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나를

꿈벗

‘나를

2012년 5월 15일 08시 52분 등록

상엽아.

 

어제 오랫만에 봄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풍경사이로 부쩍 늘어난 녹색의 빛들이 보이더구나. 출근길에 보는 길가의 이름모를 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피어있다. 이 좋은 계절에 교실에만 있을 너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여러 번 너에게 편지를 써주고 싶었는데 차일 피일 미루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우리가 2월에 처음 만났었지.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이상하게 너가 나의 마음을 이끌었다. 왜 그런지는 잘은 모르겠다. 수업시간에 늘 딴청을 피우는 너를 보면서 오히려 너의 어깨에 놓여있는 짐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몇 마디 질문을 할 때 늘 보통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서 답을 하는 너를 보면서 너의 부모님의 기대가 떠올랐다. 그리고 깨문 입술을 보면서 무엇인가 힘든 부분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

 

지난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나 보구나. 지난 수업때 가니 담당 간사님께서 너를 B반으로 옮겼으면 하는데 나의 생각은 어떠신지 물어보시더구나. 나는 너와 같이 공부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너의 생각이 중요하니 본인의 생각을 물어보는게 어떠냐고 말씀드렸지. 삼학년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간사님이 그러시더구나. 너도 B반을 가기를 원한다고 말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너의 생각이라고 생각하기에 알았다고 말씀드렸다.

 

수업 도중에 장난치는 너를 데리고 잠시 이야기를 했었지. 많이 힘드냐고 물었었지. 고개숙인 너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너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부담이 될 지 그게 두렵기에 더 나가지 못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말해달라고 하면서 마무리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갈수록 나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 자신이 없어진다. 으흠

 

나와서 문제를 푸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은 너의 기본을 알 수 있었어. 선생님의 생각에 너에게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기대가 너무 큰 부담감으로 작용해서 오히려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난 시간 선생님이 옛날이야기를 했을 때 상엽이가 소설을 잘 쓰시네요라고 말했었지. 그래 선생님도 그것이 소설이었으면 할 때가 많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어렸을 때는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모르고 그랬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런 나쁜 기억들도 다 선생님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니 마음은 편해지더구나. 나이가 들어 조금씩 선생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일꺼야. 남들이 뭐라하건 완벽한 존재라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상엽아. 선생님이 알고 계신 분 중에 괴산이라는 곳에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분이 있단다. 그분이 사는 숲에 가면 꼭 보고 싶은 나무가 하나 있어. 그 나무는 바위위에 자리잡고 있지. 소나무같은 침엽수가 아니라서 바위를 뚫지 못하고 바위를 감싸고 자라나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는 나무지. 선생님이 사진기를 들고 다니다 보니 이상하게도 돌위에 걸터앉은 나무들이 마음을 차지하더구나. 너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

 

B반으로 가더라도 힘내고 정 힘이들면 선생님을 찾아주면 고맙겠다. 선생님이 먼저 나서서 너에게 더 다가가지 못하는 것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너에게 사탕을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했던 선생님의 마음을 기억해주렴.

 

햇빛처럼.

 

크기변환_P1040409.JPG

IP *.10.140.105

프로필 이미지
2012.05.16 05:36:43 *.116.111.105

제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스승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3 [목요편지] 같은 곳 바라보기 file 깊고맑은눈 2012.05.17 2863
112 타워 첫 시간 [1] 탑거인 2012.05.16 2763
» [화요편지] 상엽아 file [1] 햇빛처럼 2012.05.15 2343
110 [SEASON2-월요편지] 존버정신의 “고트프레드?.... 레고!!” file [1] 새벽산책 2012.05.14 5012
109 지난 밤 꿈에서 [1] 효인 2012.05.11 2241
108 [목요편지] 13명의 전사 [1] 깊고맑은눈 2012.05.10 2240
107 [수요편지] 5월은 연이다 탑거인 2012.05.09 2243
106 [화요편지]초행길 햇빛처럼 2012.05.08 2258
105 저희 꿈벗과 연구원님이 진행하는 토크쇼입니다. 새벽산책 2012.05.07 2251
104 [SEASON2-월요편지] 중국의 피카소 '치바이스' file 새벽산책 2012.05.07 5306
103 [금요편지] 어느 마법사의 하루 [1] 효인 2012.05.04 2252
102 [목요편지] 헤어짐..... 이별 앓이 [2] 깊고맑은눈 2012.05.03 2687
101 [수요 편지] 도전과 응전 탑거인 2012.05.02 2371
100 [화요편지]성장이란 file 햇빛처럼 2012.05.01 2497
99 [월요편지] 꿈벗 소풍을 다녀와서... file [1] 새벽산책 2012.04.30 2327
98 [금요편지] 봄 빛 [1] 효인 2012.04.27 2479
97 [목요편지] 사랑한다 말해보세요 file 깊고맑은눈 2012.04.26 2526
96 아름다운 봄날 - 결혼을 앞둔 벗 승완에게 [1] LittleTree 2012.04.25 2511
95 [수요편지] 숲을 기다리며 [2] 탑거인 2012.04.25 2242
94 [화요편지]망미역(望美驛) [1] 햇빛처럼 2012.04.24 2743