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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1일 19시 54분 등록
내가 멈추고 돌아보는 이유, 가스공사. 2005년 6월


갑자기 소나기가 퍼 붓는 날 한 사람이 천천히 빗속을 걷고 있었다. 뛰어가던 사람들이 돌아보며 외쳤다. 왜 뛰지 않소 ? 그 사람이 말했다. 앞에도 비가 오고 있지 않소.

롱펠로우의 시에 ‘하지 않고 남겨둔 일’이라는 시가 있다.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일하려 해도
아직 하지 않은 일들이 남아 있다
완성되지 않은 일들이 여전이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다

침대 옆에, 층계에,
현관에, 문가에
위협으로 혹은 기도로
탁발승처럼 기다리고 있다.
.......

그리고 우리는 하루를 버틴다
북방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하늘을 어깨에 진
그 옛날의 난장이처럼

그렇다. 일은 일에 끝이 없음으로 가끔 멈추어 서서 오히려 뒤를 돌아보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시간 속에 묻혀 지나가고 말았는 지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별 것 아닌 일로 쓸데없이 마음을 초조히 한 일은 없는 지 돌아보는 것도 좋다. 혹은 가끔 비 속에 나를 맡기고 천천히 걸어도 좋다. 젖은 옷은 빨고 목욕 한 번 하면 되는 일이다. 비속을 걷다 보면 품삯에 지쳐 살아온 난장이 인생도 돌연 쑥쑥 자라 꿈의 냄새를 맡게 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는 것 보다 더 커다란 실수’는 없다. 가끔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마음은 있으면서 놓치고 말았던 소중한 것들을 되돌아 보는 것이다. 말처럼 달리기만 하는 하루를 잠시 세우고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한 번 해보자.

* 아이에게 편지를 한 장 쓰자. 우리가 서로 아주 긴 이야기를 나눈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여유를 잃고 살아온 날 들 속에서 날마다 서로 얼굴을 대하는 짦은 만남조차 왜 그렇게 많은 잔소리들로 채워져 있었는지 돌이켜 보자. 우리가 서로 친구였던 때가 얼마나 적었는지 생각해 보자. 편지를 쓰지 못해도 좋다. 그렇게 편지를 쓰기 위해 앉아만 있어도 좋다. 비록 편지를 보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의 편지가 어떤 기류를 타고 그 놈들의 마음으로 들어 갈 지도 모르니까.

* 아내와 아주 괜찮은 섹스를 한 번 나눠 보자. 내 연구원 중에 한 친구가 완당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一讀 二好色 三飮酒 그리고 이렇게 해석해 놓았다. ‘책을 한 권 읽는 동안 두 번 섹스를 하고 세 번 술을 마신다’ 사람의 마음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 좋은 책을 한 권 읽어 보자. 말 많은 작가는 절대 고르면 안된다. 그들은 지식과 문화를 상품화하고, 상품을 팔아 치부하려는 장사꾼들이기 때문이다. 공해를 배출하여 정신의 세계를 오염시키는 것은 중범이다. 좋은 책은 깊은 호흡을 하게 한다. 정신이 흐뭇해지고, 차분한 가운데 오히려 하늘을 나는 듯하고, 이윽고 벌떡 일어나 시작하게 하고, 오랜 잔상으로 그 실천을 도울 수 있으면 좋은 책이다.

* 안하던 일을 하나 해 보자. 안하던 일을 하면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렇다. 죽지 않고 어찌 달라지겠는가. 어떤 도사는 숨을 한번 들이 쉴 때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 숨을 한 번 내 쉴 때 죽는다고 한다. 숨을 쉴 때마다 한 번씩 죽고 태어나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우리야 그럴 수 있겠는가. 그저 안하던 일을 하나씩 해보다 보면 그때 마다 삶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

*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즐겨보자. 내가 누구에게나 확인하는 일이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은 그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이것은 법칙이라 말해도 좋다. 나는 아직 예외를 보지 못했다. 누구나 노력하면 어느 수준 까지는 올라간다. 그 다음 부터는 재능과 즐김의 문제다. 재능이 좀 떨어지더라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오랜 기간을 지나오며 점점 깊어 질 수 있다. 사람에게서 평소에 잘 보지 못했던 깊숙한 곳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처럼 놀랍고 매력적인 일은 없다. 깊숙한 멋, 그러니까 먼지처럼 부서지는 일상 속에서 마음이 마음을 돌아 볼 수 있는 그윽한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종종 그 그윽한 곳으로 들어가 잠시 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조금씩 나아지고 이윽고 깊어지면 평생의 즐거움을 확보한 것이다. 그것처럼 운 좋은 일을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달리기만 하던 하루를 세워 잠시 쉬며 뒤돌아 볼 여유를 가지려면 ‘no'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인생의 아주 많은 근심과 걱정은 너무 빨리 ’아니오‘라고 말했거나 , 너무 늦게 ’아니오‘ 라고 말한데서 기인된다. 그리고 ’예‘ 라고 말해야 할 때서 ’아니오‘라고 말했기 때문이거나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서 ’예‘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쫓기듯 원고를 쓰는 이유도 ’아니오‘ 라고 답해야 하는 국면에서’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아주 오래 전에 내가 1인 기업을 처음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어느 대기업의 젊은 홍보 담당자가 세월이 한참 지나 아이 엄마가 되고 새로 1인 기업을 만든 후 내게 부탁한 원고라 숙제가 밀려 있었지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또 마음의 여유일테니까. 그러나 그예 늦고 말았다.
IP *.229.1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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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5.07.12 22:50:45 *.190.172.94
아 어찌 다다을 수있을까? 나 만의 길 을 찾을 뿐.. 많은 좋은 것은 조화로운관계있음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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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벨
2005.08.07 07:10:21 *.241.112.146
멋진 구본형님이십니다. 멋진...
글 고맙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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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15:39:04 *.212.217.154

편지를 쓰고,

기분 좋은 섹스를 나누고,

좋은 책을 한권 읽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

하고 싶지만 못했던 일을 하는것.

그것들을 하기 위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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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20:39:24 *.212.217.154

우리들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는것 만큼이나

무엇을 하지 않는것 또한 중요하겠지요.


스스로원하지 않는 일에 거부하는 것,

상사의 불합리에 저항하는 것,

회사의 부조리를 두고보지 않는 것,


어느세 '조직'이란 이름에 무뎌진 내면의소리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조금 더 알수있을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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