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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5일 16시 15분 등록
좋은 생각 5월
우리, 있는 그대로 이미 즐거운 존재


가벼운 검진이 있어 병원에 갔다. 늘 복잡하고 붐비는 곳이 병원이다. 차례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언제 내 이름을 부를 지 모른다. 잘 살고 있는데, 공연히 몇 가지 검사를 받아 보자는 처의 말을 듣고 따라오긴 했지만, 병원에 와서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나이들어 병원에 가면 좋은 소리 들을 게 없다. 탈이 난 것임이 밝혀져 입원이라도 하게되면, 그때 부터는 환자로서 수감 상태에 들어 가게 된다. 다른 사람의 보호 아래 들어 간다는 것처럼 화나는게 없다. 정상을 그리워하는 비정상들의 집합소, 그게 병원인 것 같다.

내시경실에 들어 갔던 부인 하나가 휴지로 입을 막고 나오는데 피가 사방에 묻어 있다. 의사가 따라나와 급히 응급실로 옮기도록 조치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긴장하는 듯 했다. 아직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밥 한 수저에 잘 익은 김치 한 조각 얹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운 일상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행복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병원이 즐겁지 않은 곳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병원은 우리가 정상이라는 것, 있는 그대로 이미 즐거운 존재 라는 것을 일깨우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오만을 치료하는 곳, 신을 발견하는 곳, 우리가 고기덩어리일 수 있다는 것, 돈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어떤 깨우침과 같이 있다. 위험과 기회는 늘 함께 손 잡고 다닌다. 이별은 사랑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불편하지 않으면 편리함을 알 수 없다. 마음이 즐거우면 몸이 날아갈 듯 개운 하다. 그리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병원의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무료한 기다림의 시간을 이런 생각들을 하며 보내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병원은 그리 나쁜 곳은 아닌 듯도 하다.

우리가 가끔 아플 때 깨우치게 되는 일상의 아름다움은 건강이라는 소중한 것을 내 놓고 배우게 되는 아주 비싼 교훈들이다. 감기와 몸살 조차도 우리가 조금 쉬어야 한다는 것을 잊은 대가임을 깨닫게 해 준다. 다행이 우리들은 아무 탈도 없었다. 벌써 점심 때가 다 되었다. 함께 나오다 복집에서 시원한 지리를 시켜 먹었다. 참 맛있었다. 한끼만 굶어도 밥은 즐거움이 된다.
IP *.208.14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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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0 16:42:43 *.212.217.154

있는 그대로 즐거울 수 있기를,

손님 모두가 즐거움으로 받아드리기를,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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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4 14:35:40 *.212.217.154

병원에서 행복의 본질을 보는 역설처럼,

행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하지요.

행운의 상징인 네입 크로버를 찾기위해

행복의 상징인 세입 크로버를 짖밟아 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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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8 11:53:15 *.139.108.201

삶의 어두운 곳에서

반대의 가치를 찾는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어두운 하늘 만큼

질병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요즘,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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