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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9일 08시 22분 등록
윤리경영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
success partner, 2005년 4월 20일

강물이 불어났다. 정나라의 부자 한 사람이 강물에 휩쓸려 빠져 죽고 말았다. 강물이 줄고 물이 빠지자 시체가 강기슭의 나무에 걸려 있었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어떤 사람이 그 시체를 건졌다. 부자의 가족들이 돈을 주고 그 시체를 넘겨받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시체를 주운 사람은 많은 돈을 요구하며 시체를 넘겨주는 것을 거절했다. 부자의 가족들은 등석(鄧析)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그 당시 총명하기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었다. 등석이 말했다.

“ 안심하시오. 그는 결국 당신네들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요. 결국 그 시체는 당신네들 밖에는 가져갈 사람이 없을 것 아니요 ? 조금 더 기다리시오.”

이 말을 들은 유가족들은 돈을 더 주는 것을 거절하고 며칠을 더 버텼다. 시체를 건진 사람이 이제는 안달이 났다. 답답해진 그 사람도 등석을 찾아가 어찌하면 좋을 지를 물었다. 등석이 태연히 말했다.

“안심하고 기다리시오. 당신은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요. 결국 그 가족들은 당신 말고는 다른 곳에서 그 시체를 살 수 없을테니 말이요”

이것은 여씨춘추(呂氏春秋) 에 나오는 일화다. 등석은 명석하다. 그의 말에 틀린 것이 없다. 시체를 사려는 유가족도 시체를 팔려는 사람도 다 버틸만한 이유는 있다. 그러나 그 시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 도덕적 판단이 빠진 명석함을 우리는 간지라고 부른다. 교활한 지식이라는 뜻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죄악이다. 이익을 다투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경영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함정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가운데 한 명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계열사가 연루된 보험 부정거래와 관련해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세계 2위의 거부(巨富)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직하고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으로 기업인은 물론 일반인들로부터 폭넓게 존경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상실감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기업가치에 바탕을 둔 투자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명예와 정직성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으로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다. 엔론의 몰락이후 연이어 터져나온 미국기업 스캔들의 와중에서 기업윤리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묻기 위해 버핏 회장의 자문을 얻으려는 주요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그동안 오마하행 러시를 이루기도 했었다.  버핏 회장의 말 한마디는 미국 경영자들에게 '금과옥조'로 통했으나 이제 그는 사정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익을 챙기기 위해 불법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파렴치한 기업인'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연방 법무부와 뉴욕주 검찰, 증권규제 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 조사관들이 버핏 회장을 상대로 조사할 내용의 핵심은 버크셔 해서웨이 계열 재보험사인 제너럴 리와 세계 최대 보험업체 AIG의 재보험상품 변칙거래를 버핏 회장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다. 그가 부당거래를 주도하지는 않았더라도 내용을 알면서 사전에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지난 2000년 4·4분기와 2001년 1·4분기 AIG는 제너럴 리와의 한정보험상품 거래를 통해 보험료로 5억 달러를 받았는데, 손실위험이 거의 없는 이 돈은 부채로 기재돼야 했지만 AIG는 이를 매출로 기재함으로써 재무실적을 부풀린 혐의를 받고 있다.  제너럴 리는 AIG와 공모해 이와 같은 변칙적인 장부 처리를 도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AIG는 이미 제너럴 리와의 거래가 부적절했음을 시인한 바 있다.

 버핏 회장 자신도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올해 1월 사내에 배포한 메모를 통해 “버크셔는 돈을 잃을 여유는 있어도 명성을 잃을 여유는 없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명성의 보호자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합당한 명성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말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버핏 회장을 바라보는 뉴욕 금융계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 같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버핏 회장 측이 2월부터 사정 당국에 적극 협조하며 부정거래 자료를 제출한 것이 그린버그 회장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버핏 회장이 자신에 대한 부정거래 혐의를 줄이기 위해 수십 년간 우정을 쌓아 온 그린버그 전 회장의 불법거래 연루 사실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엘리엇 스피처 뉴욕 검찰총장은 TV에 출연해 “버핏 회장의 검찰 출두는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자격”이라고 강조하며 “버핏 회장의 협조로 사건의 불확실성이 크게 해소됐다”고 밝힌 바 있다. 조사가 진행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윤리 경영은 최소한의 한계는 법의 선이다. 이 선을 넘어서서는 안된다. 그곳이 마지노선이다. 그러나 범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윤리적인 기업은 아니다. 윤리 경영이란 법 이상의 기업의 사회적 의무와 역할을 전제로 한 것이다. ‘법의 경영’ 이라고 불리지 않고 윤리경영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동양인의 관점에서 윤리 경영에 관해 경영자가 반드시 알아 두어야할 훌륭한 전거와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맹자’ 속에 다음과 같은 예가 나온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라 하여 갑옷을 만드는 사람보다 불인(不仁) 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만든 화살이)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 까봐 걱정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갑옷이 화살에 뚫려) 사람이 상하게 될까봐 걱정한다. 무당과 장인도 역시 그러하다 ( 무당은 당시 의사와 같았기 때문에 사람의 병이 낫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장인은 관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리지 않을까봐 걱정한다) 그러므로 직업의 선택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

그리고 맹자는 다시 스승 공자를 인용하여 이렇게 덧붙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에 거하는 것이 아름답다. 스스로 택해 인에 거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을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 "

여기서 바로 공자의 ‘이인위미(里仁爲美)’ 라는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인에 거하면 아름답다’라는 뜻인데, 어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진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일을 고르고 그 일이 직업이 되면 밤낮 그 일만을 머리에 두고 살아야 하니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도울 수 있고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훌륭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이렇게 선(善)이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일상이며, 생활이며, 먹고 사는 문제며, 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정신이 바로 윤리경영의 정신적 뿌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며, 직업을 통해 먹고 살면서도 스스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약속이 바로 윤리경영의 정신인 것이다.

맹자는 다시 덧붙여 활 쏘는 것과 인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인이라는 것은 활을 쏘는 것과 같다. 활을 쏠 때는 자세를 바르게 한 후에 쏘는 법이다.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마라. 과녁에 맞지 않은 까닭을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궁술에서 중요한 것은 활 쏘는 사람의 자세다. 두발을 디딘 자세와 어깨와 팔의 각도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가슴을 비우고 배에 든든한 기운을 채워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활을 쏘는 동작 전체에 일관된 질서가 있어 동작과 동작이 끊어지지 않고 정(靜)과 (動)이 유연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궁도라는 것은 단순히 활을 쏘아 과녁에 맞추는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과정과 자세의 정진 여부가 맞고 맞지 않음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활쏘는 일을 비유하여 삶의 자세와 철학으로서의 인의 실천적인 내용을 강조한 것이다. ‘仁’이라는 한자어를 잘 보면 두 개의 이중적 구조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표시하고 있다. ‘人’ 는 사람이 서로 기대고 서 있는 형상이니 인간이란 누구도 독립적인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임을 상징한다.

‘仁’ 은 사회적 존재인 두 사람이 서로 만날 때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실천적 고품격 처세철학을 담고 있다. 활 쏘는 예를 들어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말고 스스로 반성하는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맹자의 ‘등문공’ 편에 윤리경영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사례가 나온다. 진나라의 대부에 조간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당시 임금의 총신이었던 해라는 인물에게 천하제일의 마부인 왕량이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왕량이 해를 위해 마차를 몰고 사냥을 나가게 되었는데 해는 하루 종일 한 마리도 짐승을 맞추지 못했다. 화가 난 해는 왕량을 천하에 쓸모없는 마부라고 욕했다. 이 말을 들은 왕량은 다시 한 번 마차를 몰게 해 달라고 간청하여 마차를 몰고 사냥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해가 하루에 열 마리를 쏘아 맞추었다. 그러자 해는 왕량을 일컬어 천하제일의 마부라고 치켜세웠다. 조간자가 왕량에게 앞으로도 계속 해를 위해 마차를 몰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왕량은 단호하게 머리를 저으며 거절했다. 사냥의 법도대로 마차를 몰았더니 하루 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법도를 어기고 궤우(詭遇)하게 하였더니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고서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가 아무리 권세가라 하더라도 더 이상 마차를 몰 수 없다는 것이다, 궤우라는 것은 아마도 사냥의 법도를 어기고 짐승의 옆에서 활을 쏘게 해 주는 것으로 부정한 방법으로 사냥을 하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맹자는 법도를 어기지 않으려는 왕량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원칙과 정도를 따르는 정신적 자세가 과녁에 맞고 맞지 않음의 책임을 자신에게 묻는 활쏘기의 엄격함과 동일한 처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활을 쏘는 것과 마차를 모는 것은 다른 일이지만 그 운용의 정신은 동일하다.

이윽고 맹자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가 이 노래를 듣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 보게. 물이 맑을 때에는 갓끈을 씻지만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야 남이 자기를 모욕할 수 있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스스로 파멸 시킨 연후에 남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나라도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밞을 수 있는 것이다.

맹자의 철학을 빌어 기업에 빗대어 말한다면, ‘ 한 기업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스스로를 파멸 시킨 연후에야, 다른 기업이나 사법 기관이 파멸시킬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불러드린 재앙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윤리경영이란 이미 자신이 걸어야할 길로 경영을 선택한 사람들이 지켜야할 엄격한 자기규제와 수기(修己)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법이 두려운 이유는 법을 어겼을 때 뿐이다. 자기가 허물어 진 연후에야 법이 무서워지는 것이다. 관행이라 따라했고, 운이 나빠 걸렸다고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마부에게도 지켜야할 사냥의 법도가 있듯이 돈을 버는데도 축재의 법도가 있다. 윤리경영이란 경영자로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자기 약속이며, 사회에 대한 자기 책임의 엄격함이며, 자신의 삶에 대한 정신적 자세다. 그것이 무너지면 더러운 물이 되어 사람들이 발을 씻을 것이고, 그것을 지키면 깨끗한 물이 되어 사람들이 우러러 갓끈을 씻을 것이다. 물 스스로 그렇게 하듯, 기업가와 경영자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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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
2006.07.03 19:43:31 *.143.13.149
일이 잘못되었을때 저자신 보다는 주변 환경을 탓하고 사람을 탓하는 제자신이 부끄러워 집니다.
제 자신에게 좀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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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21:57:50 *.212.217.154

스스로가 바르게 가다듬는것이 먼저이겠지요.

타인의 평가보다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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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1 18:48:57 *.212.217.154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

- 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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