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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25일 07시 39분 등록
쓸모없음의 쓸모있음- 무용의 용(無用之用), 효성 2004

사람이 땅 위를 걸을 때 필요한 것은 발바닥이 닿는 면적이다. 그러나 발이 닿는 부분만 재어 놓고 그 둘레를 다 파 내려가 절벽을 만들어 버린다면 그 발 닿는 곳 마저 쓸모가 없어진다. 그러니 쓸모가 없어 보였던 그 변두리 땅들이 다 쓸모있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이다. 이 이야기는 장자가 '무용의 용(無用之用)을 설명하기 위해 들었던 사례다.

'피터의 법칙'으로 유명한 L. J 피터는 '능력의 종착역 증후군'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직장인에게 승진은 기쁨이고 꿈이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인정받아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다면 그것 보다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의 최고 단계를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무능해 지고 실수하게 되고 오판하게 되고 무너지게 된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급기야 건강을 상하게 되고 불명예를 안고 물러서게 된다. 이것은 '유용의 용'(有用之用) 에 치중한 결과다. 오직 쓸모 있음의 길로 자신을 내몬 결과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살아남아 오래 번영하는 자 (適者)의 처세법이 아니다.

직업인이 피터의 법칙이라는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장자의 ‘무용의 용’의 묘리를 터득하는 데 있다. 그 우선적 원칙이 바로 휴식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휴식는 재충전이 아니다. 재충전이라는 단어는 휴식를 일에 종속시키는 구차한 변명처럼 보인다. 즉 일을 잘하기 위해 심신을 쉬게 한다는 뜻이며, 따라서 놀이와 휴식으로서의 휴가는 일을 위한 종속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놀 줄 아는 동물이다. 호이징하는 ‘호모 루덴스’라는 말로 인류의 특징을 집어냈고, 문화는 놀이 정신이 만들어낸 가치임을 지적한다. 취미로 일하는 사람들, 취미가 곧 일인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일과 놀이가 일상 속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는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좋은 직업인들은 놀이 자체가 일에 뒤지지 않는 또 하나의 삶의 형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직장인의 단어가 바로 휴가인 것이다.

휴가는 노는 것이다. 신나게 놀수록 좋다. 신나게 놀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 노는 것도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화가 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하면 그때 비로소 그 일이 덩달아 좋아지는 사람들, 그게 바로 나였다면 올 여름 휴가 때는 이 ‘덩달이’ 증후군에서 벗어나 보자.

올 여름 휴가철에는 가족 각자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도록 하자.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이번 휴가부터 시작하게 될 ‘평생의 취미’ 하나를 찾아보자. 그러나 거창하고 진지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 놀이는 놀이답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평소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사람은 이번 가족 여행에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가고, 사진을 찍고 싶었던 사람은 디지털 카메라 속에 일 천개의 휴가 장면을 담아 보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번에 그 동안 못 들었던 음악 100 곡을 골라 밤새도록 들어보자. 평소 글을 좀 쓰고 싶었던 사람은 작은 노트를 들고 휴가철 일주일간의 기록을 남겨보자. 산에 가고 싶은 사람은 이번에는 가족들과 즐길 수 있는 산 하나를 심혈을 기울려 찾아보자. 주머니가 넉넉하면, 한라산 영실 코스로 가서 하루 종일 놀다 와도 좋다. 가난한 가장이면 세검정 상명대 코스로 포금정사 앞을 거쳐 향로봉 바위 쯤에서 놀다 오면 북한산을 힘들이지 않고 즐길만하다. 하루종일 진이 빠지게 끌고 다니지 말고, 가는 길을 즐기고 숲을 즐기고 바람을 즐기고 싸간 음식을 즐기다 보면 하루를 즐길 수 있다. 목표를 정해 전투처럼 정상을 향해 치솟는 사람들은 되지 말자. 무엇을 하든 놀이는 즐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휴가는 모름지기 뒷골목을 기웃거리 듯 해야한다. 한 집 한 집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기웃거리다 보면, 마음에 드는 정감있는 단골집하나 찾아내게 된다. 휴가는 무릇 호젓한 아침 산길을 걷듯 해야 한다. 평소 일상의 바쁜 걸음 속에서 놓치고 있던 세상과 자신에 대한 특별한 시선 하나를 찾아 내야한다. 휴가는 늘 목표에 시달리는 강박감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일을 즐길만한 놀이로 보게 하는 느긋한 시선이다.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 생사를 건 전쟁에 임한 듯한 한국 축구팀에게 귀여운 히딩크 아저씨가 한 말을 기억하자. Enjoy it, and you will dominat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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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5 12:13:16 *.212.217.154

천재는 열심히 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하지요.

자신의 것을 즐기겠습니다.

롸잇 나우!

1. 08:30 ~ 10:00 10년계획과병행한지원사업검토

2. 12:00 ~ 13:00 서평일고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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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6 11:37:54 *.212.217.154

십 삼년전에 씌여진  글로부터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웠을까요?

귀여운 히딩크 감독님의 말에서

배우고 성장한 것인지,

다시한번 회자되고있는 그의 말을 생각해봅니다.


과거의 영광에 젖어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을 '적패'라고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시대는, 그 적패를 타파하고

어두운 과거와의 고리를 끊는 고난의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피로 씌인 혁명 위에 유럽 근대의 태양이 떠올랐듯이.

내일의 태양을 위한 지금의 성장통을 

우리 사회가 무사히 견디어 내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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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1 00:07:05 *.232.219.89

어느 순간, 휴식을 일을 위한 재충전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놀이를 놀이답게,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했었던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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