헙하고 싫은 소리를 못하시고 영악한 셈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늘 남 좋은 일만 한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시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 겁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우유부단하고 야무지지 못하고 그저 사람만 좋은 분, 그게 아버지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고, 스스로 세상을 살며 배우고 터득한 이치로 미루어 보니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야 가족들이 당신을 부당하게 평가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가난했지만 그런대로 화목했던 집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는 늘 늦게 술을 들고 들어오셨지요. 집에 들어와 큰 소리로 코를 골고 주무시곤 하셨지요. 어머니는 늘 그 무책임함을 미워하고 싫어하셨지요. 종종 두 분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고, 우리는 모른 척 했지만 대체로 어머니의 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화주의자셨지요. 한 번도 폭력에 의존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가족을 잘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염치로 손까지 대랴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 당시 가난한 집안일 수록 가장임을 주장하고 보여주려는 아버지들의 폭력이 더 심했다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도 어려서 가정 폭력의 희생자로 살았던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가난했으나 신사였던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커집니다.

   사실 그 당시 집안이 가난하다는 것은 제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은 자신의 손에 달린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런 낙천성도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라는 것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제 진로에 대하여 당신께서 개입하신 적이 없으셨지요. 그건 당연히 제가 알아서 처리해야할 일이었으니까요. 아마 당신께서는 자식들에게 무심한 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아이를 키워보니 자식에게 무심한 부모가 어디 있겠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무관심은 아마 어찌어찌 잘 풀려 가겠지, 사람 사는 일이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 제 운명대로 가는 것이니 잘 풀리겠지하는 낙천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는지요 ? 그게 어쩌면 되는 일 하나 없는 그때 그 세상을 사는 아버지가 어려운 세월을 견디는 철학은 아니셨는지요 ? 사실 저는 어렴풋이 당신께서 자식들에게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는 확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어려서,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실컷 놀다가 그 날 따라 일찍 쓰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제 머리맡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이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지요. 어머니는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저는 두 분의 이야기를 잠결에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러셨지요.

   "이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애가 되었네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러게 말이오. 얼마나 다행한 일이오" 라고 간단히 말하셨지만 저는 그 말투에서 오는 아버지의 그윽한 자부심을 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잠결에 들은 두 분의 목소리는 더없이 따뜻하여, 되돌아 보면 제 유년기의 아름다운 장면이 되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 도란도란한 목소리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아버지는 참 잘 생긴 분이셨지요. 일요일도 없이 아침마다 출근을 하셨는데, 그때마다 늘 정장을 하고 나서셨지요. 참 잘 어울려서 그 초라한 산동네 집에서 나오는 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환했지요. 사실 아버지에 대한 정말 멋진 기억은 아주 많이 편찮으신 다음 첫 외출에 제가 대동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는 아주 많이 아프셨지요. 또 초상을 치루겠구나할 만큼 그렇게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셨지요. 그때 광주에 계신 할머니가 그곳 생활을 다 정리하시고 서울로 와 아버지를 돌보셨습니다. 19살에 과부가 되어 아버지만을 키워오신 할머니는 내 마음의 영웅이셨지요. 참으로 사리에 밝고, 강하고, 부지런한 분이셨어요. 할머니는 아버지를 살려 내셨지요. 어느 날, 여름이 한창이었던 날, 많이 좋아지신 아버지께서 와병 후 첫 외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하얀 모시적삼을 다려 입히셨지요. 그렇게 차려입고 나서는데, 그때 중학생이었던 저는 아버지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오래 심하게 앓다 일어 난 후니 내가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가 제게 맡긴 미션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집을 나서 아버지 친구 분을 만나러 혜화동으로 갔지요. 우리는 그때 지금의 대학로 위 낙산 꼭대기에 살고 있었으니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 되는 거리였습니다. 태양이 떠올라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명료한 그 환한 여름날, 하얀 모시옷을 입고 앞서가는 아버지는 참 멋지셨어요. 그래서 저는 조금 떨어져 걸으며 '저 분이 내 아버지다'라는 즐거운 생각에 젖어 제법 긴 그 길을 내려갔었습니다. 그게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아버지는 몸이 회복되어 다시 매일 출근하셨지요. 물론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회사를 다니신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사업'을 하러 다니셨으니까요. 우리는 그후 같은 집에 살았지만 사실 별로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초저녁 잠이 많은 제가 잠든 후 들어오셨고, 저는 그 다음날 아버지가 깨시기 전에 학교에 가곤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날 이후 저는 아버지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제가 흰 모시옷 입은 그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은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아버지, 그러나 전 그게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전 아이들에게서 이미 아주 많은 즐거움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웃음, 그 찬란한 웃음, 어떤 순간, 어떤 눈빛, 어떤 일상의 대화, 아픔, 아비이기 때문에 느끼는 그 아이가 인식한 아픔 보다 어쩌면 더 아픈 아픔들을 저는 기억합니다.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빛나는 순간들을 아주 많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 저는 그것이 좋은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 대해 아주 많은 아름다운 심상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간혹 그 아이들에게 그 아름다운 장면을 이야기해 줄 수 있으면, 그리하여 스스로 그 아름다운 순간을 거쳐왔음을 잊지 않게 해 줄 수 있다면 아주 멋진 아버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얀 모시옷의 멋스러운 아버지를 기억하듯 저도 제 아이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   고 싶습니다. 그것보다 훌륭한 유산이 또 있을까요. 종종 우리는 거울 속에서, 어떤 사건 속에서,   어떤 말투 속에서, ‘너는 네 아버지를 꼭 빼닮았구나’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아직 여러 어른들이 생존해 계셨을 때, 그분들이 종종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럴 때 마다 그 말이 어떤 아름다운 심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심상이란 겉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아주 많은 사연을 담고 그 사연들과 함께 녹아내리고 혼융되어 가면서도 사라지지 않은 기억으로 채색된 오래된 도자기 같은 것이 아닐지요. 
 
    왜 아버지께 편지를 쓰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무엇인가가 문득 가득 차 올랐던 것이겠지요. 그러나 참 좋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내게도 아버지가 있었구나' 생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한 때 독립운동은 하다 옥고를 치루고, 일찍이 과부가 된 홀어머니를 애타게 했던 분, 해방 후 가장 젊은 나이에 책임있는 공직에 있었으나 답답해 일찍 나온 분, 그리고 나와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사업을 하신 분, 그래서 가족을 내내 고생시켰던 분, 그러나 너그러운 마음의 신사였던 한 남자를 기억합니다. 여름이 익을 때, 흰국화를 들고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월간중앙  2010년 6월)

IP *.160.33.180

프로필 이미지
수희향
2010.06.09 11:00:05 *.119.66.162
사부님의 잔잔한 말씀을 들으며, 이 아침 아빠에 대한 최고의 명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조현희
2010.06.09 13:03:59 *.106.111.211
아버지라는 단어는 왜 절 이리도 가슴 저리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읽어 내려오는 내내 내얼굴에서 그것도 함께 흘러내렸습니다.

제 기억에.....
너무나 멋찐 분....엄하셨지만 너무나 따뜻하셨던 분....  많은 추억을 주신 분...
꿈속에서라도 뵙고 싶지만 저를 너무 사랑하시는지 나타나주지 않으신 분....

그렇게 당신은 제게 아름다운 심상으로 늘 함게 하시지만...너무너무 뵙고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보고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승완
2010.06.09 17:07:15 *.237.95.125
오랜 만에 '살다보면'에 글 하나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사부님 글을 읽었습니다.
놀랐습니다.
제가 올린 글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게 참 신비롭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해와 달
2010.06.11 12:32:33 *.233.243.190
맨 끝에서 4번째 줄, <독립운동은-->독립운동을>이 되어야 할 듯 합니다.
열람자 수가 82일 때, 제가 이 글을 봤는데요. 벌써 550을 넘어가려 합니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볼 것 같아서요.^^! 이런 공간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0.06.11 17:23:47 *.30.254.28
처음이군요.
자서전에서도 볼 수 없었던
처음읽는 선생님의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태희
2010.06.11 21:03:13 *.219.138.90
나이 사십이 넘은 딸인데도 아직 아버지보다 아빠가 익숙합니다.
저는 어리적부터 아빠와 각별한 딸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아빠의 손을 잡고 학교엘 가곤 했었고  늘 친구처럼 붙어 다니기 일쑤였던 나의 아빠.

아빠에게 편지를 써 본 기억이 가물합니다.
결혼을 한 후부터 조금씩 어려워 진 아빠에게 예전처럼 살갑게 굴지 못한 세월이 벌써 몇해인지 헤아릴수가 없습니다.

내일은 '아빠'하고 곰살맞게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5.11.08 15:03:31 *.212.217.154

어린시절, 아버지의 기억.

'마르셀의 추억' 이라는 소설이 떠오르네요^^

좋았던 힘들었던 간에

과거란 항상 아름답게 추억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니다.

힘들고 고달프다고 생각하고있는 이 순간도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 되겠지요^^

프로필 이미지
2019.01.29 11:40:29 *.212.217.154

아버지.

나는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가?


2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누군가 저에게 꿈이 무엇이라면

저는 항상 '좋은 아버지'라는 말을 해왔습니다.


좋은아버지라는 말 안에

참 많은 가치들이 녹아있다고 생각해서였지요.


선생님의 아버지로써의 모습을 생각해보고,

나의 아버지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아버지로써의 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3 등불을 꺼버리면 더 큰게 보일게다 [2] 구본형 2002.12.25 6013
482 당신은 무엇으로 유명해 지기를 바라는가 ? [2] 구본형 2002.12.25 6016
481 직장 민주주의 실험 [2] 구본형 2010.12.05 6019
480 ‘제법 똑똑한 파리’ 이야기 - 3 개의 좌표 [5] 구본형 2006.03.22 6021
479 휴먼 개피털에 주목하라 [2] 구본형 2002.12.25 6023
478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2] 구본형 2008.02.20 6024
477 어느 춤꾼, 지독히 뜨겁게 살다간 사람 [4] 구본형 2006.12.03 6037
476 불안과의 동행, 그리고 성장 [3] 구본형 2004.09.25 6044
475 영혼은 팔지 마라. 그러나 기량과 재주는 힘껏 팔아라 [2] 구본형 2002.12.25 6052
474 어느 때 변화가 가능한가 ? [2] 구본형 2004.08.31 6057
473 길현모 선생님, 중요한 길목마다 그 분이 거기 서계셨다 [8] 구본형 2006.07.22 6059
472 칭찬의 효용에 대한 지나친 남용에 대하여,, [7] 구본형 2004.10.08 6073
471 선한 마음 그것이 당신의 힘입니다, [4] 구본형 2006.03.22 6082
470 발로 쓴다 -프리드리히 니체, 생각탐험 21 [2] 구본형 2010.06.22 6089
469 싸우지 않는 삶은 죽음의 냄새가 나서 싫다 [2] 구본형 2002.12.25 6096
468 커뮤니케이션의 비법 6 - 신뢰 [3] 구본형 2006.12.26 6097
467 질서와 자유 - 그 어울림 [5] 구본형 2005.10.13 6100
466 여성, 나, 그리고 일 [2] 구본형 2005.02.03 6102
465 저 안내자가 멈출 때까지 계속 걸어갈 것이다 [4] 구본형 2004.01.24 6104
464 가끔 며칠 굶어 보는 것에 대하여, [2] 구본형 2004.06.06 6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