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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3일 22시 01분 등록
삼성 에세이, 11월 13일


무엇이 우리를 붉게 살게 만드는가 ? 싱싱한 생명력, 그 열정은 애정에서 온다. 나는 삶의 지루함에 늘어져 있는 한 청년이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치열한 투지로 재무장되는 것을 보았다. 모든 여인은 다 그녀로 보였고 모든 사물을 다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미친 듯 빠져들게 되는 흥분, 그래서 사랑 이야기는 가장 찬란한 무질서며,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창조적인 마취상태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그 정점에 올라 설 수 있는 극적인 희열,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의 기쁨에 대하여 노래하고, 그 배신과 고통에 대하여 통곡하는 것이다.

종종 그 사랑이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춤꾼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녀의 이름은 마사 그레이엄이다. 1916년 무용가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인 스물두 살에 춤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속에 무용가로서의 삶이 자리 잡은 것은 5년 전이었던 1911년 4월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로스엔젤레스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국적인 춤을 추는 로스 세인트 데니스의 공연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힌두교의 주신인 크리슈나의 연인인 라다로 분한 로스는 금빛 번쩍이는 팔찌를 끼고 화려한 옷차림으로 옥좌 모양의 단상에 책상다리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그 공연에 데려가 달라고 간청했다. 아버지는 딸의 소원을 쾌히 승낙하고 딸에게 바이올렛 코르사주를 선물하였다. 공연은 그녀의 혼을 빼 놓았다. 다양한 여신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홀로 춤추며 무대를 휘어잡는 매혹적인 로스의 장엄하고 화려한 춤사위, 표정이 풍부한 눈 그리고 인상적인 모습은 그녀는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녀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그레이엄은 여신처럼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러나 딸이 흔쾌하게 무용을 구경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아버지도 딸이 무용가로 세상을 사는 것에는 쉽게 찬성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서 절충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교양교육을 받으면서도 예술적인 관심을 추구할 수 있는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그녀는 드디어 자유롭게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스물 두 살 때였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녀는 정상에 오를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누구도 아무것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그녀는 홀로 자신의 길을 갔다. 그리고 신속하게 자신의 분야를 마스터해 나갔다. 푸른색 바탕에 붉은 물감을 튀기듯 춤추었던 이 여인의 춤 속에는 열정과 항의가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그녀는 무용가로서 용서 받지 못할 짓, 즉 관객으로 하여금 그 춤을 보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춤의 혁명이었다.

그녀는 바로 그녀의 몸이었다. 몸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될 수 있었다,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따라 그녀가 고안 할 수 있는 무용의 한계가 규정되었다. 몸의 한계를 벗어 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지독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춤추는 일 외에는 모든 것을 제거해 내갔다. 춤 외에는 모든 감정적 애착, 모든 집착, 모든 위안 그리고 여가 시간마저도 지워 나갔다. 여기에는 가족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까지 포함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전부를 춤에 아낌없이 바쳤다. 춤을 위해서 춤 아닌 다른 삶의 요소들에 대해서는 사악하고 오만하고 잔인하고 파괴적인 요소가 농후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드라마 속에서 살았다. 그녀는 마치 춤의 신과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그녀의 무용단에 남아 있는 한 그녀는 그 사람을 위해 죽는 시늉까지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무용단을 떠나는 순간 그녀의 기억에서 가차 없이 추방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어떤 아이디어 어떤 사람과 끝장이 났다고 생각하면 그것 혹은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그녀는 모든 것을 춤에 걸었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원칙을 함께 춤추는 단원들에게도 적용시켰다. 그레이엄의 무용단원이 되는 것은 영광이었다. 그러나 혹독하리 만큼 힘든 일이었다. 10년을 고문 같은 훈련을 받아야 겨우 군무에서 벗어나 4인 그룹에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단 한 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 수천 번의 도약 훈련을 해야한다는 것을 늘 단원들에게 주지시켰다.

춤추는 사람들은 단 한 번의 공연이 주는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그레이엄 역시 창조력이 풍부한 여느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반복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어느 종류든 자기 모방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춤을 완성시키기 위해 모든 곳에서 춤의 소재를 찾았다. 특히 뉴욕의 번잡한 도시 생활에 억눌려 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소재들을 찾아 헤맸다. 미국의 원주민 마을을 방문하고, 인디언의 대지에 밀착한 삶과 영적인 삶을 중요시 하는 경향에 깊이 감동하고 스페인과 원주민 문화의 혼합양상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하여 ‘원시 제의’, ‘박쿠스의 사제’ bacchanale 등이 등장했다.

춤의 소재를 찾아 다니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둑이다. 그러나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 나는 내가 훔친 것들의 진가를 알고 있다. 늘 소중하게 여긴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다.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할 유산으로 여긴다 ”
그녀가 무용가가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무용가로 선택되었다고 주장한다.. 마치 동물처럼 다른 생각하나 없이 그녀는 그 길을 갔다. 선택은 없었다. 동물이 ‘일체의 속임수나 야망없이 먹고 마시고 새끼를 치는 것처럼’ 그녀는 춤추며 살았다. 그녀는 무용을 그녀의 삶에서 분리시킨 적이 없었다. 그녀의 삶은 곧 춤이었던 것이다.

“인생을 살며 한 가지 커다란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평범함 mediocrity 이다.”
마사 그레이엄이라는 춤꾼을 떠올릴 때, 나는 늘 이 말을 기억해 낸다. 섬뜩할 만큼 전율이 온다.

우리는 모두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겨우 몇 분 몇 시간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만 그 재능를 간직할 뿐이라는 점이다. 재능은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재능이라는 신의 선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치해 버려두면 결국 누구나 하늘을 날아오를 날개를 잃고 평범해 질 수 밖에 없다. 평범함은 바로 자신을 방치한 죄인 것이다. 이제 서둘러 물어 보자. 그리고 이 화두를 놓치지 말자.

“나를 평범함에서 꺼내 줄 은빛 빛나는 재능 날개는 무엇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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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즐짱
2006.12.21 00:28:00 *.47.85.166
그 순간 그녀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그레이엄은 여신처럼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녀는 정상에 오를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누구도 아무것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그녀는 홀로 자신의 길을 갔다. 그리고 신속하게 자신의 분야를 마스터해 나갔다.

몸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지독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춤추는 일 외에는 모든 것을 제거해 나갔다. 춤 외에는 모든 감정적 애착, 모든 집착, 모든 위안 그리고 여가 시간마저도 지워 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전부를 춤에 아낌없이 바쳤다. 춤을 위해서 춤 아닌 다른 삶의 요소들에 대해서는 사악하고 오만하고 잔인하고 파괴적인 요소가 농후했다. 그녀는 마치 춤의 신과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던 것 같다.

그녀는 모든 것을 춤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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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2006.12.27 07:12:36 *.173.139.94
" 인생을 살며 한 가지 커다란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평범함 "
범상치 않은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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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15:19:36 *.212.217.154

신이 숨겨둔 그 한가지!

그것을 찾을 수 있기를,

만약에 그 희미한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면,

사자가 먹이를 노리듯,

절대로 놓치지 말 것.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다 해,

물고 뜯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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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14:21:28 *.212.217.154

내가, 삶의 조연이 아닌 주인공임을 알고 있다면

결코 평범하게 세상을 살 수 없겠지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삶을 찾아서

오늘도 작은 발걸음 하나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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